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타인의 기원》 이다희 번역가 첫 에세이
정여울 작가 강력 추천!
“사는 맛에 사는” 생계형 번역가의
소비와 소유에 대한 반짝이는 사유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싶은 물건을 두고 마음속으로 사야 할 이유와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저울질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저울의 양쪽에는 다양한 고민과 자기 합리화가 올라간다. 이 물건은 내게 얼마나 필요한가,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가격은 얼마고 통장 잔고는 괜찮은가, 내 취향과 요즘 유행은 어떠한가, 소유욕과 과시욕 중 어느 쪽이 앞서는가, 가성비나 가심비를 따질 것인가, 공정과 윤리와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브랜드인가, 환경·노동·젠더·상표권 문제는 없는 제품인가?
오랫동안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도 찜해 둔 겨울 신발을 두고 마음속 저울질을 하던 중 깨달았다. 그저 물건의 유용성과 가격, 내가 쓸 수 있는 돈과 필요성만을 비교했던 예전과 달리,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추억, 환경과 창작물의 가치 보호에 대한 책임감,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느끼는 사회적 압박과 거기서 벗어나려는 몸부림”(6쪽) 등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이 많아졌음을 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이상 “지겹지만 멈출 수 없고” 갈수록 더 복잡해지는 이 저울질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기로 했다.
첫 글의 소재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자신의 번역 스승이었던 아버지 고(故) 이윤기 선생이 물려준 책장의 처분을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느 자식들처럼 이다희 저자도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특히 이윤기 선생이 기획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번역 프로젝트에 번역 파트너이자 애제자로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물론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고민하며 수락하는 과정, 그리고 결과물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며 그 자세한 뒷이야기는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항상 집 안에서 글 쓰고 번역만 하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저자는 커 갈수록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언어와 취향이 궁금했다. 그래서 영어, 불어, 희랍어, 라틴어를 배웠고 30년이 넘도록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으며 주한미국대사관, 영어 독서 학원 등 다양한 직장을 경험했다. 게다가 일대일 영어 강습, 영어 말하기 대회 심사 위원, 영어 자막 만들기, 건축 잡지 번역 등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 번역 노동자로 활약하며 “들어오는 일은 거절하지 않고 들어오지 않는 일은 찾아서”(94쪽) 했다.
이렇듯 ‘이윤기 번역 대학원’ 1기생으로서의 커리어를 다져 왔으니 일상 곳곳에 아버지의 유산이 자리하고 있는 건 당연했다. 버릴지 말지 저울질하게 만든 책장도 그중 하나다. 이렇게 아버지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 소회를 글로 옮기고 나니 오래도록 곁에 두고 애정을 쏟았던 물건, 꼴도 보기 싫어 진즉에 버린 물건, 이런저런 이유로 남에게 팔거나 물려준 물건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사고 팔고 버리고 아끼는 행위를 통해 만끽했던 여러 감정들, 천착했던 고민과 사유들을 진솔하고 위트 있게 펼쳐 보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글들을 한데 모으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왜 살며(live) 왜 사는가(buy)?”(194쪽) 물건을 사는 일은 “아무리 감추거나 포장해도, 아무리 겸손하고 은근하게 과시해도 세상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낸다.”(149쪽) 고로 어떤 물건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떤 삶을 살 것이냐 하는 것과 상통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은밀하게 박장대소하며 맞장구를 치고 싶은 대목들이 넘쳐난다”는 정여울 작가의 평처럼 저자가 털어놓는 ‘사는 마음’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왜 살고(live) 왜 사는가(buy)?
누구나 소비에 대한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삶에 대한 취향과 기준을 말해 준다. 이 취향과 기준은 어느 쪽이든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된다. 예를 들면 외투를 고를 때 주로 ‘예쁜가, 편한가, 사이즈는 적당한가, 좋은 소재를 썼는가, 관리는 편한가’ 등을 살핀다. 하지만 이 옷을 입은 자기 모습이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를 더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고른 옷들은 그 주인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옭아맨다. 저자는 맘에 쏙 드는 트렌치코트(a.k.a. 바바리)를 구입하면서 “나를 가두고 제한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그 제약에 저항하는 일”(65쪽)이라는 평생의 실천 과제를 얻었다. 과연 그 ‘바바리’는 “입으면 멋진 사람처럼 보일 줄 알았는데 이미 멋진 나를 잘 드러내 주었다.”(67쪽) 그렇다면 ‘멋진 나를 잘 드러내 줄’ 옷과 물건은 어떻게 고를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바로 취향이다. 일상이나 업무에서 자주 사용하는 제품일수록 특히 그렇다. 시각적 취향을 만족시키는 유려한 디자인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필요를 넘어선 삶의 면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즉,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일하는 기계, 돈 버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취저’ 제품을 사는 행위는 “인간성을 사수하기 위한 발버둥”(139쪽)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합리적인 소비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소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소비 욕망은 종종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선 너머”(101쪽)를 향하곤 한다. 또 ‘이왕 사는 거’라는 생각이나(저자에게 “이왕 사는 거”는 “곧 사정없이 돈을 쓰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신호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내 선택을) 칭찬하리라는 확신”(147쪽)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저자도 외면할 수 없는 강력한 ‘지름신’을 만나 충동적으로 파주의 한 타운 하우스를 질렀다. 입주 당시에는 집 주변에 편의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고, 집 청소와 관리가 힘들었으며, 거액의 대출금을 상환하느라 허덕여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대부분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미래 가치를 고려하기보다 취향에 따라 마음 가는대로 선택한 경험 덕분에 취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소비 기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159쪽)
이처럼 소비는 내 욕망과 마주하는 일이자 나를 더 잘 알아 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사는’ 행위는 나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기왕이면 즐거운 소비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야 삶도, 일상도 즐거워지니까. 반대로 즐겁지 않은 소비, “타인을 죽이고 동물을 죽이고 지구를 죽이는 소비”(198쪽)는 경계하고 삼가자고 말한다.
사고 팔고 버리는 데에는 취향이 필요하다
취향과 기준은 물건을 살 때에만 필요할까? 아니다. 다른 이에게 팔거나 물려주거나 버리는 것처럼 물건과 작별하는 경우에도 중요하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찻잔 세트를 ‘당근마켓’에 내다 파는 저자의 친구들처럼 말이다. 저자 또한 찻잔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무려 여덟 벌짜리 은수저 세트를 받았다. 하지만 친구들의 찻잔 세트와 마찬가지로 “처음 샀을 때의 모습 그대로, 주방 도구들이 잠자고 있는 서랍 밑바닥에 누워”(42쪽) 있다. 저자를 사로잡은 미스터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왜 엄마들은 살림살이가 많고, 그 살림살이를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할까? “엄마도 딸과 마찬가지로 소비 욕구가 있다. 하지만 엄마들의 소비가 허용된 영역은 넓지 않았다. 찻잔은 허용된 범위 안에서 취향에 따라 고르고 구입하고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품목”(44쪽)이라는 것이 저자의 추리다. 또 “딸에게 물려주겠다는 목적”은 “엄마의 소비 욕구를 정당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렇게 구매한 제품에는 엄마의 취향이 오롯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수많은 세간 매물의 이면에는 엄마와 딸의 취향 차이라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당근마켓에 팔아 버린 엄마의 찻잔처럼 내 취향에 맞지 않는 물건과 작별하는 일은 일종의 ‘홀로서기’다.(19쪽)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