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세의 지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과 ‘의식’, 현대 사회 치유의 단초를 제시하다
13세기 서구 유럽은 십자군 전쟁으로 점철된 위기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자로서 청빈, 박애, 무소유와 영혼의 순수한 자유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평생 진리를 추구했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계승해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이루며 스콜라철학을 완성한 시대의 지성이었다.《진리론》(책세상문고-고전의 세계 082)은 중세의 가장 위대한 성인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3대 대전 중 최후의 저술인《진리론Quaestiones Disputatae de Veritate》에서 ‘양심’과 ‘의식’에 관한 논의를 옮긴 것으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다.
《진리론》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강의록을 기초로 작성된 것으로, 종교적·철학적 주제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관심사 등 전통적 사유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강의에서 이루어진 토론을 반영하며 당대의 논쟁적이고 생생한 사유의 흐름을 보여준다.《진리론》저술의 바탕이 된 이 강의는 당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성직자들의 강한 거부감을 깊은 논의를 통해 해결해보자는 것과 특권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철학과 신학을 대중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 저작은, 오랫동안 신학의 시녀로 오해되어왔으며 일반 독자가 접할 기회가 드물었던 중세철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기서 논의된 수많은 항목 중에서 ‘양심’과 ‘의식’을 번역한 것은 철학이 현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역자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양심’을 철학적 용어로 정립하고, 우리의 의식과 행위의 제일원리로 본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만의 탁월한 사유였다. 그에 따르면 의식이란 앎을 우리 삶의 여정에 적용하는 것이며, 의식의 행위란 잘잘못을 판단하는 행위라는 측면에서 양심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양심에 기초해 있으며, 양심이 의식을 형성하는 근본 원리라는 것이다. 양심과 의식을 구분하면서도 이 둘의 관계를 필연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이 책은 인간 행위의 존엄함과 자율적 인간의 토대를 마련해주며, 양심의 소리가 외면당하는 현대 사회의 비극을 치유할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2. 토마스 아퀴나스, 위기와 격동의 세기에 태어난 성인聖人
13세기 서구는 ‘그리스도 지성이 위기에 처했던 격동기’인 동시에 ‘기독교적인 서구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는 황금기’이기도 했다. 두 세기 동안이나 지속되던 십자군 전쟁이 그리스도교의 최종적인 패배로 종결된 이후, 교황권의 쇠퇴와 세속화가 가속화되고 정교의 분리가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가장 불행하고 비참했던 ‘암흑의 시대’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중세 문화를 꽃피우게 되는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을 가지고 나타난 두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탁발 수도회’와 ‘스콜라(대학)’이다.
불멸의 성인 토마스 아퀴나스를 탄생시킨 수도회 13세기 초 혜성처럼 나타난 두 탁발 수도회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도미니크 수도회’였다. 그중 도미니크 수도회를 창시한 성 도미니크는 스페인의 한 성당의 사무장으로 본당 신부를 보좌하는 길에 십자군 전쟁에 의해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 후 도미니크는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작은 구호소를 마련해 집과 부모와 경작지를 잃어버린 이들을 구호하면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낀다.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게 하는 것 그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만이 그들을 지옥 같은 비참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임을 깨닫고, 교육에 전념하는 탁발 수도회 ‘도미니크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처음 만났던 도미니크회 수도자들을 “시냇물을 찾아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사슴”처럼 매력적이었다고 묘사했다. 그는 도미니크회 수도자들의 삶과 정신에 매료되어 망설임 없이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하고,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를 만나면서는 스승의 학식과 인품에 감화해 자신도 평생 학문 탐구를 할 것을 결심한다.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는 후일 로마 교황의 대주교 추천까지 마다하며 평수사로서 도미니크회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삶에 전념하는데, 그의 놀라운 학문적 업적들은 이러한 그의 소명 의식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도미니크회는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불멸의 철학자를 낳았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미니크회가 유럽 가톨릭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성장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스콜라철학의 완성자 토마스 아퀴나스 한편, ‘스콜라’ 즉 대학의 성립은 그리스도교가 ‘한 민족의 역사적 종교’가 아닌 인류를 위한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게 했다. 스콜라철학은 교회나 수도원의 부속학교에서 출발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바탕으로 가톨릭 사상을 재정립하면서, 교부철학보다 좀 더 보편적이고 학문적으로 연구된 대학의 철학을 표방했다. 아우구스티누스로 대표되는 교부철학이 플라톤 전통에 입각한 영성적, 초월적, 교회 특권적 철학이라면, 스콜라철학은 대학의 성장과 더불어 좀 더 학문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탐구한 보편적 철학인 것이다. 초기까지만 해도 이성은 신앙의 도구로서의 역할.철학은 신학의 시녀이다?을 견지해왔으나, 중기의 스콜라철학은 그동안 긴장 관계에 있던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이루어냈다. ‘이성’이 더 이상 신앙의 시녀가 아니라 신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반자의 역할을 하게 되며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러한 업적의 중심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다. 스콜라철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단순히 믿을 통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신이 무엇인지 몰라도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곧 그들의 신앙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의 다섯 가지 길’은 가장 잘 알려진 이론이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정신적 대부이며 ‘만물 박사’라고 칭해지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더불어 도미니크 학파의 꽃이자 ‘천사 박사’로 칭해지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스콜라철학을 완성시킨, 13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성이었다.
3. 순수한 양심 토마스 아퀴나스의 진리에 대한 중단 없는 추구
토마스 아퀴나스는 1265년 40세가 되던 해에 스콜라철학을 완성한 저서《신학 대전》과《진리론》을 동시에 저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진리론》은 출간을 위해 저술된 것이 아니었다. 이 저서의 원래 제목은 “진리에 대해 논의한 문제들”로,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한 대학 강의록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제에 대한 간단한 강의를 하고 서로 대립되는 결론을 제시한 후 수강자들에게 어느 결론이 더 적합한 것인지를 선택하고 이유를 설명하게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자연스럽게 서로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 수강자들 간에 토론이 형성되고 최종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를 중재했다. 이처럼《진리론》은 세미나 형식의 토론을 통해 논의된 것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른 대전《대-이교도 대전》이나《신학 대전》이 지니지 않은 독특한 장점을 가지는데, 바로 ‘열려 있음’이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학생, 일반 대중, 종교인과 비종교인이 함께 토론한 것으로 청중들의 개별적인 호기심을 일으키고 당시 논란이 되었던 것을 모두 다루며 다각도로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진리가 바뀔 수는 없는가’, ‘지옥에도 벌레가 있는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의식은 활동하는가?’ 등 다양한 질문들이 등장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체 12개 논의와 총 243개의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다루는 논의들은 진리와 신에 있어서의 진리에 대한 앎, 천사와 인간, 섭리와 운명 그리고 예정설, 은총과 정의, 이성과 양심(의식) 그리고 자유의지, 감정, 법열, 예언, 교육 등이다. 매 장마다 문제가 되는 주제에 대해서 ‘반대의 견해들’, ‘이에 대립하는 견해들’, ‘토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