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알려진 진실 중 하나는 이야기를 발생시키는 큰 힘이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인물에 대해, 이웃과 타인에
대해 진심을 다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상상해야 한다.
어쩌면 쓰는 일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는 일을.
고수경의 등단작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옆사람〉이며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이다. 그 단편을 시작으로 이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이 이웃들, 타인을 보는 우리의 방식을 검토하게 하고
가족과 옆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 조용한 기척이 소설의 또 다른
진실이고 작가의 일, 소설의 가치라는 것을 깊이 알고 쓰는 젊은 작가가
여기에 나타났다. 이것이 겨우 첫 번째 소설집인 데도 그렇다.
— 조경란(소설가)
나와 옆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관한 이야기
소설가 고수경의 단편 소설을 모은 작품집이 열린책들 <한국 문학 소설선>으로 선보인다. 고수경은 202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숨겨진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단편들을 발표해 왔다. 이번 첫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그동안 문예지에 선보였던 단편뿐 아니라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뽑힌 등단작, 그리고 새롭게 쓴 글까지 총 여덟 편이다. 소설가 조경란이 추천사에 이라고 말했듯이, 고수경은 어떠한 사람에 관해 온 힘을 다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작가의 놀라운 점은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인에 관한 비난과 지적은 너무나 쉽지만 애정을 담아 한 사람을 표현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흔히 소설에서 발견하는 불편하거나 어색하거나 싫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물이 거의 없다는 점도 고수경 소설의 특징이다. 존재 하나하나가 각자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고, 그들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 역시 제각각 살아 있기에 독자는 공감을 넘어 더 큰 방향, 즉 <이해>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고수경의 소설이 특별한 점은, 보통 스토리를 전개하거나 등장인물 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클리셰가 없다는 점이다. 탈선으로 보이는 학생과 지도 교사의 관계에서도, 현관문 비밀번호를 계속 틀려 자기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과 그의 줄넘기 이웃과의 상황에서도, 전해 줄 물건을 들고 치앙마이까지 가게 된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도, 그리고 어느 날 저어새를 반려동물로 키우게 된 한 부부의 고민 속에서도,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내 옆사람과의 간격에서도,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전개가 펼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단편 하나하나 읽고 나면 그 완성된 이야기에 개운함이 느껴질 정도다. 새로운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고수경의 글을 꼭 권하고 싶다. 조경란의 말처럼, <소설의 가치>를 깊이 알고 쓰는 일이 여기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옆사람』은 실은 마음 이야기
고수경의 소설에는 유독 읽는 이의 마음이 잘 비친다. 얼핏 담백해 보이는 작품들에는 틀림없이 의도하고 지워 낸 듯 분명한 여백이 있어서, 그 꽉 찬 빈자리를 헤아리다 보면 뒤늦게 강렬한 이야기였구나, 깨닫게 되곤 했다. 그러니까 뼈대는 몹시 분명한데 이를 감싼 살결은 투명해서 독자의 내면과 쉽게 공명할 수 있는 이야기다. 당신이라면 어떨까? 남편의 지갑 분실로, 단 한 번도 〈우리〉였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내의 이야기 「옆사람」, 방문의 열쇠를 발견하고 마침내 그 방에 들어가 편히 몸을 누이는 부부의 이야기 「다른 방」, 넣을 것이 마땅치 않아 처박아 두었던 커다란 가방에 드디어 넣을 만한 무언가가 생긴 부부의 이야기 「아직 새를 몰라서」 등 사이가 저마다 다른 부부의 이야기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안전하게 머물 공간을 찾아 집과 모텔과 동아리방을 오가는 소년을 뒤쫓는 교사의 이야기 「새싹 보호법」, 학생의 집을 〈교실〉로 부르며 아파트 속 무수한 교실들과 차 안을 오가는 학습지 교사의 이야기 「좋은 교실」, 억지로 지은 미소와 마스크로 감춰진 표정 사이에 과연 차이가 있는 걸까 묻게 만드는 한 감정 노동자의 이야기 「탈」에 자기 모습을 투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고수경의 첫 소설집을 읽고 나면, 당신이 사는 방, 가지고 다니는 가방 같은 것들이 더는 심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읽은 후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그리하여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은 채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석하는 일. 이것이 바로 소설이 우리에게 열어 주는 가능성 중 하나가 아닐까. 고수경이 써낸 말간 이야기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ㅡ 문학 평론가 황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