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조선의 여성들, 역사의 눈으로 다시 만나다 - 여성 인물을 통해 만나는 조선 사회 는 조선 시대를 살았던 25인의 여성과 무명의 여성들에 대한 해석이다. 어우동, 장녹수, 혜경궁 홍씨, 허난설헌, 황진이 등 이미 잘 알려진 여성이 있는가 하면 신태영, 신천 강씨, 이숙희, 남평 조씨, 계월향, 한계 등 아마도 첫 대면에 가까운 낯선 여성이 더 많다. 공적(公的) 공간에서 아웃사이더였으나 가족의 중심에 서 있던 여성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방식으로 삶을 꾸려 나갔을까? 저자가 시종 고민을 놓지 않은 지향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저 여성 인물을 소개하는 작업이 아니라 여성 인물을 통해 조선 시대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떻게 다르게 읽을 수 있는지의 고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선 시대의 여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스펙트럼을 여는 것이었다. 왜 조선은 정절을 요구하면서도 첩에 대해 관대했는지, 학문하는 여성들의 계보는 어떻게 이어졌는지, 왕실 여성들의 야망과 희망이 어떻게 굴절되는지, 계월향이 분단국 대한민국에서 왜 잊힌 존재가 되는지, 길쌈보다 공부를 좋아한 이숙희가 왜 열녀의 길을 걷고자 했는지……. 각종 기록을 토대로 하여 기록 외적(記錄外的) 사실을 밝히는 저자의 질문을 따라가 보면 그동안 간과했던 역사상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안과 밖, 그 천의 개성을 읽는다” - 논란의 중심에 선 여성들을 통해 만난 조선 이 책은 여성 인물을 통해 만나는 조선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다. 여성들은 조선 사회에서 심장부를 차지한 존재가 아니라 지엽적인 말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성 인물이라는 프리즘을 이용해 조선 사회를 바라보는 작업은 비주류의 시선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며, 결과적으로 기존에 간과해온 역사의 또 다른 진실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저자는 여성 인물의 활약상보다는 여성들이 처한 시대적 환경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였다. 1480년(성종 11) 10월, 어우동은 수많은 논의 끝에 목매달아 죽이는 형벌인 교형에 처해졌다. 법대로라면 유배형으로 끝날 수 있었는데 사형이란 과도한 법집행은 한 개인의 비도덕성보다는 조선 왕조의 사회적 진로와 지향점 속에서 결정되었다. 이 책에서는 어우동의 스캔들 자체보다는 어우동 사건이 터지고 난 후 위정자들이 어우동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통해 조선이 어떤 지향성을 추구한 국가였는지 말하고 있다. 숙종 대에 생존했던 신태영도 마찬가지다. 남편으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한 이후에 본인은 유배되고 남편도 이혼에 실패하는 일련의 과정을 검토하면서 왜 조선은 이혼을 엄격히 금하면서 첩에 대해서 관대했는지 질문을 던진다.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은 정말로 허난설헌에게 기우는 짝이었는지, 혹시 허균이 누나 난설헌을 애도하면서 생산해낸 자료들을 맹신한 결과는 아닌가를 저자가 재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을 둘러싼 사건이나 소동이 비록 ‘작은 역사’이지만 일상의 물결을 넘나들면서 여성의 시선에서 그 안과 밖을 조명해 보면 조선시대의 또 다른 단면을 만나게 된다. - ‘작은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여성들 신태영, 신천 강씨, 원이 엄마, 계월향, 한계 등의 공통점은 개인의 삶에 대해 알려주는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개인 자료는 전혀 없고 <숙종실록><추관지>등 역사자료에 기록된 논란에만 등장하는 신태영, 만약 묘지에서 편지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 존재조차 몰랐을 신천 강씨와 원이 엄마, <연려실기술>에 행적만 짧게 전하는 계월향, 묘지명만 남아 있는 한계 등을 접한 저자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나가면서 이 새로운 여성들과 그들의 삶의 방식에 역사의 시선을 비춘다. 16세기 여성으로 추정되는 신천 강씨의 편지에는 한 양반가 여성이 남편 때문에 얼마나 속을 끓였는지 구구절절 나오고, 미암 유희춘의 부인 송덕송(1521~1577)이 남편에게 쏟아내는 솔직한 언사와 당당함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조선 시대에 부부가 내외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원이 엄마’ 편지에는 남편을 ‘자내(자네)’라 부르는데 모두 열네 번 나온다. 문장을 끝맺는 어투도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말하듯 ‘~소’, ‘~네’라고 했다. 저자는 여성이 친정의 배경과 경제력으로 가정 안에서 영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병자일기>를 남긴 남평 조씨(1574~1645)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한 양반가 여성의 생활 방식은 물론 삶에 대한 태도나 속내를 관찰할 수가 있다. 이러한 ‘작은 역사’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등 연대기자료에서는 찿아볼 수 없는 사실(史實)이다. 그런 면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나 인물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생활 속의 역사를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찾아낸 또 다른 역사상은 유쾌한 만큼 소중하다. - 조선시대 여성들의 학문 계보도 조선시대 여성들의 학문 계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르고 있었다. 김호연재(1681~1722)는 삶이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남편마저도 침범할 수 없는 높은 자존의 길을 보여주었고, ‘내 글이 장독이나 덮는 종이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임윤지당(1721~1793)의 학문에 대한 신념은 사회적 유전자가 되어 <정일당유고>를 남긴 강정일당으로 이어졌다. <태고신기>의 이사주당(1739~1821)은 수신으로서 태교, 온 집안사람이 참여하는 태교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이제 사회공동체가 태교에 참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빙허각은 외숙모 이사주당의 계보를 이어 <규합총서>를 저술한다. 저자는 현재 학계와 일반에서 <규합총서>여성 생활 경제서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편견이며 여성실학자로 다시 읽기를 권한다. - 금기의 울타리에 가로막힌 존재들의 슬픔 조선 사회는 여성들에게 정절의 수호가 여성의 타고난 임무라고 강조했다. 열녀가 나오면 가문의 영광으로 치하했고 각종 세금을 면제하는 등 경제적 혜택까지 주었다. 병자호란기 화란에 직면하여 순절을 선택한 공주 이씨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여성이 정조를 위해 자결하는 것을 독려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여 여성의 행동을 제약하는 커다란 족쇄가 되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아내와 딸에게는 정숙한 행동과 순결을 요구했으나 기녀들에게는 성적 또는 감정적인 충족을 얻고자 했다. 기녀란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지 않은 일탈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매창 이야기에서는 기녀의 절개를 소중히 여기고 열광하는 남성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에서 여성의 정절을 또 다른 방식으로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를 떠올린다. 관기로서 양반가의 첩으로 들어갔다 정절을 이유로 자결한 한계에게 양반 남성들이 기생첩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묘지를 짓고 묘갈을 세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었다. - 책의 제목에 ‘역사’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 분단국 대한민국에서 잊힌 존재가 된 평양 기생 ‘계월향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 자신의 현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계월향은 남쪽에 논개가 있다면 북쪽에 계월향이 있다고 일컬어진 임진왜란의 2대 의기로 손꼽힌다. 해방 이후에도 유명했던 계월향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 점차 잊혀졌다. 근거지가 평양이었기에 우리 사회는 더는 계월향을 호명하지 않은 채 남쪽 지역의 논개만을 기억하고 추앙해왔다. 북한에서 계월향은 여전히 인기 있는 역사 인물로 살아 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불온한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사실’이라 믿는 역사 안에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 내재된 권력 관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 인물이 시대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당대 또는 후대에 어떻게 재해석되고 다르게 이해되는지에 대해 보여주면서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의 제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