“순한 사람들이 살아남았음을
나중에 기억할 수 있도록”
살아온 날들에게 보내는 절망과 희망의 노래
8년 만에 선보이는 심보선의 신작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심보선의 네 번째 시집.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눈앞에 없는 사람』 『오늘은 잘 모르겠어』까지 자기만의 속도를 따라 출간한 작품 모두 한국 시단에 무척 중요한 지표가 된 것도 이례적이다. 8년 만에 출간되는 이번 네 번째 시집은, 그동안 사회학자로서 예술과 사회가 얽혀 있는 자리를 세세히 읽고, 시대의 흐름을 그려나가기도 하는 그의 깊어진 시선이 담겼다.
새로운 서정으로 독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고통과 어둠으로 점철된 세계를 투시하며 인간 존재를 성찰한다. 그가 이야기해 온 ‘그을린 예술’의 실천처럼, 비참한 삶을 저버리지 않고 나아가 한 줄기의 빛을 찾으려는 행보가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록된 시인의 산문에서도 밝히듯,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화하고 침울해했던 시간을 끝끝내 돌파하며, 한순간 생존자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시대적 슬픔을 대신 말하길 그치지 않는다. 반복되는 절망 속에 낯선 희망 하나를 비추며, 살아갈 길의 통로를 열어젖히는 시인의 절실한 음성이 아른거리는 시편들이다.
자신에게 존댓말로 해보는 위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되어보는 나, 빛의 꽃다발처럼 풍성했던 어느 유년 시절의 풍경에서부터 부재를 처절하게 감각하게 되는 어느 현실까지. 시인의 빛과 어둠은 하나의 존속된 존재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어둠에게 어둠의 할 일을 부여하고, 빛에게 빛의 할 일을 부여하면서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시인의 결연한 태도가 이번 시집에서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번 시집은, 자전적이면서도 내밀한 고백과도 같은 시들이 주류를 이룬다. 특별히 산문에서 언급하고 시에서도 직접 드러나지만 쓰지 못했던 시간이 쓰지 않는 다른 일로 심부름을 보낸 것은 시인에게 더 깊은 고독을 보게 한 것, 시대에 필요한 삶의 새로운 문법을 익히게 한 것, 말하거나 쓰지 않았던 침묵의 시간에 기대어 살아낸 시간을 증언하게 한 것 들이다. “우리가 생존자였음을/ 우리가 주저앉아 통곡하며/ 가슴을 치던 이곳에서 시인은 그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다시 쓰게 되었다.
“나의 일은 살아가는 것
내가 모르는 먼 곳으로 나를 떠나보내는 것이다”
그을린 세계에 빛의 테두리 긋기
잿빛 속에서 건네는 약속과 의지의 시
1부에서는 삶의 새로운 주체성을 찾아가는 화자와 그 갈피에 끼어드는 타자 간의 관계성이 두드러진다. “나는 내가 모르는 타인일 때에만 선한 인간이다”(「삶은 나의 일」)라고 이야기하는 화자는 자신에게 속박되어 있던 ‘나’로부터 멀어졌을 때 바라볼 수 있는 삶에서 무언가를 찾고자 한다. “내가 모르는 먼 곳으로 나를 떠나보내는” 일을 실천하는 동안 시 「섬망」에서는 떠나온 자리의 ‘나’를 돌보며 청유형으로 그 기억들을 위탁하기도 한다. 또한 표제작에서는 ‘너’라는 대상이 “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 일로부터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었는지 ‘나’의 쓰기로 환원해 “끝 모를 이야기”로 이어간다. “내 몸에 나도 모르는 자국들”(「유린」)을 더듬으며 나를 낯설게 인식할 때 ‘당신’. ‘너’와 같은 타자는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와 ‘우리’가 된다. 서로를 업고 달리는 존재, 아무것도 없는 나의 상체에 기대어 있는 당신, 당신이 잠든 사이에 산책 다녀오는 나, 나를 버리고 간 독서광 아빠 등 ‘나’와 ‘타자’의 관계는 미묘하게 어긋나고 서로의 부재 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허상처럼 그려진다. 시인은 ‘나’를 구성하고 있던 나의 바깥까지 호명하며 삶이 작동되어 왔던 방식을 새롭게 이해하고 갱신한다. 2부에서는 나와 타자의 무수한 집합체로서의 ‘우리’를 호명하며 그 속성을 시대적으로 반영하는 시들이 눈에 띈다. “너의 천사는 나의 악마이고/ 나의 천사는 너의 악마이거늘”(「나의 신은 너의 신이 아니거늘」)이라고 선언하는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렬된 것처럼 보이나 서로의 끝에 서서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체로서 ‘우리’를 다시 그린다. 감각의 검은색과 표정의 하얀색이 만드는 대비처럼, 극명하게 다르지만 결국 “머리를 맞대고 잠”(「그리고」)드는 존재이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함께”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라는 접속사처럼, 시인은 결렬되거나 유실된 관계를 다시 연결하며 삶의 새로운 변곡점으로 만든다. 이것은 심보선이 그동안의 시집에서 끝끝내 해내고야 말았던 낯선 희망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시인이 시 안에서 그리는 정황들은 대체로 무언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거나, 일어난 일 이후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되풀이된다. “이 집에선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고/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선물과 유품이 있네요”(「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 미래를 예감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고 “아무도” 태어나거나 죽지 않았다는 무기력한 상태로 모사된 빈 공간의 서사를 메우는 방식으로서의 사유로 시작된다. 거기에는 개인적 일화와 사회적 맥락이 교묘하게 맞닿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말의 반복으로 공명한다. “그냥 앉아 있기만”(「골격」) 하는 무기력하고 별일 없어 보이는 무료한 삶 속에서도 은연히 드러나는 “분노라는 골격”을 나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1부에서 화자가 나를 멀리 떠나보내고 타자로 재구성하여 돌보았던 텅 빈 ‘나’였기에 가능한 ‘나타남’이다. 3부에서는 이러한 나타남의 구체적인 현상을 구체적인 인물과의 일화로 드러내는 시들이 많다. 「재회」에서처럼 끝난 우정 뒤에 찾아온 친구에게, 13세기 이국의 마녀에게, 아픈 누나에게 보내는 답신 같은 시들은 우리에게 머물러 있다 떠난 누군가의 자리를 상기시킨다. “자신의 존재가 분명 어딘가에 다가가는구나 느끼는”(「말년의 양식 2」) 시간성을 시인은 회복의 의지로, 없음과도 함께하는 마음으로 재구성한다. 그리하여 빛이 아른거리는 유년을 지나 절망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주파한다. 그럼에도 결국 돌아와 있는 자리는 “세계 시의 날”의 다음 날처럼, 시 쓰기에 고투하고 부대끼는 존재의 자리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 실린 다수의 시는 내란의 소용돌이 가운데 쓰인 것이라”(산문 「산책 다녀왔으니 이제 시 쓰자」)고 이야기할 만큼 요동치는 시국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삶을 이루는 일들을 과업처럼 수행하지 않는다면, 내 영혼은 외부의 힘에 휩쓸리고 짓눌려 파괴될 것만 같은” 자신과 균열이 일어난 세계를 기민하게 감각하며 이번 시집을 묶었다. 이 모든 것이 ‘살아냄’의 순간이었다면, 함께 살아낸 생존자인 우리들에게,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한 일들, 없지만 나타나는 일들을 시 안에서 실현시키며 주체적인 삶의 뒤척임을 희망으로 전한다. 그을린 예술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인 이제니의 발문에서처럼 “현실의 불길이 우리를 그을린 재처럼 만들어버릴지라도 예술은 그 잿빛 속에서 작은 불씨를, 희망의 빛을, 끈질기게 찾아내려는 노력”뿐이다. 시인 심보선이 어둠 속에서 뒤척이며 쓴 이 시들은, 우리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 일들, 세상의 혼란이 그것을 덮어버리기 전에 찾아온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