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회의주의의 대부 마이클 셔머, 음모론의 모든 것을 해부하다
“모든 음모론은 더 깊은 진실을 숨긴 ‘대리’ 진실이다!”
음모론을 믿는 건 바보라서가 아니라 사실 똑똑해서다
“음모론의 더 깊은 곳에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우리만의 진실이 숨어 있다”
독단적 주장과 초자연적 설명을 과학적 방법으로 평가하는 과학적 회의주의 사상가이자 사이비 과학, 미신, 창조론에 맞서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 온 회의주의 운동가 마이클 셔머가 이번에는 음모론의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 회의주의자 협회의 창립자이자 회의주의 잡지 <스켑틱>의 편집장으로 셔머는 그동안 수많은 음모론자의 때로는 날선, 때로는 조롱하는, 때로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듣고, 반박하고, 설득해 왔다. “나는 평생 음모와 음모론을 연구해 왔다. 수돗물 불소화는 시민을 중독시키고 대기업에게 이득을 주었기 때문에 수돗물 불소화가 대중에게 저지른 가장 큰 사기라고 믿는다는 정치인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알카에다의 공격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내부자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9/11 트루서와 맞닥뜨린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존 F. 케네디, 로버트 F. 케네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지미 호파, 다이애나 왕세자비,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신세계 질서, 삼극위원회, 외교관계위원회, 300인위원회, 템플기사단,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빌더버그 그룹, 로스차일드 가문, 록펠 러 가문, 그리고 비밀리에 미국을 운영하는 시오니스트 점령 정부의 사악한 행적에 대한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려주었다. 세계 정복을 꿈꾸는 모든 음모주의자를 가두려면 매디슨스퀘어가든이 필요할 것이다.”(79쪽)
셔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그저 순진해서 음모론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음모론은 음모론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정체성 및 세계에 대한 이해와 연결된 더 깊은 진실을 숨기는 대리 진실이다. 2021년 1월 6일 국회의사당에 무단으로 침범해 테러를 저지른 큐어넌 음모론자를 보며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큐어넌 음모론자는 미국 정부가 그림자 정부의 꼭두각시이며 버락 오마바와 톰 행크스가 소아성애 조직을 운영한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들은 이 나라를 위해서 자랑스럽게 국기를 들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국회의사당 테러를 자행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이런 황당한 음모론을 믿는 큐어넌 지지자들의 마음속에는 숨어 있는 그 깊은 진실이란 무엇인가? 큐어넌 지지자가 품은 진실이란 특정 주장의 경험적 진실 여부가 아니다. 그들은 정부를 신뢰할 수 없고, 정치인들은 이득을 위해 전쟁을 벌이려 하며, 자유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발언권은 실제로는 아주 제한적이라는 그들의 더 깊은 믿음, 이른바 신화적 진실을 음모론으로 대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음모주의의 문제는 우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문제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한민국 역시 정치적 음모론이 횡행하여 테러가 벌어지고 자신의 이득과 헤게모니를 위해 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이 세상이 당신을 공격하려고 거대한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를 극단화하고 있다. 이제 누가 왜 음모론을 믿는지, 어떤 진화적,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이 음모론을 부추기는지, 음모론을 분류하고 체계화하여 서로 다른 원인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과 어떤 음모론이 진실인지 결정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제 우리 모두 음모론자라고 생각하자.”
믿지 않으면 혼란한 세상에 대처할 수 없다
음모론에 빠지는 세 가지 주요 요인
2016년 12월 4일, 에드거 웰치는 소총을 들고 워싱턴 DC에 있는 ‘코멧 핑퐁’이라는 작은 피자집에 쳐들어갔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세상을 구할 구세주로서 신봉하는 ‘큐어넌’ 음모론자였는데 큐어넌은 그 어떤 증거도 없이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비욘세, 레이디 가가, 톰 행크스 등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이 피자집 지하에서 악마를 숭배하는 의식을 펼치고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소아성애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믿었다. 에드거 웰치는 이 현장을 확인하고 극악무도한 성도착자를 처단하겠다는 정의로운 의식을 치르러 간 것이다. 피자집에 도착한 웰치는 총기를 난사했다. 주변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러나 코멧 핑퐁에는 작은 식자재 창고만 있을 뿐 지하실이 없었다. 당연히 사탄숭배자와 소아성애자도 없었다.
여기서 드러나고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음모론자의 믿음이 터무니없다는 것? 그런 괴상한 소문을 믿는 사람은 당연히 비합리적이고 우매한 사람일 것이라는 점? 그렇지 않다. 이런 비이성적인 믿음은 부모 집에 얹혀살며 전자파를 막기 위해 은박지 모자를 쓰고 극단적 견해를 표출하는 정치 블로그를 운영하는 20대 백수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시민, 직장 동료, 심지어는 유력 정치인도 갖고 있다. 그들은 2020년 미국 대선이 조작된 사기극일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총기 난사 사건은 정부가 꾸민 위장 작전이었으며, 클린턴 부부가 존 F. 케네디 주니어를 살해했고, 9/11 테러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내부 소행이었으며, 2001년 9월 11일 펜타곤이 여객기가 아닌 순항 미사일에 맞았다고 선언했다고 믿는다.
마이클 셔머는 과학적 회의주의자로 활동해 온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 기상천외한 믿음을 가진 음모론자를 수없이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음모와 음모론, 음모주의 같은 용어의 기원과 역사를 추적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모론을 유형별로 분류했다. 이를 통해 그는 도대체 멀쩡한 사람이 왜 음모론에 빠져드는지 그 답을 제시한다. 바로 음모론을 믿는 이유를 설명하는 세 가지 모델, ‘대리 음모주의’, ‘부족 음모주의’, ‘건설적 음모주의’이다. 모든 음모론은 그 속에 더 깊은 진실을 담고 있는 대리 진실이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 거기 심은 컴퓨터칩으로 빌 게이츠가 우리를 조종할 것이라는 음모론의 심연에는 거대 제약 회사의 증거 조작, 이익 추구를 이유로 그런 회사를 신뢰하지 않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제약 회사의 사기와 횡포는 과거에도 지금도 실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리 음모주의다. 또한 백신에 대한 음모론을 굳게 믿고 퍼뜨리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원들, 즉 같은 집단의 사회 구성원에게 충성심을 드러내는 신호로 작용한다. 이것이 음모론이 그토록 공고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족 음모주의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많은 경우 음모론이 진실로 판명되기에 믿지 않는 것보다는 믿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의 진화적 역사를 반영한다. 나뭇가지가 뱀이라고 착각하고 도망갔던 우리 조상은 그렇지 않은 조상보다 더 잘 생존하고 번식했다. 우리 마음속에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자동 알고리듬이 들어 있다.
셔머는 이 세 가지 요인이 음모론을 믿는 핵심 이유이며 그 위에 인지 부조화, 확증 편향, 우리편 편향, 패턴 만들기 같은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일단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음모론자를 바보가 아니라 복잡하고 위험한 세계를 자기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고 하는 동료 시민으로서 말이다. 음모론자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전쟁, 범죄, 빈곤 같은 큰 문제를 알고 이해하고 해결하고 싶기에 음모론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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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부터 1972년 사이, 미국 공중보건국은 앨라배마 터스키기 대학에서 매독을 치료하는 연구에 참여하면 의료 서비스, 식사, 무료 장례 보험을 제공한다는 약속을 하고 가난한 흑인을 모집했다. 무료로 치료해 준다는 소식에 많은 흑인이 모였다. 그러나 약속은 거짓이었다. 보건당국은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해주지 않았고 아스피린과 철분제만 주며 매독이 사람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알기 위해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