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1부. 에게 시편
무無의 저녁
12월
우리는
이 그림자 없는 거리에서
커피
스쿨버스
고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질문
좋아한다는 말
인간이 싫은 날
거들떠보지 않는 죽음
역무원
엄마
없는 사람
나에게
2부. 내가 사는 세계의 방식
구름이 낮아 보이는 까닭
3월의 마음
마음의 3월
한국의 가을
기시감旣視感
불굴의 피로
생활의 실패
생활
칭찬의 세계
비판받을 권리
편
폭력
당한 사람
입장
돈
거짓말의 힘
거짓말 왕국
진실
공부
아름다운 사람
‘나’라는 슬픔
3부. 무한 너머 유한
처럼
목적지
미美
4부. 옆구리만큼 가까이 있었다
시 읽는 밤
한 줄을 쓰는 사람
1분 후의 세계
여름밤
이 바닥에서 놀다 보면
거기에 순간이 있었다
비 내리는 세계
눈 내리는 세계
쓸쓸함에 대하여
그리하여 어느덧 우리는
해설_ 불화(不和)의 시학_ 고봉준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
박용하 · 시
1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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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실시선 52권. 박용하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박용하에게 ‘세계’는 부재(不在)의 공간이다. 무(無), 거짓(말), 슬픔, 실패, 죽음 등 박용하의 시집에는 시인이 긍정할 수 있는 가치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 부재를 몰가치로 읽어선 안 된다. 그의 시에서 ‘부재’는 가치의 결핍을 지시한다. 현실 세계에는 그가 지향하는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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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불화(不和)의 시인, 불화(不和)의 시학
― 박용하 시집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
지금까지 펴낸 다섯 권의 시집-『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세계사, 1995),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문학과지성, 1995), 『영혼의 북쪽』(문학과지성, 1999), 『견자』(열림원, 2007), 『한 남자』(시로여는세상, 2012)-을 통해 “시인이 어떻게 당대(의 사회)와 불화(不和)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보여주었던 박용하 시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10년 만에 여섯 번째 개인 신작 시집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를 펴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고봉준 평론가는 박용하 시인과 이번 시집을 “불화(不和)의 시인이 쓴 불화(不和)의 시학”이라 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격렬한 유한’이라는 시집의 표제가 암시하듯이 (박용하) 시인에게 삶은 격렬한 순간, 그러니까 불화의 연속이다. 이전에 비해 어조는 낮고 부드러워졌으나 여전히 그는 (당대의) 세계에 대해 강한 거부의 몸짓을 유지하고 있다.
박용하에게 ‘세계’는 부재(不在)의 공간이다. 무(無), 거짓(말), 슬픔, 실패, 죽음 등 박용하의 시집에는 시인이 긍정할 수 있는 가치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 부재를 몰가치로 읽어선 안 된다. 그의 시에서 ‘부재’는 가치의 결핍을 지시한다. 현실 세계에는 그가 지향하는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박용하의 시편들은 가치의 전도, 즉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와 ‘돈’에 대한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인간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현실 법칙,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용하 시의 미덕은 부정적 현실에 ‘나’를 포함시킴으로써 비판을 자기 삶에 대한 성찰적 에너지로 전유한다는 데 있다. 가령 “인간이 싫은 날입니다 / 그렇다고 내가 맘에 드는 것도 아닙니다”(「인간이 싫은 날」), “아직도 안 되는 듣기”(「비판받을 권리」) 같은 구절이 대표적이다.
박용하에게 시(詩)는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 즉 수행적인 발화이다. “언어를 바꾸려면 삶을 걸어야”(「입장」) 한다는 말처럼 그에게 ‘시=언어’는 이미-항상 ‘삶’의 문제이다.
열대야에 가만히 물어본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너는 무엇을 사랑하느냐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이 한여름을 나고 있는
지난해마냥 부채에 의지해 이 여름을 나려는 납량 엽기 가족이여
그 가족 중에
바람 한 점 없는 열기 속에 시를 추구하는 자가 있다
불굴의 시를 원하는 자가 있다
팔꿈치에 괴는 땀을 훔치며
날벌레들의 난무를 조용히 지켜보며
바람 한 점 없는 열기를 지키는 일이 사치라는 것을
고압의 비애라는 것을
고장 난 사람의 짓이라는 것을
사랑의 절정에서 사랑한다고 말할 때처럼 덧없는 짓이라는 것을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허망한 짓이라는 것을
시로 말해지지 않는 짓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이 세상에 따스하거나 더운 정신이란 말이 없듯이
땀에 전 러닝셔츠에게 말하듯이 또 물어본다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시가 필요할까
시로서 염원할 그 무엇이 있을까
등줄기에 줄줄 땀이 채고
몸 닿는 곳마다 짜증스런 밤에 시를 쓰겠다고 덤비는 사람이
그 어느 시절 승부욕에 휩싸여 적개심과 위악을 감행하고
울분깨나 쏟아붓던 악동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
2등은 이미 진 거라며 혈서를 쓰기도 했던 사람은
어쩌다 시詩 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지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자주 지는 사람이 되어 있고
자신조차 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
열대야에 조용히 물어본다
너는 무엇을 소원하느냐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북쪽으로 2백 킬로미터도 갈 수 없는 나라에서
남북으로 찢기고
동서로 갈리고
신분과 계급으로 똘똘 뭉친 나라에서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 「여름밤」 전문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바람 한 점 없는 열대야의 열기 속에 “시를 추구하는 자”가 있다. 어쩌면 그는 시를 쓰기 위해 백지, 아니 컴퓨터의 빈 화면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밤에 시인은 잠들지 못하고 자신에게 끝도 없는 물음을 던진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 너는 무엇을 사랑하느냐”. 이것은 ‘욕망’에 관한 질문이다. 이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혹은 ‘나’의 심연에 존재하는 욕망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던지는 상투적인 가짜 질문이 아니라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시를 추구하려는 이유에 대한 물음이요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이다. 시를 추구하는 자로서의 ‘나’는 알고 있다. ‘나’가 원하는 “불굴의 시”는 결코 “시로 말해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로서 염원할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자주 지는 사람”, “자신조차 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중략…) 박용하의 이 시집은 이 세속적 행성에 불시착한 한 개인이 ‘언어’를 매개로 세계에 맞서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과정을 ‘유한’이라는 시간의 좌표 위에 펼쳐놓은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어쩌면 시인 박용하는 끝끝내 세상과 불화할 것이다. 그것이 시인이라는 아트만(Atman)으로서 박용하가 짊어진 숙명이고 업(業, 카르마)이다. 그러니 고봉준 평론가는 박용하의 시 쓰기를 일러 “수행적 발화”라 한 것이다.
박용하의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끝끝내 숨기고 싶었던 추악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불편함과 불화를 무릅쓰고서라도 그의 시집을 읽어야 한다. 타락은 물들기 쉽지만 벗어나기는 어려운 법이니, 최소한 나의 타락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노력은 필요한 법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