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 류영모

박영호
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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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사 세계가 인정한 차원 높은 독창적인 사상가 - 정양모 (전 성공회대 교수, 다석학회 회장) 일생을 두고 본받을 만한 스승, 다석 류영모 - 림낙경 (시골 교회 목사, 한국정농회 회장) 머리말 1부 영성의 향기 그윽한 생애 두 번 낳은 어머니의 크신 은혜 초창기 교육제도와 배움 독립정신의 요람, 오산학교의 부름 타율적 신앙에서 자율신앙으로 일본 유학 포기와 입지 기인인 오산학교 교장 제자 함석헌과의 첫 만남 문장으로 허락 받은 결혼 첫날밤 독수공방한 신부 3.1운동 때 대신 치른 옥고 영성의 연경반 강의 「성서조선」을 발행한 김교신과의 만남 솜공장에 불이 나도 태연 북한산록에 출애굽으로 숙원을 이룸 자연 속에 은둔하는 기쁨 은평면 자치위원장으로 숙원을 이룸 자연 속에 은둔하는 기쁨 은평면 자치위원장으로 추대 받음 쉰두 살에 이룬 큰 깨달음 잣나무 널판 위의 삶 다석에서 영석으로 우리말은 하늘나라 말 위기의 동란에도 의연한 몸가짐 미리 받은 죽을 날 무의식까지 뿌리박힌 신앙 여든일곱 살에 출가 시도 시름의 옷을 벗다 영성의 향기 그윽한 생애 몸성히 살기 수를 아름답게 보다 2부 죽음을 밟고 선 영원한 생명 1.한알과 씨알 섬김 스승 류영모와 제자 함석헌 역사에 나타난 씨알정신의 성육신 톨스토이, 간디, 류영모의 일치된 씨알정신 류영모의 씨알정신 형성과정 속죄신앙에서 영성신앙으로 영성신앙은 새 인류의 나타남 짐승 성질이 원죄 짐승 성질에서 벗어난 자유 2.더 위없는 큰깨달음 삶과 깨달음 류영모의 큰 깨달음 얼나로 솟난 뒤 달라진 삶 다석 연보

출판사 제공 책 소개

2008 세계철학대회에서 전 세계가 주목한 우리의 큰 사상가이자, 우리나라가 낳은 20세기의 위대한 정신적 스승, 다석(多夕) 류영모. 일생 동안 ‘참’을 찾고, ‘참’을 드러내고, ‘참’에 돌아간 성인(聖人)의 삶과 사상 다석 류영모와 다석사상의 입문서이자 결정판 『다석 류영모』는 ‘독야청청’ 다석사상을 전도하는 다석의 제자인 박영호가 스승인 류영모의 삶과 사상을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학자나 열린 종교인, 전문가 등 일부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어 알려져 있는 다석 선생과 다석사상을 일반 사람들도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이 책의 기획 의도이다. 후학들을 위한 ‘다석 낱말사전’(3년 정도 예정)과 병행하면서 이 책의 원고를 쓰고 다듬를 거듭해 1년여 만에 책이 나오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 쏟은 애정과 노력을 회상하며 “다석 류영모와 다석사상에 관한 입문서이자 결정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다석사상을 ‘쉽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더욱 뜻깊다 하겠다. 다석사상이 세상을 바라보고 또 세상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몸이 불편한 가운데에서도 펜을 놓지 않은 노학자의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다석은 어떻게 구도의 길을 걷게 되었고, 무엇을 깨달았고, 어떻게 달라졌는가?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다석의 육체적 생애를, 2부는 정신적 사상을 다루고 있다. 2부는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뉘어, 다석이 어떻게 구도의 길을 걷게 되었고, 구도 속에서 무엇을 깨달았고,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다석에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설명해준다. 2부 내용의 기틀은 지난해 집필실로 찾아온 한 기자가 던진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그 기자는 다석 선생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과 얻은 뒤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나름대로 답변을 하긴 했지만 스스로 무언가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이 질문은 저자에게 일종의 ‘화두’가 되었고, 이후 이 화두에 대해 더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깊이 있는 사고는 다석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2부 ‘죽음을 밟고 선 영원한 생명’으로 정리되어 태어난 것이다. 기인이자 진인(眞人), 다석 류영모 다석이 어떤 분이었냐는 질문에 다석의 제자인 김흥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인(眞人), 진인이었지요!” 일생동안 참을 추구한 다석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다. 지행합일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었던 류영모(1890~1981)는 온 생애에 걸쳐 진리를 추구하여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이다. 젊어서 기독교에 입신했지만 불교와 노장(老莊), 그리고 공맹(孔孟) 사상 등을 망라한 동서고금의 종교·철학 사상을 두루 탐구하여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진리를 깨달아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정신적인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다석은 우리나라 3천재, 5천재의 하나라는 말을 들었고, 평생을 오로지 수도와 교육에 헌신하면서 일생 동안 ‘참’을 찾고 ‘참’을 잡고 ‘참’을 드러내고 ‘참’에 돌아간 ‘성인’이다. 이승훈, 정인보, 최남선, 이광수, 문일평 등과 교유했고, 김교신, 함석헌, 이현필, 류달영, 김흥호, 서영훈 같은 이들이 다석을 따르며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오산학교 제자였던 함석헌은 “일생 동안 정신적으로 단층(斷層)을 이루며 비약한 때가 두 번 있었는데 첫 번째가 류영모 선생을 만났을 때”라고 했다. 그리고 다석을 그리며 “내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오늘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하고, “한 번도 선생님에게 질문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노라면 그때에 모든 문제를 좀 물어보지 못한 것일 한(恨기)합니다”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다석은 평생동안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서울YMCA 총무였던 현동완이 다석을 YMCA 연경반 강의(1928~63)에 초빙하지 않았다면 “류영모가 깨달은 진리가 시공 속에 묻혀 버려 아는 이가 아주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묻혀 있었던 보화와 같은 이러한 다석의 사상은 최근 들어 다시 빛을 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다석은 마하트마 간디처럼 드높은 경지에 이른 위대한 정신적인 스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2008년)에서 제자인 함석헌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소개될 만큼 이제 다석의 사상은 세계가 주목하는 사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금욕적인 삶을 살다 다석은 “나(自我)가 죽어야 얼(靈我)이 산다”는 것을 깨닫고, 나(自我)를 없이하는 길은 삼독(三毒)의 탐.진.치(貪瞋痴)를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석은 탐욕(貪慾)의 뿌리인 식욕을 버리기 위하여 하루에 한 끼니만 먹었으며, 진에(瞋?)의 뿌리인 미움(憎惡)을 버렸으며 치정(痴情)의 뿌리인 색욕을 버리기 위해 해혼(解婚)하여 부부가 남매처럼 지냈다. 다석은 또한 잣나무로 만든 널판(상가에서 쓰는 널감)에서 생활했는데, 그것은 매일 죽음을 잊지 않으며 매일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였다. 앉을 때는 언제나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죽는 날까지 그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인도의 요가와 동양의 섭생, 양생법을 참조하여 자신이 독특히 개발한 체조로 건강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아 91세까지 장수할 수가 있었다. 또 사람은 될 수 있으면 걸어다녀야 한다면서 항상 걸어서 다녔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대학공부는 부질없는 짓이라며 공부를 그만두고 귀국하는데, “다석의 관존민비를 뒤집은 민존관비의 씨알사상”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후 다석은 “어떠한 노동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와 다른 이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는 실제로 자연 속에서 은둔하며 자신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며 살았다. 군자표변(君子豹變)과 택선고집(擇善固執) 다석의 삶을 응집해서 보여주는 말이 군자표변과 택선고집이다. 군자표변이란 ‘모름지기 군자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아님을 알았을 때에는 표범이 달리던 길을 꺾듯이 그동안 자기가 가지고 있던 신념, 소신, 철학, 사상 따위를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류영모는 종교에서 이처럼 군자표변했다. 정통 기독신앙에서 비정통 기독신앙으로 종교관을 바꾼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타율적인 교리신앙에서 자율적인 자각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석은 “스님들보다 불경에 달통하고, 도교인보다 노자, 장자에 도통했지만, 개종하지 않았다. 동서양을 모두 회통한 뒤에도 다석은 예수를 자신이 본받을 궁극의 선생이자 가장 큰 스승으로 모셨다”(김흥호)고 한다. 택선고집이란 ‘옳다고 믿는 생각을 고집하는 것’이다. 평범했던 오산학교에 기도교의 씨앗을 심어 오산학교가 명실상부한 기독사학으로 거듭나는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다석이다.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인이 된 것도 다석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오산학교 교사 시절 다석은 수업 전에 학생들에게 기도하자고 했는데, 기도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냥 조용히 혼자 기도했다. 결국 일주일 뒤 학생들은 다석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기도했다고 한다. 결혼에 얽힌 일화에서도 다석의 ‘고집’스런 면이 잘 드러난다. 자신의 왜소한 모습과 농사짓는 것이 목표라는 말에 결혼을 반대했던 신부 김효정의 부모를 다석은 글로써 설득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풍속대로 하자면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혼례를 치러야 하는데 다석은 신랑 집에서 혼례를 치르는 친영을 고집해 이를 성사시켰다. 물론 목포에 살던 신부의 부모들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때 다석은 장인 장모에게 인사를 드리지 않고서는 신방에 들 수 없다며 결혼식 직후 장인 장모를 만나러 목포로 갔고, 이 사실을 모르는 신부는 밤새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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