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는 영원히 무기력할 것이다. 대폭발하려는 꿈을 버리지 않는 한” 작가 장현정이 마흔 살을 기념하며 자축(?)의 의미로 펴낸 산문집이다. 무기력하거나 대폭발하며 살아온 극단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느낀 바를 자유분방한 형식으로 묶었다. 앞서 브리콜라주 형식의 철학에세이 <소년의 철학>(2010 학교도서관저널 인문사회 추천도서)과 록음악을 통해 사회학을 소개한 사회학 입문서 <록킹 소사이어티>(2013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을 통해 독특한 형식의 책을 선보여 온 작가는 이번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풍경과 일상의 단상을 때론 기발한 상상과 농담으로, 때론 정색하고 쓴 칼럼 등으로 종횡무진 풀어낸다. 1997년, 군 복무 시절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공간시대문학을 통해 발표한 수필 ‘꿈꾸는 영혼’을 비롯해 그동안 작가가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글 중 27편을 추리고 여기에 새로 쓴 글을 더해 모두 61개의 짧은 글을 실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근사한 삶을 살고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한 번 잘해보라고 진심으로 응원해 줄 준비가 돼있어. 진짜야. 하지만, 왜 그들은 나에게 응원해 주지 않는 걸까.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게 없는 삶이라도 갑자기 죽거나 하지는 말고 그냥 지금 이대로 한 번 잘 살아보라고 말이야.” “......” “......” “한 번 잘 살아봐. 갑자기 죽거나 하진 말고.” -15p “무턱대고 살아왔고, 바로 그래서 유쾌한 삶이 가능했다” 작가는 그동안 천방지축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며 살아왔다. 10대 후반부터 시를 쓰고 록밴드 보컬로 활동했다. 책의 제목인 ‘무기력 대폭발’도 1998년 발매한 앨범 수록곡에서 따왔다. 당시 ‘한국대중음악사 100대 명반’에 선정될 만큼 많은 기대 속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2001년, 돌연 다 때려치우고 고향 부산에 돌아와 사회학을 공부했다. 이후 작가, 사회학 강사, 방송인, 문화기획자, 출판사 대표, 사회적기업 대표, 지역잡지 편집장 등으로 정신 안 차리고 활동하는 사이 초등학생 아들과 딸의 아빠도 되었다. 아래로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 위로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부모 사이에서 제대로 끼어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이것저것 호기심을 잃지 않으며 기웃대다 문득 마흔 살이 되었다. 작가는, 돌아보면 무턱대고 살아온 시간이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만큼이나마 잘 살아왔다고 말한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살든, 그 바탕에는 읽고 쓰는 일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무기력한 사람들과 대폭발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기력하지도, 대폭발하지도 않는 시즌 2의 삶을 위해 이제 막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은 참이다. 2015년에 마흔 살이 됐다. 그동안 무턱대고 살아왔다. 또,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만큼이나마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희한한 장점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덕분에 이런저런 영역에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읽고 쓰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살든, 그 바탕에는 읽고 쓰는 일이 있다고 지금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든까지 산다고 내 맘대로 가정해보면, 마흔이 된 나는 이제 생의 반환점을 돈 셈이다. 지금까지의 40년을 시즌 원이라고 한다면 시즌 투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뭔가 자축(?)의 의미로 기념이 될 만한 걸 남기고 싶었다. -225p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언제나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일상의 순간순간을 다른 높이와 각도에서 바라보면 수천 개의 삶이 우리 안에 포개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중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기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애잔함과 분노만큼이나 웃음과 희망을 놓칠 수 없다. 선악이 칼로 자르듯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나와 너의 이야기, 우리와 저들의 이야기,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 등 온갖 모순이 한데 뒤섞여있음을 알게 되고 또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삶이란, 되고 싶다고 다 될 수도 없고 되기 싫다고 해서 피해갈 수도 없는 모순덩어리다. 무기력한 시간들 속에서 한 방에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대폭발이 필요하다고 유혹하는 세계, 그 사이에서 시시각각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본 풍경들은 실없는 문장 속에서도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다. 날 것 그대로의 야성이 살아있는 명랑한 문장들 사이로, 은근하고 느긋해서 더욱 스케일 큰 치열함과 만나보자. 우리는 내일 아침에도 파도처럼 아름답게 일렁이다 부서져 저 먼 곳으로 밀려갈 것이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밀려올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아침 해’같은 작품이 걸려있고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가 흐르는 도서관에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다 실제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사위는 고요하지만, 가슴은 얼마나 뜨거워질 것인가. -203p 하루를 잘 살아간다는 것.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풍경을 소중하게 바라본다는 것. 곁에 있는 사람을 꼬옥 꼬옥 안아주는 것. 거기서부터 희망은 시작되는 것일 테지. -219p 다시 봄이 올 때까지, 광안리는 그들에게 하나의 경계가 될 것이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회색 몸뚱이에 순백색 대가리를 가진 저 갈매기가 어느 날 문득 작심하고 날개를 펴 순식간에 세 배 정도 커진 몸으로 저 멀리 수평선을 넘어 날아갈 때까지, 바다를 닮은 푸른빛을 띤 노란색 부리로 더 이상 아이들이 던져주는 새우깡 따위를 받아먹으려하기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잠시 침묵하는 날까지. -22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