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더는 죽듯이 살지 않을 거야. 살아가듯 죽을게” 김초엽(소설가)·하지은(소설가) 강력 추천 ★2025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 선정★ ★★★★★ 한국SF어워드 단편 대상작 수록 “인사. 나는 너를 인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소멸을 향해 피어나는 아름다운 우주, 백사혜 SF동화판타지 지구를 떠난 탐사대가 지구를 거부하며 시작된 전쟁 비대해진 권력이 신의 자리를 넘보는 사이, 그들이 보지 못한 우주 속에서 서로를 발견한 꽃잎들이 있다. 아득할 정도로 먼 미래, 인간은 우주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해를 초월할 정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처럼 보이기도 하며, 인간은 동물, 무생물, 전자 인격, 심지어 다른 인간과도 결합·분리되며 인위적으로 진화의 길을 걸었다. 이 모든 과학기술의 기틀이 되는 자본은 곧 권력이 되었고, 지구의 초재벌은 곧 ‘영주’라는 계급으로 칭해지며 전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영주의 자본 투자로 의해 선발된 테라포밍 개척단. 이들은 테라포밍에 성공하지만, ‘영주’의 지배에서 독립하기를 선언하며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거부한다. 분노한 ‘영주’들은 우주의 행성들을 마치 주식처럼 매수·매도하며 식민과 침탈을 반복했고, 개척단을 향한 복수심으로 전쟁을 선포한다. 이 전쟁은 지구 내에서 마치 올림픽처럼 중계되며 도박 게임의 형태로 신민들의 돈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이 소설집은 영주들이 지배하는 우주 속, 모래알보다도 하찮아진 작은 꽃잎 같은 개개인에게 주목한다. 이 세계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주인공들 앞에서 ‘인간의 감정’으로 인해 발생한 나비의 날갯짓 같은 흔들림이 진실을 들추기 시작한다.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아니, 어떻게 죽어갈까? 희망찬 죽음과 밋밋한 삶이 교차하는 순간, 독자는 새로운 젊은 작가 백사혜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해설 이야기의 힘을 믿는 작가의 글은 단순하다. 화려한 사변 없이 단어를 쏟고, 길지 않은 지점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그러고는 많은 사람을 홀린다. 직관을 찌를 줄 안다는 소리다. 곧장 본론에 진입해 핵심을 들추는 명석함. 곧은 호흡으로 전진해 저릿하게 마음을 만지는 언어. 백사혜의 소설에서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토록 눈부신 선명함이다. 숙적과 맞서고 애인에게 깊이 반하는 영웅. 깡통을 두른 채 성벽에 돌진하는 바보. 삶의 모양은 다르지만 이들은 각자의 나름으로 긴 서사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뿐인가. 우리는 때로 부랑자, 악인, 약골의 사연까지 시간을 들여 열심히 읽곤 한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너그러움’이라는 본질을 보여준다. 각자의 삶의 빛줄기를 따르는 인물들에게 비교우위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력히 드러내고, 운명에 적응하는 한 인물의 긴 역사가 두루마리처럼 펼쳐질 때 삶의 우위와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이야기 앞에서, 인물들은 각자 자기의 필연을 짊어지고 수수께끼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세월에 스러지는 삶의 연약함에 헌신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은 금세 말라버리는 잎처럼 짤막한 순간을 살아갈 뿐인 운명의 무자비한 폭력성에 주목한다. 단 하나의 삶, 한 번뿐인 숨. 모두에게 다르게 주어진 운명, 불가피한 불평등을 짊고 살아갈 뿐인 생명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이 소설집은 너그러움의 신화를 새로 쓴다. 그것도 필승이 예감되는 전략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혼자 하는 카드놀이인 솔리테어(Solitaire)가 킹과 퀸과 잭을 순서대로 반듯하게 나열하듯, 이 소설집은 적재적소에 연작의 이야기를 정밀하게 배치하며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함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가르강튀아를 닮은 그로테스크함과 그림 형제의 동화를 닮은 잔인한 창조성으로. 거대한 사회실험을 보는 것 같은 정밀함과 지치지 않는 꿋꿋함으로.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갈 줄 아는 용맹함으로 말이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창조적 전략으로 무장한 이 소설집이 마침내 고취하는 신화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어떤 순간에도 이야기의 절대성을 잃지 않는 백사혜의 소설은 누구보다 ‘쓰다’의 실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난 ‘진짜’의 이야기를 가져갈 거예요”(62쪽)라는 문장이나, “남은 건 이야기밖에 없잖아요”(181쪽)라는 표현이 소설 속에서 불쑥 솟아오를 때 멈칫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문장에 맥락을 초과하는 의미가 덧보였기 때문이다. 띄어쓰기와 붙여쓰기의 패턴, 의미와 소용의 놀이 속에서 작가는 무엇보다 쓰고 읽히는 감각을 의식하며 보편성이라는 이야기의 혁혁한 힘을 거머쥐려던 게 아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그 헌신을 자랑해도 될 만큼 장인적이다. 그리고 나는 시간을 들여 이 소설집을 읽는 당신이 클라우드에 떠다니는 가상의 데이터 조각이 아니라 쓰이는 글의 아름다움을 아는 독자일 것이라 (거의) 확신한다. 당신이 책을 펼쳐 “많이, 많이, 많이 읽”고, “읽고, 읽고, 또 읽기”(295쪽)를 멈추지 않기를, 그리고 그 글자가 두드려진 압력이나 낭창한 타건 소리가 아니라 ‘쓰다’의 진실된 의미를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읽은 이야기, 관찰된 이야기, 그리고 다시 쓰는 이야기. 그래서 결국엔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종이에 새겨진 글자의 힘을 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야기를 다시 쓰는 굶주린 지배자가 된다. 당신이 진정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하는 것은 바로 이 책장을 덮은 뒤부터일지도 모른다. _전청림(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