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이 된 전쟁과 부패한 정치가 만들어낸 탐욕의 네트워크
국가안보라는 장막을 친 ‘그들만의 세계’를 파헤치다
무기산업은 어떻게 분쟁, 폭력, 빈곤을 지속시키는가?
전 세계 시민들 대다수는 무기거래가 ‘국가안보’에 불가피한 필요악이라는 절충적 관점에 동의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극단주의 테러에 대한 방어로서 무기의 개발과 구매,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세계 무기산업을 20년 이상 조사한 앤드루 파인스타인이 전 세계 무기거래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분석해 그 실체를 밝혔다. 《어둠의 세계》는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을 폭로하며, 무기산업이 초래했던 수많은 분쟁·전쟁과 그에 따른 민간인들의 참상을 되짚어본다. 미국과 중동,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아프리카 대다수의 국가들의 수많은 정부 공식문서와 언론탐사보도, 그리고 저자가 직접 대면한 무기밀매업자들과의 인터뷰까지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했다. 분쟁 중인 양국 모두에 무기를 판매한 전설적 무기딜러에서부터 무기거래에 통달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저지른 ‘국가 수탈’까지, 산업이 된 전쟁과 부패한 정치가 만나 무엇을 가능하게 만드는지 파헤친다.
무기거래를 지탱하는 부패의 구조
이야기는 어느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우디의 왕자이자 전 주미 대사인 반다르는 이 책의 주연이나 마찬가지인 인물로, 현대 국가 간 무기거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논쟁적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2020년대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로 사우디와 영국 그리고 미국 간의 무기거래를 주선하면서 여러 패악을 저질러왔다. 이 책은 반다르 왕자뿐 아니라 영국의 바실 자하로프(현대적 무기거래의 창시자)에서부터 미국 오바마와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현대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벌여오거나 눈감아온 추악한 거래들을 고발한다. 각국 정부의 공식 통계와 양심적 언론인들의 르포르타주, 내부고발자의 증언을 씨줄 삼고 현대 무기거래 연구자들의 치밀한 논증과 각종 판결문을 날줄 삼아, 멀게는 1900년대 초반부터 가깝게는 2020년 현재까지 100여 년 동안의 사건·사고와 각종 문헌들을 샅샅이 뒤져내 가히 ‘무기거래의 대서사시’를 엮어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무기 생산 및 거래 국가는 미국,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중국 등 다양하다. 무기의 거래는 이 같은 국가 간 협의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 거래를 실질적으로 성사시키는 것은 무기제조업체들이다. 이때 업체들은 제3자를 거쳐 거래를 진행하는데, 문제는 그 제3자가 반란군이나 테러리스트 같은 반국가·비국가 행위자를 비롯해 때로 실체마저 의심스러운 중개인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 간에 이뤄진 최대 무기거래인 ‘알야마마’ 사업은 이 같은 비밀스러운 무기거래와 비리가 얽히고설킨 최악의 문제적 사건이다. 반다르 왕자로 대표되는 사우디의 왕족들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영국의 마거릿 대처, 토니 블레어에 이르는 수상들과의 공식적 거래 이면에서 각국의 정부, 정보기관을 비롯한 비밀스러운 네트워크를 통해 뇌물을 주고받으며 거대한 ‘알짜배기’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들이 사업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짜낸 지급 체계는 이들의 관심이 양질의 최신 무기가 아니라, 각 거래에서 커미션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느냐에 쏠려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94쪽 도표 참고).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는, 사우디의 반다르 왕자가 알야마마 사업의 대가로 받은 뇌물만 해도 20여 년간 총 10억 파운드(1조 8,000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같은 거대 뇌물수수의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한 영국의 중대비리수사청(SFO)의 조사가 영국과 사우디 정부의 방해에 굴복하게 되는 장면들은 무기거래를 지탱하는 부패의 구조가 상당히 치밀하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게 보여준다.
팬데믹 시대에 무기거래는 과연 필요한가, 라는 질문
2021년 전 세계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중동에서는 이라크를 정점으로 민간인 대상 폭탄테러가 끊이지 않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크고 작은 극단주의 테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시민들이 맞닥뜨린 불안정과 위험은 심각한 수준이며, 이 분란의 원인이 무분별한 무기거래에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하지만 대다수의 무기제조국들은 자국의 방위산업 육성을 옹호할 뿐 분쟁이나 테러 상황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여전히 느슨한 규제, 허술한 감시, 불투명한 거래 등으로 끊임없이 비리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 무기산업은 그 산업이 생산하는 물건이 생명을 위협하거나 파괴한다는 도덕적 문제 외에도, 시민사회의 기회비용을 박탈한다는 문제도 있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쓰여야 할 돈과 자원이 군비 지출로 빠져나가고, 이로 인해 시급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재정이 부족해져 시민들의 삶이 더욱 불안정해지는 문제다. 이러한 기회비용의 극명한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HIV/에이즈 예산이 무기구매 예산으로 전용되었던 일이다. 1990년대 후반 남아공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HIV/에이즈 감염인 600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의약품을 구매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영국 등 무기제조국의 강권에 따라 필요하지도 않은 무기를 사는 데에는 약 60억 파운드를 쏟아부었다. 당시 무기거래의 커미션만 3억 달러에 달했고, 이는 아프리카국민회의와 여타 정치인들에게 흘러들어갔다. 향후 5년간 남아공 국민 35만 5,000명 이상이 HIV/에이즈로 목숨을 잃었다.
무기산업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기회비용의 박탈은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 신음하는 2021년 현재 더더욱 두드러진다. 국방예산 지출 비중이 막대한 미국과 영국이 코로나19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극명한 예다. 일례로 2020년 미국의 국방 관련 실제 지출액은 1조 2,000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는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의료체계를 확충하는 예산의 두 배에 이를 정도다. 또한 영국은 2020년 하반기 코로나19 2차 유행이 한창 진행 중일 때에도 국방예산을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인 160억 파운드로 늘린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의 의료진은 기초적인 방역물품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경기침체가 가속화될수록 무기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무기 역류 현상, 안보가 아닌 폭력과 학살의 불쏘시개가 되는 무기들
무기거래가 지닌 문제 중에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무기가 예상치 못한 이들의 손에 잘못 들어갈 경우 발생하는 ‘역류’ 현상”(728쪽)이다. 무기 생산과 거래 자체가 비밀계약, 이중계약 등으로 점철되니 부패한 무기딜러들이 이에 개입하는 일이 흔하고, 이들은 철저히 경제적 이익만을 좇기 때문에 무기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미국 하원의원 찰리 윌슨이 아프가니스탄에 무분별하게 무기를 공급했는데, 그 무기들이 나중에 탈레반 등 이슬람 반군 세력에게 유입되어 결국 미국에 맞서는 용도로 쓰였던 일이 대표적 예다. 당시의 무분별한 무기공급은 “2001년 9·11 테러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류 현상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으며, 미국을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미움받는 나라로 만들었다”.(371쪽)
본래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한 부족 규모의 구식 군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끊임없이 공급되는 미국의 무기는 정식 군대의 위용을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냉전 시기 소련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았던 경험은 미국에 대한 두려움도 없애버렸다. 결국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