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의 대명사

오은 · 시
1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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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오은의 여섯번째 시집. 전작 『나는 이름이 있었다』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라 반가움이 크다. 2002년 4월, 오은 시인은 스무 살에 시인이 되었다. 2023년 올해로 데뷔한 지 20년을 꽉 채우고 21년째에 접어들었다.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2009년에 나왔으니, “등단한 순간과 시인이 된 순간이 다르다고 믿는”다는 시인이 쓴 약력처럼, 이르게 등단하여 천천히 시인이 되었다. 1부부터 ‘말놀이 애드리브’라는 부제를 달고 거침없이 언어유희를 보여주며 경쾌하게 전복적이었던 첫 시집은 큰 주목을 받았다. 오은은 이를 한때의 신드롬으로 끝내지 않고, 이후 14년 동안 여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간의 간격이 짧은 적도, 긴 적도 있지만 2~3년에 한 권꼴로 나온 셈이다. “시인은 직업이 아닌 상태라고 생각한다”는 또 다른 시집에 시인이 쓴 약력처럼, 오은은 ‘시인의 상태’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그 과정에서 고유의 시 세계가 더욱 단단해졌음은 물론이다. 시인이 되고 나서, 오은은 시와 멀어진 적이 없다. 오은은 주황이다. 빨강과 노랑의 중간 색. 그에게 빨강은 “모든 익는 것들의 종착지”이고, 노랑은 “한없이 밝아”지게 하는 천진난만한 색이다. 거침없이 정열적인 청년과 해맑고 환한 아이가 함께 있다. 하여 그의 시는 끝내 빨강으로 치우치지 않았고, 기어이 노랑을 놓지 않았다. 오은은 원색은 좋아했지만 원색적이었던 적은 없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라고 했던 시인은 이제 “없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도 “이름”을 가린 “대명사”로. ‘있었다’가 ‘없음’으로 가는 길에는 ‘잃었다’가 놓여 있다. “‘앓는다’의 삶이 끝나고 ‘않는다’의 삶은 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던 시인은 ‘잃었다’를 거쳐 ‘없음’ 앞에 당도했다. 그 슬픔을 능히 짐작하면서도 시인은 ‘없음’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 그에게 “시 쓰기는 무언가를 여는 사람의 표정을 떠올리면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쏟아지는 대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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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1부 범람하는 명랑 그곳 9 그곳 10 그곳 12 그것들 13 그것들 16 그것들 18 그것들 20 그것들 22 그것들 25 그것 28 그것 30 그것 32 그것 34 그것 37 그것 38 그것 40 그것 41 그것 44 그것 46 그것 48 그것 51 그것 52 그것 54 그것 56 그것 58 이것 59 2부 무표정도 표정 그들 63 그들 66 그들 67 그들 68 그들 70 그들 72 그들 74 그들 77 그들 78 그 80 그 82 그 86 그 89 그 92 그 94 그 97 그 100 그 102 우리 105 우리 106 우리 108 우리 110 우리 113 우리 116 우리 118 우리 120 우리 122 너 124 너 127 너 130 너 132 나 134 해설 전방위의 슬픔, 전속력의 명랑·오연경 136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없음은 있었음을 끊임없이 두드릴 것이다” ‘웃음’과 ‘울음’이 나란히 놓이고 ‘무표정’으로 ‘표정’을 지을 때 ‘없다’와 ‘있었다’ 사이에서 떠오르는 ‘잃었다’의 자리 시인 오은의 여섯번째 시집 『없음의 대명사』가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85번째로 출간되었다. 전작 『나는 이름이 있었다』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라 반가움이 크다. 오랜만의 새 시집이긴 하지만 그사이 시인은 다양한 앤솔러지와 산문집, 청소년 시집 등을 출간했을 뿐 아니라 2018년 4월부터 2023년 현재까지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오은의 옹기종기’를 맡아 현재까지 진행해오고 있으니, 읽고 쓰고 그에 대해 나누는 일을 게을리한 적은 없다. 2002년 4월, 스무 살에 시인이 되었다. 올해로 데뷔한 지 20년을 꽉 채우고 21년째에 접어들었다.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2009년에 나왔으니, “등단한 순간과 시인이 된 순간이 다르다고 믿는”다는 시인이 쓴 약력처럼, 이르게 등단하여 천천히 시인이 되었다. 1부부터 ‘말놀이 애드리브’라는 부제를 달고 거침없이 언어유희를 보여주며 경쾌하게 전복적이었던 첫 시집은 큰 주목을 받았다. 오은은 이를 한때의 신드롬으로 끝내지 않고, 이후 14년 동안 여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간의 간격이 짧은 적도, 긴 적도 있지만 2~3년에 한 권꼴로 나온 셈이다. “시인은 직업이 아닌 상태라고 생각한다”는 또 다른 시집에 시인이 쓴 약력처럼, 오은은 ‘시인의 상태’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그 과정에서 고유의 시 세계가 더욱 단단해졌음은 물론이다. 시인이 되고 나서, 오은은 시와 멀어진 적이 없다. 오은은 주황이다. 빨강과 노랑의 중간 색. 그에게 빨강은 “모든 익는 것들의 종착지”(『너랑 나랑 노랑』, p. 16)이고, 노랑은 “한없이 밝아”지게 하는 천진난만한 색이다(같은 책, p. 11). 거침없이 정열적인 청년과 해맑고 환한 아이가 함께 있다. 하여 그의 시는 끝내 빨강으로 치우치지 않았고, 기어이 노랑을 놓지 않았다. 오은은 원색은 좋아했지만 원색적이었던 적은 없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라고 했던 시인은 이제 “없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도 “이름”을 가린 “대명사”로. ‘있었다’가 ‘없음’으로 가는 길에는 ‘잃었다’가 놓여 있다(“‘잃었다’의 자리에는 ‘있었다’가 있었다”―‘시인의 말’). “‘앓는다’의 삶이 끝나고 ‘않는다’의 삶은 살고 있는 중이”(「않는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 p. 97)라고 했던 시인은 ‘잃었다’를 거쳐 ‘없음’ 앞에 당도했다. 그 슬픔을 능히 짐작하면서도 시인은 ‘없음’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 그에게 “시 쓰기는 무언가를 여는 사람의 표정을 떠올리면서 시작”(「나의 시를 말한다」, 『현대시』 2023년 5월호)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쏟아지는 대명사들. 텅 빈 대명사 속의 특별한 이야기 대명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대신 나타내는 말 또는 그런 말들을 지칭하는 품사로, 지시대명사와 인칭대명사로 나뉜다. 『없음의 대명사』는 총 두 개의 부로 나뉘는데, ‘1부 범람하는 명랑’에는 지시대명사, 2부 ‘무표정도 표정’에는 인칭대명사를 제목으로 한 시가 놓였다. 「그곳」이라는 제목의 시 3편, 「그것들」 6편, 「그것」 16편, 「이것」 1편과 「그들」 9편, 「그」 9편, 「우리」 9편, 「너」 4편, 「나」 1편이 담겨 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오연경 평론가는 “누구보다도 언어의 물성 및 자기 지시성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작법을 만들어”온 오은에게 “대명사는 말이 말을 가리키는 세계, 말들에 대한 말이 숲을 이루는 왕국의 입구로 삼기에 맞춤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라는 텅 빈 대명사 하나를 던져놓고 신나게 변죽을 울려 우리로 하여금 꽉 찬 의미를 낚아 올리게” 한 다음 “‘그곳’에 데려다 놓”는 식이니 말이다. “무엇을 지시하는지 알 수 없”이 대명사가 “제목의 자리에 놓”여 있는 이번 시집에서 독자들이 “어떤 구체적인 대상도 떠올리지 않은 채 말과 말이 모여 특별한 이야기가 되어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열면 그것들이 있었다. 보란 듯이. 잊어도 있겠다는 듯이, 있어서 잊지 못할 거라는 듯이. 그러나 잊으려고 열었다. 있으면 생각나니까, 나타나니까, 나를 옥죄니까. 잊지 못하니까. 있지 않을 거야, 있지 않을지도 몰라, 있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들은 있었다. 잊지 못할 거야, 영영 잊지 못할지도 모르지, 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어김없이 있었다. 그것들은 바깥에 있었다. 안에서는 모르는 곳에. 안은 안온해서, 평이해서, 비슷해서 알 수 없었다. 속사정은 여간해선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몸을 웅크려 농밀해지기만 한다. 평생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열 마음과 여는 손만 있다면. 없어도 계속 생각날 것이다. 머릿속에 나타날 것이다. 가슴을 옥죌 것이다. 없음은 있었음을 끊임없이 두드릴 것이다. 닫으면 그것들이 사라졌다. 감쪽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야. 눈을 감기가 미안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지 않는 것 사이에 그것들이. 계속 생각나면 계속 생겨나는 그것들이. 열어도 닫아도. 열지 않아도. 닫지 못해서. 있다. ―「그것들」, p. 16 『없음의 대명사』를 읽다 보면, 독자의 시선도 시인의 시선을 따라 ‘그것’이 ‘있었던’ 자리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라고 시인은 말한다. 시선을 붙든 장면, 불시에 찾아든 감정, 무시로 젖어드는 상상이 빚어내는 분위기는 비록 오래 머물지 못하고 희미하게 사라질지 모르지만, “없음은 있었음을 끊임없이 두드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인의 시선이 채워나가는 이야기는 주로 상실하고 상처받은 이들의 “속사정”이다. “여간해선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그 사정 속으로 성큼 발걸음을 내디디는 일이 오은의 시 쓰기인 것이다. “웃음의 대명사”로 불리며 사람들의 입방아 속에 부서지고 마모되어 사라져버린 ‘그’, 혹은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목구멍이 붓고 있”는 ‘그’가 여기 있다. 그는 맞춤법에 약했다 첫 직장에 입사할 때까지 ‘이래라저래라’가 ‘일해라 절해라’인 줄 알았다 한번은 사내 메신저를 통해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김 과장님은 나한테 맨날 일해라 절해라 하신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동료는 한동안 답신을 하지 않았다 메신저에서도 존칭과 경어를 쓰는 게 딱딱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농담할 줄도, 침묵을 참을 줄도 몰랐다 동료는 한참 뒤에 ‘이래라저래라’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는 인터넷 검색을 했고 한동안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창피한 나머지, 알아서 잘 못하고 있었다 26년 동안 뿌리 깊게 믿고 있던 어떤 체계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다시는 저 표현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때마침 김 과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푹 수그려 인사했다 김 과장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동료 역시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농담할 줄도, 침묵을 참을 줄도 몰랐던 그는 임기응변에도 젬병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깊디깊었다 황급히 메신저 창을 닫는데 거래처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차질 없이 발주發注하겠습니다.” 수화기를 붙잡고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누구에게 보이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이었다 그가 가장 공들여 하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야’라고 묻는 이도 ‘우리가 하는 건 발주가 아니라 수주受注야’라고 일갈하는 이도 없었다 ‘일해라 절해라’ 말고는 일절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다가 상사가 지나가면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절하라는 거 아니었어? 그는 그런 줄 알았다 매일 일하고 절했다 퇴근 무렵, 김 과장이 회식하자고 했다 “내일 쉬는 날이지? 오랜만에 부어라 마셔라 어때” 호탕한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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