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파리 센 강의 좌안, 레프트뱅크에 모여 살던 여성 모더니스트들의 이야기. 당시는 모더니즘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고, 문학계에서는 T. 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기욤 아폴리네르, 폴 발레리,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장 콕토, 루이 아라공 등이 대표 인물로 꼽힌다. 모두 남성들이다. 여성들은 대개 그들의 정부(情婦) 혹은 뮤즈로 등장한다.
요즈음 거트루드 스타인이나 주나 반스를 중심으로, 1920-30년대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 활동이 조금씩 늘고 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스승이었고, 주나 반스는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 원본을 보여주면서 작품에 대해 상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료 작가였다. 그런데 역사는 이 이야기의 반쪽의 이름들만을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잊힌 이름들을 불러낸다. 파리가 여자였던 시절에, 레프트뱅크에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여성 사회를 찾아가는 책. 책 안에 303점의 흑백 사진이 들어 있다. 지은이가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수집한 자료들이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사진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레프트뱅크(Left Bank)는 파리 센 강의 좌안을 일컫는다. 센 강은 서쪽으로 흐르면서 도시를 반으로 나누는데, 북쪽으로는 라이트뱅크, 남쪽으로는 레프트뱅크라 한다. 오늘날까지도 파리에서 가장 로맨틱한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에는 여러 시대의 파리가 공존한다. 세계가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곳에는 자유를 꿈꾸는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 철학가와 학생들이 둥지를 틀었다.
1920~1930년대 이곳에는 후에‘레프트뱅크의 여자들’로 알려지게 되는, 아주 특별하고 독특한 여성 사회가 있었다. 그들은 시와 소설을 썼고,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렸으며, 책을 출판하거나 서점을 열었고, 기사를 타전했다. 작가인 콜레트, 주나 반스, 거트루드 스타인과 시인 H.D.,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 화가인 로메인 브룩스와 마리 로랑생, 출판인 또는 편집인인 브라이어와 앨리스 B. 토클라스, 마거릿 앤더슨과 제인 히프, 사진가인 베러니스 애벗과 지젤 프로인트, 서적상 실비아 비치와 아드리엔느 모니에, 그리고 저널리스트 재닛 플래너가 주축이었다.
파리는 왜 여자였을까?
창조적 에너지와 갖가지 재능을 가진 여성들, 예술과 문학을 향한 열정을 품은 여성들, 남편과 아이에게 구속 받지 않는 여성들이 특히 파리 레프트뱅크에 끌렸다. 자유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국적과 계급, 경제력과 재능, 섹슈얼리티,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었지만, ‘자유’를 위한 자의식적 공동체 안에서 우정을 나누고 작품에 경의를 표하면서 오랫동안 친구와 연인, 동료와 후원자로 남아있었다.
‘여자들의 특별한 네트워크’, 결국 파리는 정부도 아니었고 뮤즈도 아닌, 단지 다른 종류의 여자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