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부터 매일 모은 삼과 삶의 기록, 영수증 2만 5천 장…
당신을 만나기 위하여 태평양을 건넌,
홍진경을 온통 흔들어놓은 정신의 이야기
“너는 그동안 어디에 있었니
누구를 사랑하며 살았니 무얼 먹었니
사람을 만나 이리도 별게 다 궁금해본 것이 얼마 만인가
지금 나를 온통 흔들고 있는 무서운 기집애.”
내가 너 때문에 웃겠구나 너 때문에 그리고
아플 수도 있겠구나.
_홍진경(방송인)
2004년 『정신과 영수증』이라는 묘한 제목의 책이 출간된다. 언뜻 정신의학과에 다녀온 기록처럼 보이는 이 책은 그러나 ‘정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의 독특한 감성과 집요하게 영수증을 모으며 일상을 기록하는 방식의 기발함으로 화제를 모았다. 출간된 지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SNS에서 젊은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발견되는 레전드 에세이의 주인공 정신, 그리고 방송인 홍진경이 ‘지금 나를 온통 흔들고 있는’ 존재라고 언급한 곡진한 우정과 편지의 수신인 정신 작가가 21년 만에 신간으로 돌아왔다.
23세부터 매일매일 영수증을 모으던 정신은 지금도 영수증을 모은다. 그가 모은 영수증은 어느덧 2만 5천 장에 이르렀다. 해사하고 개성 넘치는 감성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20대를 보내던 정신은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막연하게 30대엔 인생의 단 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단단한 일상을 가질 거라 생각했지만, 40대의 인생은 막막하고 막연하다. 정신은 아직 인생의 단 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일도, 가족도, 주위 환경도 장막이 드리운 것처럼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둘러싼 공간과 인간관계의 ‘반경’을 넓혀보라는 조언을 듣고 정신은 신변을 정리하고 태평양을 건너 훌쩍 미국으로 날아간다. 미국 성당 앞에서 울며 기도하던 시간, 통 잠에 들어가지 못하며 내 인생에 흉터를 남긴 악역들과 싸우고 견디고 그들이 남긴 독을 치유하던 시간들, 그리고 내 인생의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배우고 다시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던 순간들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정신 작가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또 지켜내야 할 자기 자신에게 무언가를 사주고 선물하며 물건과 장소에 남은 기억을 돌아보는 기록이자, 생의 어둠 속에서 끝내 빛을 찾아내는 이야기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때 심지어 너를 생각할 때
나는 빛을 마주하는 것 같아.”
이 책의 저자는 세 명이다. 글을 쓴 주인공 정신과, 오래된 정신의 영수증을 서랍에서 꺼내어 세상이라는 배경 위에 올려 사진을 찍은 사이이다 작가, 그리고 이 모든 글과 사진을 책이라는 캔버스 위에 올려 펼쳐놓는 디자이너 공민선. 절친한 친구 사이인 이들은 그간 정신이 모은 영수증과 헤아릴 수 없는 날들 가운데, 정신이 돌연 바다 건너 큰 세상으로 나아갔던 40세의 날들을 기록하기로 한다. 과거에 무수한 매거진과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광고인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광끼>의 자문이자 모델이 되기도 했던 찬란한 20대의 정신은 40대에 방황하고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신은 ‘자신’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토록 염원했던 단 한 명의 ‘당신’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간다.
“너를 찾기 위해 이렇게 멀리 가는 것이 맞는가
시간도 돈도 많이 써야 하는데 생각하던 몇 달 전 이런 말이 귓속으로 들어왔다.
이제 제 차례예요?
엄마 아빠 동생 먼저 아니고 제 차례예요?” (17쪽)
포틀랜드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온라인 데이팅 앱을 켜고 끝없이 자신을 알아줄 남자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 깨닫는다. 자신의 질문이 잘못되어 있었음을. 질문이 잘못되어 있으면 정답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마음을 내려놓고 이토록 헛된 답을 찾고 있었던 자신을 미국에서 사라지게 하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을 무렵, 그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이 책은 가족과 일, 사랑, 자아가 모두 흔들리던 날들에 용감하게 자신과 당신을 찾아나서기로 한 40대 여성의 여정을 담고 있다. 한 장의 영수증에 하루를, 인생을 담는다. 정신 작가의 시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한 독특한 감수성과 문장은 여전히 빛나고, 깊이와 사색은 더해졌다.
현재 정신 작가는 미국에서 그간 모은 2만 5천 장의 영수증을 몇 개의 캐리어에 담아 들고서 한국에 돌아와 있다. 연도별로 봉투에 고이 담아둔 정신의 영수증들이, 정신의 놀랍고도 문제적인 하루들이 지금 당신에게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먹고 사고 선물하고 내어주고, 소비하고 때론 허비하는 모든 것은 곧 우리의 삶이기에. 돈을 쓰고 물건과 장소의 추억으로 남은 모든 순간이 곧 우리의 인생이기에.
“나는 한번 더 힘을 내고 싶었다
가자 원의 반경을 더 크게 그리자
너를 찾으러 태평양을 건너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