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애니메이션 거장의 이야기
일본은 고도의 산업화를 이루어 내고, 그 경제 규모에 준하는 생활체계가 자리 잡기 시작한 80년대 전후로는, 경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시민들의 정서가 도시의 고독을 양산했다. 때문에 여전히 많은 일본인들에게는, 아직 경제대국은 아니었더라도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단다. 어느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상실감에 대한 집착’을 다룬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발전의 기치 속에서 역으로 황폐해져 가는 것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그가 그리는 하늘과 바다, 구름과 바람의 풍경부터가 그 반성이 향하고 있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관한 잊어가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상실감은, 상실 그 자체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단 부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애착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 그러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되찾아야 한다는 열망과 되찾지 못하고 있는 권태가 뒤섞인 정서다. 일본인들에겐,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사랑한 전 세계의 팬들에겐, 하나의 승화 방략으로서 하야오가 아니었을까? 그는 우리에게서 사라져 간 것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를 맡은 작품은 물론, 큰 영향력을 미친 작품들까지 다루었다. 책의 제목은, 최근 개봉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적 성격을 의도했다. 오랜 세월 동안 그가 세상에 내놓은 이야기들이 이미 그 대답일 터, 적절히 함축할 수 있는 문구를 고민했다.
한때 은퇴작으로 알려지기도 했었지만, 은퇴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10년 전에도 나돌았다. 그때도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또 은퇴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하야오는 ‘다시’란 대답으로 은퇴설을 일축했다. 정년이 예술가의 삶에 있어 은퇴란 쉽지 않은 결정일 게다. 그가 살아온 날들은 그가 살아갈 날들이기도 하기에…. 덕분에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에겐, 향유의 시간이 연장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 끝없는 이야기. 그 중심에서 애니메이션의 거장이 살아온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삶도 이해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흐림 없는 눈으로 보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결국 그 귀결의 지점이 유년 시절이다. 물론 비판의 의견도 있지만, 그 시절의 정서가 우리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프로이트의 행복론은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꺼내어 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펼쳐진 하늘만큼이나 환상적인 공간이 또 있을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하다는 느낌이 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들. ‘비행(飛行)’을 다루는 장면들이 유난히 많은 그의 세계가 가업에서 비롯된 영향이란 사실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정신분석에서 해석하는 하늘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맞물려 있는 공간이다. 동심에 기반해 어른들까지 설득하는 하야오 자신의 꿈이 맞닿은 공간이기도 할 테고….
이젠 사회의 중추가 된 중년들의 유년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래소년 코난」 때부터 이고 있었던 저 파란 하늘, 그 하늘 아래에서 다시 만나는 코난과 포비는,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득달같이 들러붙는 삶의 권태를, 잠시나마 따돌릴 수 있게끔 해주는 하야오의 작품들은 그 대답을 ‘지나간 어느 여름날’의 소녀와 소년에게서 찾아냈다.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라고 칭송받지만, 그에겐 애니메이션은 행복한 작업이 아니다. 되레 지루하게 느껴지는 그 작업을 끝내고 난 다음 날에 다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상하다고….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자신의 작품으로 인해 행복감을 느끼는 다수의 개개인이 목적이다. 자기 혼자 행복해지는 게 인생의 목표라는 것, 내가 사는 목적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생각은 납득을 못 하겠단다. 그 공적 행복의 역사를 간추린, 이 또한 독자들의 가슴 속에 젖어드는 한 권의 행복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