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의 포스터

폭식

김재영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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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
김재영 · 2009 · 소설
243p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첫 소설집 『코끼리』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작가 김재영의 두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4년 만에 펴내는 신작 소설집 『폭식』에는 자본의 논리가 횡행하는 이 시대가 어떻게 인간을 소외시키는지를 날카롭게 파고든 7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개인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섬세한 언어가 이러한 현실을 소설 속에 형상화한다. 자본과 민족의 관계에 천착해왔던 작가의 사유는 그간 깊이를 더하면서 이제 세계적 차원으로 전개된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정착하지 않는 내면을 추적하는 작가정신은 이미 국경 너머에 서 있다”(방현석)는 평은 김재영의 소설이 한국문학의 경계를 어떻게 넓히고 있는지를 암시하는 하나의 증언이다. ‘뉴욕’에서 마주하는 세계의 진실 이번 소설집에서 주된 배경으로 설정된 공간은 미국 뉴욕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최중심이라 할 수 있을 이 도시에서 역설적으로 주인공들은 풍요의 시대를 약속하는 자본의 흐름에서 배제된 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작가 본인의 미국 거주 경험을 토대로 실감나게 묘사한 뉴욕의 풍광이 이야기의 사실성을 더해준다. 「앵초」의 하윤은 9?11테러로 남편이 세계무역쎈터에서 목숨을 잃은 후 생존의 기로에 선다. 그녀는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둥바둥하지만, 외국인이기에 희생자 추모는 물론 시체수습마저 허용되지 않는, “죽음마저 국경이 갈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귀천이 나뉘는” 이 나라의 현실과 마주하면서, 그리고 그런 나라에 동화되어 미국적 가치만 추구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더욱 절망에 빠진다. 「롱아일랜드의 꽃게잡이」에 등장하는 수와 싸브리나는 각각 비참한 가족사를 간직한 채 외롭게 살아가는 한국인 이민자들이다. 민족주의적 발언으로 감옥살이를 한 교사 아버지 대신 미국에 이민간 삼촌에게 의지하며 미국이라는 행복의 나라를 꿈꿔오던 수. 그러나 파견근무차 온 실제의 미국은 민주화운동을 하던 삼촌이 의문의 익사체로 발견된 냉혹한 나라일 뿐이다. 타지에 살면서도 조국의 민주화를 열렬히 염원하던 아버지와 오드리 헵번 마니아로 미국식 상류층의 삶을 꿈꾼 어머니의 갈등 속에 성장한 싸브리나 또한 수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과 마주하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이들은 롱아일랜드 바다로의 여행을 통해 힘겨운 현실을 벗어나 다시금 낭만을 찾으려 하지만 이 세계의 비정함은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표제작 「폭식」에는 초국적 건설 대기업에서 일하는 민팀장이 등장한다. 건설현장을 찾아 전세계를 누비며 일류호텔에 묵고, 한때 입사동기였던 노동운동가가 앞장선 파업을 냉정하게 탄압하는 그의 모습은 일견 철저히 자본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화려하고 역동적인 그의 삶엔 실상 자신을 퇴출한 한국에 적을 두지 못해 이국을 전전하다 가족에게까지 버림받은 쓸쓸함이 가득하다. 여기가 어디지? 아침에 눈을 뜨자, 한동안 내가 있는 좌표를 몰라 헤맨다. 에이라인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타임스퀘어로 가야 하는지, 택시를 타고 자카르타 공항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기차를 타고 브라질의 히오 부란꾸 거리를 찾아가야 하는지.(「폭식」, 193면) 그는 과로로 인해 몸이 굳어가는 희귀한 병을 얻었으면서도 다시 회사에서 낙오되는 것이 두려워 진통제를 삼키며 여전히 세계를 누빈다. 이윤이 있는 곳을 찾아 끝없이 부유하는 그의 모습은 자본의 흐름에 실존을 내맡긴 수많은 현대인들의 단면을 직유하는 것이다. 머나먼 이국에서 감내해야 하는 생계의 어려움과 정체성의 혼란은 청춘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M역의 나비」는 바로 이러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조명한 작품이다. 대학 졸업 후 백수생활을 하던 ‘나’는 미국에서 곰탕집을 운영하다 병마에 시달리는 이모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뉴욕에 온다. 암울한 집안 분위기와 앞날의 막막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성 미란과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단신으로 기세좋게 유학길에 올랐던 미란은 그러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며 역시 어두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결국 돈많은 백인 노인과 결혼한 미란은 함께 떠나자는 나의 간청을 뿌리치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고 만다. 이처럼 『폭식』에서 뉴욕은 죽음 내지는 절망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전세계 자본의 움직임을 선도하는 제국의 압도적인 힘은 그러나 피부색이 다르고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을 포용할 만큼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작가는 뉴욕 맨해튼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통해 소설 속에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다. 제목 ‘폭식’ 또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는 개인간, 기업간, 국가간에 자본의 논리로 불균등하게 배분되는 이윤과 권력이야말로 이 시대를 규정하는 가장 커다란 흐름으로 인식한다. ‘폭식’은 모든 것을 흡수하는 힘있는 자의 폭력적인 행태가 어떤 모순을 야기하는지, 심지어 그렇게 폭식을 한 자 자신이 얼마나 기형적인 모습을 띠게 되는지를 상징하는 단어이다. 거대한 것과 사소한 것의 관계 배경은 한국이지만 조국을 떠나온 이의 아픔을 다룬다는 점에서「꽃가마배」 또한 위의 작품들과 동일한 맥락에 있다. 이 작품은 꽃가마배를 타고 가야로 온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의 여정과 태국에서 시집온 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계모의 가족을 만나러 태국으로 가는 화자의 행로가 교차되는 독특한 형식을 차용한다. 앞서 거론한 작품들이 중심부 국가로 이주한 반(半)주변부 국가 한국의 국민이 내부 구성원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차별과 착취에 직면하는 현실을 그렸다면, 「꽃가마배」는 국가간의 이러한 폭력적 위계질서가 주변부 국가를 대상으로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모순을 생생히 담아낸다. “고모는 곧장 여자를 불러 더이상 태국어로 된 편지를 주고받지 말라고 명령내렸다. 왜요? 왜 나 편지 쓰면 안돼요? 여자가 반항조로 물었다. 그러자 고모가 여자 손목을 움켜쥐더니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자네 속셈 모를 줄 알아? 처음부터 적당한 때에 도망갈 마음으로 여기 온 거 다 알아. 근데, 도망쳐봤자 갈 데 없어. 길거리 창녀가 된다면 혹시 몰라도. 그러니 얌전히 붙어 있어.”(「꽃가마배」, 24면) 차별과 착취라는 면모로 고착된 이 세계의 질서는 단순히 미국이란 강대한 가해자와 한국이란 허약한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순진한 민족주의적 대립이 아니라 세계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양산하는 모순의 전지구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의 폭력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일상화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질서를 야기한 거대한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다. 요컨대 김재영의 소설은 거대담론이 폐기되고 파편화된 개인만 남은 이 시대에 다시금 거대한 것에의 착목이 요구됨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해설을 쓴 평론가 홍기돈은 변화된 한국의 세계적 위상과 역할, 그리고 세계화의 진전이라는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민족)문학의 쇄신이 필요한데, 김재영의 작품이 제국에 대한 저항과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동시에 밀고나가면서 다른 민족과의 공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 더불어 민족문제를 계급문제와 통일시켜 파악해나간다는 점에서 (민족)문학론을 재구성해갈 방향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고 이야기한다.(홍기돈 「작고 작은 은빛 물고기 한쌍을 찾아서」) 그러나 작가가 이처럼 거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통로는 항상 개인의 일상이라는 작은 이야기에 있다. 『폭식』은 자본의 논리에 종속된 개인들의 삶이 얼마나 건조하게 시들어가는지를 섬세한 언어로 잘 포착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오히려 이 세계의 진실을 명징하게 발견하도록 이끈다. 작가는 “살아 있기만 하면 언제고 다시 기회의 문이 열리곤 하는 게 인생인지 모른다”(작가의 말)고 말한다. “역경을 딛고 끝내 살아남아 가슴에 살아숨쉬는 슬픔과 사랑을 품은” 이들에 대한 애정이 바로 이 ‘폭식의 시대’를 바꾸어낼 단초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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