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논리의 연결고리를 풀어 탄생시킨 기상천외한 세상” 우아하고, 날렵하고, 정교하게. 알레! 유머와 기품을 잃지 않는 타고난 검객 키리니의 사늘한 칼끝이 관성에 물든 현실의 세계를 가차 없이 베고 찌른다. 최제훈(소설가) 철학과 몽환 그리고 지적인 매직을 갖춘 이 유니크한 작품들을 보라. 김경주(시인) 촉망받는 젊은 프랑스어권 작가에게 수여하는 보카시옹 상 수상작! 기이한 존재들의 환상적인 이야기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 16편의 환상적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을 둘러싼 예측불허의 생각들은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 상상해보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낸다. 수십 년 동안 말을 타고 돌아다녔던 우편배달부의 친할아버지는 신체에서 말의 비율이 83퍼센트에 달했을 때 세상을 떠났다. “평상시에는 조용하고 느릿느릿한 분이셨지만, 때때로 말처럼 가볍게 달리다가 울타리를 펄쩍펄쩍 뛰어넘곤 했어요. 두 다리로 말처럼 달리는 인간을 본 적이 있습니까?” _「플란의 정리」 중에서(본문 261쪽) 기발한 세상은 논리의 연결고리가 풀리는 순간, 우리의 사고 앞에 상상과 꿈의 프리즘이 놓이는 순간 탄생한다. 논리의 족쇄가 풀리고 상상의 프리즘이 마술처럼 가로놓이면, 철학자는 지식을 엔진 삼아 하늘로 솟아오르고(「높은 곳」), 인간은 자전거와 몰리퀼 교환을 하며 거리를 내달린다(「플란의 정리」). 도시는 스스로 이동하고(「끝없는 도시」), 책에서 책으로 주인공이 옮겨다닌다(「펼쳐진 책」). 19세기의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가 20세기에 등장하고(「‘마타로아’ 호의 밀항자」), 물뿌리개는 누군가 자신을 보아주지 않으면 물을 담아내지 않는다(「물뿌리개」). 기이한 존재들이 규정된 법칙을 거부하며 존재하는 세상, 그러나 어딘가에 분명 있을 법한 세상, 기상천외한 젊은 작가 베르나르 키리니는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냈다. “어떤 도시들은 끊임없이 움직여요, 장난기 많은 큰 구역들이 그렇듯이.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는 대체로 오랜 시간 한자리에 그대로 있지요. 사실 도시는 여러 개가 아니라 딱 하나뿐이에요.” _「끝없는 도시」 중에서(본문 160쪽) 환상 문학을 통해 응시하는 현실의 세계 그러나 베르나르 키리니의 작품이 마냥 기이하고 초현실적이기만 한 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다양한 세상과 존재들을 열망한 것은, 한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이, “세계적이고 이성적이고 획일화된 오늘날의 상황이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읊조리듯 담담한 그의 어조를 따라가다 문득 날카로운 칼날에 허를 찔리는 이유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환상이 아닌 현실세계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더이상 비밀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개탄하며 벽으로 영영 숨어드는 남자(「내 집 담벼락 속에」)와 달리, 베르나르 키리니는 암시 가득한 이야기들을 통해 기이한 현실을 드러내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곳곳에 텔레비전이 있고, 집에도 카메라들이 있다. 촬영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 책을 쓴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걸핏하면 자신들의 은밀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때문에, 이제 더이상 그들의 침실로 몰래 들어갈 필요가 없다. 이제 사생활은 소멸 위기에 처한 개념이다. 그래서 뒤티욀의 능력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문명화된 세상의 마지막 성벽은 텔레비전의 화면이며, 거기에 은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_「내 집 담벼락 속에」 중에서(본문 146쪽) 진정한 천재로 인정받아온 몇몇 사상가들은 아무리 위로 치솟고 싶어도 지면에 발이 들러붙어 옴짝달싹 못하는 반면, 이름도 생소한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하늘 높이 떠오르곤 했다. 한순간에 명성을 잃고 전락한 어떤 스타들은 자신들의 명성과 공중 부양 높이를 일치시키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 중에는 헬륨으로 몸을 부풀린 이들까지 있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그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들의 실패를 변명해보려 애썼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_「높은 곳」 중에서(본문 96쪽) 베르나르 키리니의 인물들에게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환상의 세계 속에 구현되어 있지만, 그들이 사는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환상을 덧입혀 ‘이야기’인 척하지만 사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현실의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소외되고 있다”며 울부짖는 박물관의 조각상들일 수도 있고(「박물관에서」), 새로운 빵집이 생겨도 그곳에서도 빵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관성에 젖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가게들」).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침묵하는 것은 지혜롭고, 모든 걸 나불대는 것은 경솔한 짓”임을 체득한 무력한 대중이 되어가기도 한다(「크누센주의, 그것은 사기 협잡」). ‘단편들을 드나드는 남자’ 피에르 굴드 베르나르 키리니의 첫 소설집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속에는 그의 ‘페르소나’ 피에르 굴드가 등장한다. 그는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처럼 키리니의 단편 속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다. 첫 문장을 쓰지 못해 말줄임표 속에서 번민하는가 하면(「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단 한 권의 책을 쓰고 글쓰기를 영원히 포기하려는 작가가 되려고도 하고(「단검에 찔린 유명인들에 관한 안내서」), 편집자(「높은 곳」), 박물관 학예연구원(「박물관에서」), ‘반스칸디나비아 운동’ 핵심인물(「크누센주의, 그것은 사기 협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우리가 아는 세계와 존재할 수도 있는 세계 사이를 잇는 뱃사공, 그것이 피에르 굴드이다. 진정한 페르소나라면 그래야 한다는 듯 주인공으로도 엑스트라로도 활약하는 피에르 굴드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 또한 이 작품을 읽는 재미라 할 수 있다. ◆ 주요 단편 소개 「거짓말 주식회사」: 경쟁이 과열된 거짓말 시장. 세계적인 거짓말 기업 푸이즈 앤드 퐁텐 사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분투한다. 더 싸고 질 좋은 거짓말 상품으로 진출 분야를 넓힌 회사는 숨 쉬는 것보다 더 쉽게 거짓말을 하는 거짓말계의 아이돌을 영입하는데…… 「높은 곳」: 생각에 잠긴 지식인들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원고가 별똥처럼 날아든다. 공중 부양은 골똘히 사색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붕 떠오르는 현상으로, 하늘로 올라간 높이에 따라 그 사람의 천재성을 가늠할 수 있다. 공중 부양으로 인해 대기권을 벗어나 목숨을 잃는 이들이 생기는가 하면, 헬륨가스까지 마시며 아등바등 하늘로 올라가려는 이들도 등장한다! 「박물관에서」: 탄식과 절규의 오브제 박물관. 관람객 하나 없는 조용한 공간에 음산한 흐느낌이 울려퍼진다. 대체 누구의 울음소리일까? 그칠 줄 모르는 탄식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우는 여자들’ 컬렉션이었다! 그녀들은 하얀 토가를 둘러쓰고 하염없이 울었다. “우린 세상 사람들에게서 소외되고 있어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박물관을 지키는 나는 그칠 줄 모르는 그녀들의 탄식에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블록」: “어떤 블록 세트도 같은 형상을 두 번 연이어 만들어낼 수 없어요. 그건 상식 그 자체입니다.” 닉클라스가 가져온 블록 세트는 동일한 형상을 다시 만들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건이었다. 블록 세트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금세 입소문이 나 전 세계에 불티나게 팔렸다. 그러던 어느 날 블록 세트 열풍에 제동을 거는 이가 나타나고…… 「단검에 찔린 유명인들에 관한 안내서」: 우연히 『문단의 이클립스들』이라는 책을 알게 된 피에르 굴드는 단 한 권의 책을 쓰고 영원히 글쓰기를 포기한 ‘이클립스들’에 매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