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 김금화

김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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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 감독,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 주연의 영화 [만신]의 원작. 나라굿으로 유명한 큰 무당으로 강신무이면서도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배연신굿, 진오기굿 등 모든 굿에 뛰어난 기량을 가진 무형문화재 국무 김금화. 이 책은 그의 자서전으로 신과 인간의 매개자로 살아오는 동안 누구에게도 말 못한 속내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간난신고를 겪은 개인 김금화의 삶, 그리고 굿판 안팎에서 세상 사람들의 슬픔과 상처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살아온 65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제의 '비단꽃 넘세'는 나라만신 김금화의 이름 '금화(錦花)'와 아명(兒名)이었던 '넘세'를 합친 말로 '넘세'는 남동생을 본다는 뜻의 황해도 방언이다. 2007년 출간되었던 <비단꽃 넘세>를 개정증보하여 새롭게 펴낸 책이다. 사진들을 새롭게 골라 배치하고, 김금화 만신을 곁에서 지켜봐온 민속학자 황루시 교수와 이 자서전을 읽고 영화 [만신]을 찍은 박찬경 감독의 글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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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정판 서문 저자 서문 1_인간 세상에 핀 신의 꽃 쓸모없는 둘째 딸 오마이, 밥 좀 먹어 이상한 에미나이, 같이 놀지 말라우 슬피 우네, 열네 살 새색시 전염병이 휩쓴 마을 자주 수건을 써야 할 운명 외할머니 천일이 만신 외기러 왔소 불리러 왔소 내림굿 받던 날 지엄한 무당수업 큰무당의 길을 가리라 그리운 고향 안바꾸니 2_어쩌자고 무당이 되었을까 총부리를 겨누고 한 굿 지극정성이면 감천이라 당신 직업이 뭐야 무당은 청산 대상이야 너는 왜 허망하게 가버렸니 일곱 식구의 가장, 장사를 해볼까 넘세가 텔레비전에 나왔네 팔자에 없던 결혼 사랑, 내 길이 아니었던 길 신령님 따라가세 3_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 미국인을 감동시킨 굿 인디언 신과 한국 신의 조우 꿈이 찾아준 할아버지 시신 무당의 특별한 꿈 굿을 알릴 수만 있다면 무당은 마음의 병을 고치는 의사 인간과 신이 벌이는 한 판 잔치, 굿 황해도굿 여섯 가지 해는 따다 일월명도, 달은 따다 솟을명도 4_외로운 길 무당의 길 수없이 넘어져도 또다시 일어나라 신과 인간의 매개자 외로운 길, 고달픈 길 작두타기와 공수주기 털보 아저씨의 굿놀이 명을 받고 복을 나누시게 오마이, 그리운 오마이 부록 김금화와 나누는 대화_황루시, 박찬경 공연 연보

출판사 제공 책 소개

2014년 화제작 박찬경 감독의 영화<만신>의 원작!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가 헌사하는 만신 김금화의 파란만장한 생애! “만신이 된다는 것은 뭇사람들이 참지 못하는 고통을 숱하게 참아내는 것이다.”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 주연의 <만신>은 국무(國巫) 김금화의 인생을 담은 영화다. 김금화는 나라굿으로 유명한 큰 무당으로 강신무이면서도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배연신굿, 진오기굿 등 모든 굿에 뛰어난 기량을 가진 무형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서해안풍어제 배연신굿 및 대동굿 기·예능 보유자)이다. 이 영화의 원작인 『만신 김금화』는 그의 자서전으로 신과 인간의 매개자로 살아오는 동안 누구에게도 말 못한 속내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간난신고를 겪은 개인 김금화의 삶, 그리고 굿판 안팎에서 세상 사람들의 슬픔과 상처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살아온 65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제의 ‘비단꽃 넘세’는 나라만신 김금화의 이름 ‘금화(錦花)’와 아명(兒名)이었던 ‘넘세’를 합친 말로 ‘넘세’는 남동생을 본다는 뜻의 황해도 방언이다. 열두 살에 무병을 앓기 시작해 열일곱에 내림굿을 받은 나라만신 김금화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다. 열네 살에 시작된 고된 시집살이와 2년 만의 시집에서의 탈출, 그후 1년 동안의 지독한 무병은 고집스러운 운명의 끈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고통스럽게 보여준다. 큰 무당이던 외할머니에게 열일곱 살에 내림굿을 받은 뒤, 현역 무당들을 따라다니면서 굿 현장의 경험을 쌓았다. 스무 살 때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한 그녀는 무속인 방수덕 씨와 인천과 경기도 이천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월남한 다른 무속인들은 사회적으로 천시받는 미신이라 하여 남한에서의 무속활동을 포기했지만 김금화 만신은 생각이 달랐다. ‘어차피 이 길을 가야 할 운명이라면, 도둑질이나 사기 치는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떳떳이 하자.’는 것이 그의 굳은 신념이었다. 1965년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겼지만 시련은 끊이지 않고 찾아왔다. “석관동으로 이사올 무렵은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미신타파 바람이 굉장히 거셀 때였어요. 외할머니에게 배운 만수대탁굿을 올리는데 주민들의 신고가 빗발치는 거예요. 여러 번 파출소에 끌려가서 다시는 굿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지만 집에 오면 또 했죠. 삼각산에 가서 기도도 참 많이 했습니다.” 1967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연평노래’와 배연신굿 공연으로 상을 받으며 언론에 처음 소개되면서 학계에 조금씩 알려졌다.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한 미국 공연 이후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한 뒤 줄곧 나라굿을 도맡아왔다. 이후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등 외국의 대학, 박물관, 방송국 등에 초청을 받아 순회공연과 강의 등을 해오며, 한국의 굿이 지닌 종교적·예술적·문화적 내용과 가치를 널리 알려왔다. 1985년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1995년 예순다섯 살 때 한중수교 3주년 기념행사에서 개막공연을 했으며, 호암아트홀에서 <김금화 대동굿>을 공연하였다. 2004년 백두산 천지에서의 대동굿, 독일 베를린에서의 윤이상 선생을 위한 진혼굿 등 국내외에서 수많은 굿 공연을 선보였다. 2005년 강화도에 건립한 서해안 풍어굿 전수관 ‘금화당’에서 서해안 풍어굿의 명맥을 이으며, 후학 양성과 한국 무속문화 전수에 힘쓰고 있다. “사람들의 몸의 고통, 마음의 고통을 다 씻겨주는 무당이 되겠다.” 『만신 김금화』는 2007년 출간되었던 『비단꽃 넘세』를 개정증보하여 새롭게 펴낸 것이다. 사진들을 새롭게 골라 배치하고, 김금화 만신을 곁에서 지켜봐온 민속학자 황루시 교수와 이 자서전을 읽고 영화 <만신>을 찍은 박찬경 감독의 글을 실었다. 특히 박찬경 감독은 평소 무속에 다양한 관심이 많던 차에 김금화 만신의 자서전을 읽고 영화 제작 제안을 했는데, 그의 인생이 파란만장할 뿐만 아니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무당의 삶으로 보는 한국사’라는 앵글로 이야기를 만들면 문화적 의미와 흥미를 동시에 표현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다른 큰 무당들도 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분들이 작고하셨다. 김금화 선생님은 이북에서 내림을 받아서 여기로 내려온 만신 중 마지막 인물이다. 남북관계가 깊이 개입되어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게다가 워낙 유명한 분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만신'을 통해 굿을 더 양지의 문화로 끌어내고 싶었는데, 김금화 선생님이 많이 알려진 분이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카메라도 익숙하시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무당이라는 점이다." -박찬경 감독 인터뷰 1980년 10월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황해도 대동굿 공연하는 김금화 만신을 처음 만났다. 서울지역 무당굿으로 석사학위를 한 뒤 비로소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려 막 전라도와 동해안, 제주도를 다니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이북굿은 만나기 어려웠다. 오며가며 굿당에서 황해도굿을 보기는 했지만 이틀내리 쉴 짬도 없이 제대로 하는 굿은 처음이었다. 김금화 만신의 굿은 한 마디로 황홀했다. 원래 연극 전공이었던 내 석사논문 제목은 ‘서울진오기굿의 연극성’이다. 기본적으로 무당이 배우라는 관점으로 쓴 논문이다. 무당이 다양한 신격을 모시면서 굿하는 것이 꼭 배우 같다고 생각했다. 장군신을 놀 때는 한 손에 칼, 또 한 손에 삼지창 들고 늠름한 장군을 표현하고 대감을 놀 때는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호탕한 성격을 막걸리 먹어가며 그려내는 것이 정작 배우였다. 이럴 때 무당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이었다. 배우가 연기할 때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배역에 몰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황해도굿은 아예 연극이었다. 그것도 너무너무 재미있는 연극이었다. -황루시(관동대 미디어문학과 교수) 김금화 선생의 영화를 찍으면서, 선생이 젯상에 밥을 퍼 담아 올리는 것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큰 무당의 밥에 대한 감각’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한 편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굿의 화려한 기예 이전에 존재하는, 신을 모시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성스러운 행동이었다. 반평생 배고픈 시절을 겪은 만신의 기억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 그만큼 육화된 생명사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쌀 한 톨에 말 한 마디씩 들어 있다는 표현은 또 얼마나 문학적인지. 쌀은 살아 있는 것이라는 뜻도 되겠지만, 그 속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니 옛날 우리 민중의 지혜가 물씬 풍겨나온다. -박찬경(<만신> 감독) 굿은 조선시대까지 한을 풀고 고통을 극복케 해주는 정신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했고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사회적 행사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춤과 노래가 곁들여진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굿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단순한 무속이 아닌 ‘종합예술’로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를 주재하는 무당은 신과 사람 사이의 매개자다. 사람의 편에 서서 신을 설득하고 달래고 사정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신에게 전한다. 또한 무당은 신의 선택을 받은 신의 아기다. 따라서 신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를 버려야 한다. 신의 밥을 먹고 신의 잠을 자고 신의 걸음을 걸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걱정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옳고 그름을 일깨워주며 신의 세계 속에 사는 것이 무당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을 다 껴안고 살아야 하는 무당은 오지랖이 넓을 수밖에 없다. 김금화 만신은 세월이 흐르며 외할머니 김천일 만신이 전해준 이런 ‘고통들’의 의미를 하나둘 깨달아갔다. 그러면서 결국 이 고통들을 해소하는 길은 굿을 하면서 복을 나누고, 덕을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는 것임을 깨닫는다. 또한 굿을 통해 용서하고 위로하는 것을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아도 바로 되받지 않고 가슴에 묻고 참았다가 나중에 오부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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