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페미니즘

니나 파워
1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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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페미니즘은 '혁명보다' 더 포괄적인 해방을 추구하는 정치적 기획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 말이 되었지만, 정작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은 고갈된 말이 되어버렸다면? 1980년대의 반反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을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려고 했다면,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여성의 적들은 페미니즘의 언어를 훔쳐서 여성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나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다. 가령 페미니즘의 언어는 이제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고, 노동시장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착취를 은폐하기 위해 활용된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텅 비게 만든 여러 도둑들 중에서, 특히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의 이데올로기와 소비자 자본주의를 가장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전자가 ‘노동의 여성화’를 통한 유연한 착취를 마치 여성해방의 주요한 성과라도 되는 양 선전한다면, 후자는 자본주의라는 억압의 구조를 변혁하지 않고서도 여성이 해방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과연 더 많은 여성 기업가를 배출하는 것이나 여성들을 위한 쇼핑천국을 새로 짓는 일 따위가 궁극적으로 여성의 해방을 가져올까? 파워는 언젠가 페미니즘이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실존의 양식의 발원지였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페미니즘이 ‘혁명보다 더 포괄적’이었던 원래의 급진적 기획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을 해방적인 기획으로 만들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질문할 필요가 있다. 『도둑맞은 페미니즘』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바로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출세와 쇼핑 이외에도 여성들에게 희망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하는 일은 언제나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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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0.0 시작하며 0.1 평등? 0.2 사라 페일린, 혹은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 0.3 매스꺼운 매파 페미니즘의 등장 1.0 노동의 여성화 1.1 당신은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다 2.0 소비자 페미니즘 2.1 페미니즘™: 속임수라는 동전의 양면 2.2 소비문화: 영화 속의 소녀들 3.0 특권화된 노동 양식으로서의 포르노그래피 3.1 머니샷: 포르노그래피와 자본주의 3.2 사회주의 프로그램은 인간의 감각적 쾌락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3.3 성적 좌파에서 축소주의적 수용까지 4.0 맺으며 해설/ 페미니즘을 도둑맞는 게 가능할까? 옮긴이의 말/ 페미니즘, 혁명보다 더 포괄적인 인명해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백래시』 이후의 페미니즘 전쟁 2009년에 출간된 파워의 『도둑맞은 페미니즘』은 미국과 영국에서 페미니즘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책이다. 비록 분량은 길지 않지만, 이 책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을 둘러싼 인간 조건의 위기와 정치적 가능성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처한 위기가 어떻게 맞물리는가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반동세력이 진보주의자들을 공격하는 진영 싸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레이건과 대처의 보수화 바람을 타고 반동세력은 70년대 페미니스트들이 이룬 성취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자 했다. 얼마 전 국내에도 소개된 『백래시』에서 수전 팔루디가 상세하게 묘사했듯이, 학자와 언론인, 의사들이 합세한 여성들에 대한 공격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여성들이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며, 출산율이 저조한 것은 여성들이 일을 하기 때문이고, 아이들이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엄마들이 이기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라는 전통적 가치로 무장한 반反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에게 자상한 엄마나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로 돌아갈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1990년대를 기점으로 페미니즘을 둘러싼 전쟁의 양상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블레어와 클린턴이 대변했던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시대정신은 비록 노동이나 경제적 불평등 문제의 해결은 차후로 미뤄두었지만, 다양성과 여성 인권, 다문화주의는 전향적으로 끌어안았다. 덕분에 성 정체성/지향이나 인종, 출신 등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공평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발상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상식과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에 발맞추어 점차 공적인 토론장이나 미디어에서 노골적으로 차별을 부추기는 혐오표현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비차별주의와 다양성에 대한 포용을 강조하는 진보적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성차별주의자들이나 인종주의자들은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여성의 적들에게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두었음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제 공론장에서 패색이 짙어졌다고 판단한 적들은 무조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대신에, 페미니즘의 언어를 훔쳐서 자기 것으로 삼는 전략을 채택했다. 파워의 『도둑맞은 페미니즘』은 이 새로운 전략이 본격화되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를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누가 페미니즘을 훔쳤나 페미니즘의 언어를 누군가가 훔쳤다면, 도대체 누가 도둑인가? 파워의 주장에 따르면, 도둑은 한둘이 아니고, 도둑질의 방식도 제각각이다. 안타깝게도 이 새로운 싸움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들조차 여성의 편이 아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첫 번째 도둑은 군사주의 매파들이다. 2000년대 초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이른바 ‘불량국가’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가 필요할 때, 이들은 매스꺼울 정도로 감상적인 방식으로 페미니즘의 언어를 소환해 왔다. 느닷없이 페미니스트 투사로 거듭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주요인사들은 ‘탈레반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손톱을 뽑혀가며 신음하는 중동의 여성들을 외면할건가!’라고 외치면서 전쟁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부시는 낙태정책을 지원하는 국제가족계획단체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는 것도 거부했다. 두 번째 도둑은 오로지 여성을 권력의 최상층에 올리는 것만이 여성해방의 길이라고 외치는 언론과 미디어다. 이들은 여성의 실질적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차별과 억압의 근본적인 구조를 변화시키는 문제는 뒤로 제쳐두고, 현존하는 위계제 안에서 권력의 상층부에 오른 여성에게만 주목한다. 하지만 마가릿 대처나 콘돌리자 라이스가 그러했듯이, 이들은 때때로 다른 여성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만든 정책의 집행자가 여성 지도자였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들의 입장에 따르면 ‘여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대책은 무엇인가’라는 구조에 대한 질문은 ‘고위직에 몇 퍼센트의 여성이 있는가’라는 대표에 대한 질문으로 손쉽게 환원될 수 있다. 기업의 여성임원이나 여성고위공무원, 여성정치인은 이제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과 그 자신들이 차지한 지위에 따라서만 평가될 것이다. ‘과연 고위직에 진출한 여성으로 인해 평범한 여성들의 삶이 더 나아졌는가’라는 질문은 효과적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 책이 고발하는 세 번째 도둑은 여성에 대한 유연한 착취를 마치 여성해방의 주요한 성과라도 되는 양 포장하는 현대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이데올로기다. 이 이데올로기는 멋지게 차려입은 성공한 전문직 여성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자기정당화를 꾀한다. 여전히 여자들이 남자들에 박봉의 질 낮은 일자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선택에 따라 감수해야 할 개인의 문제로 이해된다. 임신과 출산, 양육의 부담도 여전히 여성에게 맡겨지지만, 그로 인해 여성이 받을 수 있는 고용 상의 불이익은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선택의 결과로 여겨진다. 한편으로는 과거까지 여성노동만의 특징이었던 고용의 불안정성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보편화되었다. 이렇게 모두의 노동을 ‘여성화’시켜버린 노동시장의 이데올로기는, 모든 노동자들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속속들이 자본화함으로써 스스로를 ‘걸어 다니는 이력서’로 빚어낼 것을 강요한다. 현대의 노동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을 광고해야 한다. 신체적 외양이나 태도 같은 개인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인간관계마저 빈틈없이 관리하면서, 자신이 언제나 준비된 노동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는 전문직 여성이 현대 노동자와 여성해방의 모범적 표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이면 뒤에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임신이나 가정에서의 문제로 고용주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임시직 여성노동자가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네 번째 도둑은 여성의 해방이란 오로지 더 많은 상품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소비자 페미니즘’이다. 200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특히 성공을 거둔 이 부류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적 자본주의라는 억압의 구조를 변혁시키지 않고서도 여성이 해방될 수 있다고 광고한다. 소비자 페미니즘은 한때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억압을 극복하려는 집단적 노력이었을 페미니즘을, 현대 자본주의가 모범으로 여길 만한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성공의 이상으로 교체하고자 한다. 소비자 페미니즘의 새로운 정의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란 자신의 능력과 매력을 믿고 성공적으로 경력을 개발하고 이끌어가는 여성이며, 그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원하는 재화들을 아낌없이 구매함으로써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여성이다. 그동안 “가부장제를 처부수자” 같은 한때는 급진적이었을 페미니즘의 구호는 분홍색 티셔츠나 배지, 에코백 등에 새겨져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목록에 오른다. 이제는 자기계발서가 되어 버린 페미니즘 도서와 함께 이 상품들은 행복한 쇼핑천국의 거주자들에게 호소할 것이다. 일차원적 페미니즘을 넘어서 요컨대 파워에 따르면,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고, 노동시장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착취를 은폐하기 위해 활용된다. 자기효능감을 증진시키는 패션아이템이나 화장품, 성형수술 기법을 광고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남성중심적 조직문화 안에서 예외적으로 살아남은 여성 지도자나 기업인에게 찬사를 보내는 데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이제 페미니즘은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더 이상 남자들이나 기득권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가디언』지의 편집장 캐서린 바이너가 말하는 것처럼 “페미니즘은 이제 참된 평등을 위한 싸움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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