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에 관한 가장 완벽한 기록,
20세기 철학과 함께한 해체철학자의 삶
데리다의 이름과 사상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이 시작될 무렵인 197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6년, 미국 볼티모어에서는 프랑스에서 선풍적으로 유행하던 ‘구조주의’를 주제로 콜로키엄이 개최되었다. 그곳에서 데리다는 그 유명한 「인문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게임」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콜로키엄에는 데리다 외에도 그 당시 프랑스 지성계를 대표하는 풀레, 골드만, 이폴리트, 바르트, 베르낭, 라캉 등이 참석했다. 이 콜로키엄을 계기로 데리다는 탄탄대로를 걸으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1966년까지만 해도 데리다는 변변한 저서 한 권 출간하지 못한 젊은 철학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이런 노력은 1967년을 기점으로 드디어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목소리와 현상』, 『글쓰기와 차이』가 한꺼번에 출간된 것이다. 마침내 ‘데리다의 시대’가 도래했다. 어쩌면 미국에서의 콜로키엄과 이 세 권의 저서가 한꺼번에 출간된 ‘1966~67년’을 데리다 인생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이후에 출간된 저작들의 수가 거의 100여 권에 달하기 때문에 1966~67년이 갖는 중요성을 과대평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간에 나타난 ‘해체’(또는 ‘탈구축’), ‘차연’, ‘보충대리’, ‘산종’, ‘흔적’ 등과 같은 개념들이 이른바 ‘데리다의 아성’을 쌓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데리다가 명성을 쌓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처절하고도 비장한 과정이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는 데리다의 삶에 대한 장엄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이 책의 저자인 브누아 페터스의 기념비적인 노력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해체철학의 기원이 된 삶의 변곡점들
한 권의 ‘평전’의 성패는 대상이 되는 인물에 관련된 자료들의 수집, 열람, 분석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또한 이 인물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가능하면 많이 만나는 것도 성패를 가르는 요인 중 하나이다. 이처럼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정확성과 신뢰성이 평전의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데리다처럼 꼼꼼하게 자료를 남기고 간직한 경우, 또 많고도 난해하기 그지없는 저작들을 남긴 경우, 세계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사상을 설파한 경우에는 이런 작업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인 브누아 페터스는 이런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낸다. 그는 이 책을 데리다의 ‘지적 평전’보다는 오히려 그의 ‘삶’에 대한 장엄한 기록으로 보아줄 것을 독자들에게 요청한다. 그러니까 데리다의 사상을 해설하고, 그의 고유한 개념들을 설명하기보다는 ‘데리다라는 인간의 삶’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데리다의 저작을 읽는 독자들이 던졌던 질문들, 가령 “그가 대체 어떤 삶을 영위했을까”, “그의 주요 개념들이 어떤 지적 배경에서 잉태되었을까”, “그는 어떤 이유에서 ‘해체철학’을 하게 되었을까”, “그는 어떤 여성관을 가졌을까” 등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데리다의 삶을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1966~67년을 기점으로 삼아 기술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1966~67년 이전의 데리다의 삶은 역경, 권토중래, 간난신고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알제 출신 유대 소년의 파리 입성기,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합격한 고등사범학교와 철학교수자격시험 수험기, 암울했던 제2차 세계대전, 군대 생활, 파리 근교에 위치한 고등학교 철학 교수의 삶에 대한 기록 등등.
하지만 데리다의 1966~67년 이후의 삶은, 마치 어렵던 과거 시절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는 것처럼 탄탄대로의 여정이다. 물론 후반기의 삶이 그저 영광과 행복의 연속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인종, 출신 지역, 기질 등을 이유로 프랑스 대학가와 지성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데리다의 고난의 행군은 이 기간에도 국가박사학위 취득 실패, 프랑스 내 대학 정교수가 되지 못하는 아픔으로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이 기간 이후의 삶을 1966~67년 이전의 삶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은, 그의 명성이 프랑스보다는 오히려 미국과 독일을 위시해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확대되었고, 또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커져 갔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저서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는 철학자의 저서 중 하나라는 사실이 그 단적인 증거다. 게다가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이런 관심이 철학 분야만이 아니라 문학, 예술, 건축, 음악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데리다의 삶을 통해 읽는 20세기 정신사의 기록
1930년에 태어나 2004년에 세상을 떠난 데리다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1930년 이후의 프랑스 지성계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 지성계의 지형도를 그리는 작업과도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을 읽는 흥밋거리 중 하나는 단연 이 같은 지형도에서 데리다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가늠해보는 데 있다. 데리다의 이름은 프랑스와 전 세계 지성계를 화려하게 수놓은 철학자들, 작가들과 항상 연결되어 있다.
이폴리트, 강디약, 사르트르, 카뮈, 알튀세르, 블랑쇼, 레비나스, 리쾨르, 레비스트로스, 푸코, 라캉, 바르트, 부르디외, 주네트, 들뢰즈, 주네, 식수, 낭시, 라쿠라바르트 등과 같은 프랑스 학자들과 하이데거, 가다머, 설, 오스틴, 하버마스, 드 만 등과 같은 외국학자들이 그들이다.
데리다를 이들과의 관계 속에 위치시킨다는 것은 20세기 중후반을 장식한 여러 사건들과 사유의 흐름들, 가령 알제리 독립전쟁, 제2차 세계대전, 나치즘, 마르크시즘, 정신분석, 구조주의, 68혁명, 페미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사유를 성찰하고 재음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를 읽는 것은 20세기의 ‘세계 정신사’의 일부를 읽는 작업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작업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