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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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옛 글에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고 하였다. 옛 그림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다. 그것은 학문의 대상이기 전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하는 예술품이다. 옛 그림은 학문적으로 대할 때에는 까다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 인간의 혼이 담긴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할 때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기름지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생명의 의미를 고양시킨다.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잠자는 아기의 고운 얼굴이나 새순이 움트는 나뭇가지, 좋아하는 벗의 모습이나 망망한 바다의 아득한 수평선을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있다. 그렇게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거나 찬찬히 들여다볼 때 우리 내면에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대상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관심, 사랑이 자란다. 혹은 그것을 보고 있는 동안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에 차 있음을 느낀다. 음악을 정말 잘 듣는 사람들은 듣는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작은 시냇물이 여울지는 소리나 이른 아침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또는 잠자리에서 듣는 빗방울 소리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있을까? 그림을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다. 길가의 나무들을 보라. 언뜻 보기에는 모두 같은 듯하지만 하나도 서로 같은 모습이 없다. 거리의 사람들 얼굴을 보라. 어쩌면 그렇게 제각기 다르고 소중한 한 생명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러므로 마음이 순수하고 여유로울 때 세상은 있는 그 자리에서 기적이다. 우리 옛 그림도 그러하다. 옛 그림을 한 점 두 점, 한 획 두 획 그린이의 손길을 따라 보노라면 거기에 담긴 조상들의 마음결도 한 자락, 두 자락 드러난다. 비록 세월의 때를 타서 좀 어두워졌거나 일부 상했을지라도 그 속에 담긴 정다움과 반듯함, 그리고 의젓한 심지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요즘처럼 외양이 화려한 시대에 어쩌면 우리 옛 그림은 패랭이꽃이나 송사리처럼 수수하고 자그마한 존재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현란한 카네이션과 열대어에서 찾을 수 없는 조촐함과 진솔함, 그리고 따사로움이 있다. 좋은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바쁘게 서두르다 보면 참맛을 놓치게 된다. 찬찬히 요모조모를 살펴보고 작품을 통하여 그린 이의 손동작을 느끼며 나아가서 그 마음자리까지 더듬어 가늠해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정녕 시간을 넘어선 또 다른 예술 공간 속에서 문득 그린 이와 하나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바깥의 무엇엔가 깊이 몰두하고 있다는 것은 유한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하나의 축복이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산수화를 즐기는 사람은 삶 속에서도 자연을 찾고, 꽃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삶 속에서도 꽃을 키우며, 인물화를 진정 즐기는 사람은 삶 가운데서도 사람들을 사랑하게 마련이다. 그것도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생태까지도 마음 깊이 이해하는 참 사랑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