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읽는 SF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하기 싫은 공부를 대신 해 주는 복제 인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시험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은 안 만들어지나?’ 같은 생각을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들은 어른들은 똑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쓸데없는 질문 하지 말고 공부나 해.” 그렇다고 어른들의 꾸중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상상을 접고 꼭 공부나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들이야말로 낡은 오늘과 이별하고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길을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이 세계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이 세계가 어디냐고? 바로 ‘SF의 세계’다.
한국 대표 SF 작가 김보영과 서울SF아카이브 대표 박상준이 쓴 《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는 10대들에게 보내는 SF 세계로의 초대장이다. 또 종종 ‘쓸데없다’고 치부되지만 사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질문들로 입이 간지러운 청소년 독자들에게 건네는 색다른 제안이기도 하다. 실제 인터넷 설문 조사로 모집된 질문들에 답하며 토론한 것을 토대로 구성된 이 책은 SF가 다루는 거의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더불어 SF가 현실 세계를 어떻게 그리는지, 미래의 모습을 어떻게 예측하는지 보여 줌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답을 미래 사회에서 구할 가능성을 찾는다.
만약 SF의 상상력이 인류를 구할 유일한 답이라면?
낡은 오늘과 이별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려는 10대들을 위한 SF 안내서
서울 근교의 한 문화 센터 강의실에서 ‘밤샘 고전 SF 단편 영화제’라는 이름의 작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밤 열두 시가 넘어서까지 강의실을 지키고 있는 건 작가 지망생, SF 덕후, 공대생, 기자, 영화제 직원 다섯 사람뿐이다. 아니, 다섯 사람과 로봇 하나. 그런데 이 중 로봇은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며 50년 뒤에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멸망을 막을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인공지능, 젠더, 진화, 미래 기술, 종말, 우주, 외계 생명, 시간 여행 등에 대해 온갖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해 토론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주제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로봇의 엉킨 데이터가 정돈되어 인류를 멸망으로부터 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얘기다. 이에 다섯 사람은 ‘몸을 기계로 바꿀 수 있다면 성별에 의미가 있을까요?’, ‘블랙홀에 빠지면 어떻게 되나요?’, ‘SF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왜 그렇게 지구를 침공하나요?’ 등 모두가 한 번쯤은 상상해 보았지만 ‘쓸데없는 질문’이라며 무시만 당했던 질문들에 답하며 지극히 ‘SF적인’ 토론을 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이들은 멸망할 위기에 놓인 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1부부터 4부까지, 나, 너, 우리,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SF는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설명하고 관련된 SF 작품과 과학 지식을 함께 소개한다. 1부 ‘나는 인간이다’에서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이 인간을, 또 인간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다른 존재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한편 2부 ‘나와 다른 너’를 통해서는 독자들이 다른 성별, 다른 신체적 특성, 다른 능력을 지닌 타인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혐오’와 ‘차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3부 ‘우리는 영원하지 않다’에서는 SF가 종말과 사후 세계를 그리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우리의 삶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만들어 가야 할지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4부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는 우주와 외계 생명에 대해 다룬다. 독자들은 어쩌면 가장 SF다운 방식으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땅이 아닌 다른 세상을 상상함으로써 세계를 보는 시야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의 특징
“SF가 ‘쓸데없는 상상’이라고? 그 말, 후회하게 될걸.”
SF로 배우는 미래 철학과 사고 훈련
SF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인간처럼 생겼지만 사실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로봇? 지구에 착륙만 했다 하면 무시무시한 초능력과 레이저총으로 공격부터 하고 보는 외계인?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과거든 미래든 원하는 시간으로 보내주는 타임머신? 허무맹랑하게만 보이는 SF적 상상들은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한 질문들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상은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등에 대해 질문하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책 《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는 SF에서는 미래가 현실에 대한 성찰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진보적인 문학인 SF는 현재의 과학 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에 대한 사고 실험이다. 우리는 늘 미래에는 지금과 다른 세상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고 실험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까지 SF를 통해 상상할 수 있다. 남자도 여자처럼 임신하는 세상을 그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를 되돌아보게 하거나(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차일드》) 시각장애인만 사는 나라를 상상해 장애란 사회의 인식과 제도의 장애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주는(허버트 조지 웰스, 〈눈먼 자들의 나라〉) SF 작품들을 보면 그 사실을 더욱 잘 알 수 있다.
2019년의 우리는 과연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신기하기만 했던 스마트폰은 어느덧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고, 과학자들의 우려 속에서 시작된 시험관 아기 시술은 이제 많은 난임 부부들의 희망이다. 과학의 발전은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든다. 그리고 변화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또 오늘과는 다를 내일을 미리 상상해야 한다. 과학이라고 하면 겁부터 먹는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변화된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세계관과 철학을 준비해야 하는 10대들에게 ‘내일을 상상하는 법’을 알려 주는 이 책은 친절하고 흥미로운 미래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이 어른들의 꾸중으로 의기소침해진 10대들에게 ‘쓸데없는 질문’이란 없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SF는 ‘남자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될까요?’나 ‘로봇과 인간이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들을 쓸데없다고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 사회를 더 날카롭게 분석하여 미래에 대한 철학이 담긴 대답을 내놓는다.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인 SF 작품들을 소개하며 이러한 작품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또 그 이야기가 어떤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만들어졌는지 세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니 SF를 전혀 모르는 10대도 괜찮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SF 보는 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SF는 단순히 취향일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효율성이라는 것은 마법과 같거나 난해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자유롭게 활용해 상상하고 뒤집어 보는 재미 또한 제공한다. 그러한 유희를 즐기다 보면 다양하고 복잡했던 가치들에 대한 고정 관념들 역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관심이 생겨 이 책에서 언급된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류가 상상해 왔던 과학적 상상력의 커다란 맥락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지용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연구교수)
SF는 말했지, “내일은 오늘과는 다를 거야.”라고
발전하는 과학 기술과 친밀하게 인사하는 법
과학이 미래를 이끌어 갈 중요한 학문이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과학을 통해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체계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 과거에는 초월적인 존재의 의도라고 생각되었던 수많은 자연 현상들이 지금은 과학적 근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