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건축과 도시계획이 사회 진보의 도구라는 믿음의 뿌리 건축과 도시계획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 이해되곤 한다. 때문에 정치인들은 장밋빛 미래를 그려 보이기 위해 언제나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면에 내세운다. 생활공간을 단순히 개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축과 도시를 개선함으로써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진보와 평등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이 목소리는 19세기의 무질서와 양차 세계대전이 야기한 파괴를 극복해야 했던 20세기 초 가장 크게 울려 퍼졌고, 합리성과 기능주의로 무장한 건축과 도시계획은 진보의 상징이 되었다. 이 이념과 방법론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건축과 도시가 지금의 모습으로 들어서게 되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주요 아방가르드 선언문에서 교육 프로그램까지 이 책은 이 이념과 방법론의 원전들을 엮고, 간단한 설명을 붙인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현대 디자인의 뿌리인 바우하우스 설립 선언문과 프로그램을(79쪽), 장식 없는 공산품을 사회경제적으로 분석한 20세기 초의 대표적 비평으로 손꼽히는 아돌프 로스의 “장식과 범죄”를(22쪽), 새로운 도시를 짓기 위해 로마를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한 미래주의자들의 선언문을(52쪽), 디자인과 회화의 추상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데 스테일의 선언문을(61쪽) 모두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브루노 타우트, 발터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20세기 건축 거장들이 전개한 건축론을 시대 순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시대 순으로 여러 선언과 프로그램을 편집한 이 책은 서로 다른 입장들이 어떻게 반목하고 공명했는지, 또 어떻게 변모해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기계와 산업 생산이라는 조건에 예술가의 자발적인 창의성에 방점을 둔 앙리 반 데 벨데의 주장과 표준화와 대량 생산이야말로 현대성이라고 강조한 무테지우스의 입장을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41쪽). 20세기 건축 및 도시계획의 핵심과 그 비판 한편, 현대 도시계획의 기능주의와 획일성은 20세기 후반 크게 비판받았다. 이런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복구하고 극심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로 나온 아이디어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원문이 국내에 소개된 적은 드물다. 이 책에는 1933년 근대건축국제회의가 채택한 “라사라 선언”(190쪽)과 “아테네 헌장”(239쪽)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휴머니즘과 공공성의 실현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 책이 20세기 초의 건축과 도시계획을 옹호하는 글로만 엮어진 것은 아니다. 직선을 사용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금지하고 사용자들이 개입해 자신의 집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훈데르트바서의 “곰팡이 선언”(277쪽)을 포함해, 1960년대 도시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몰고 온 상황주의자들의 입장(285/310쪽), 엄격하고 체계적인 모더니즘에 맞서 유기적인 형태를 강조한 프레데릭 키슬러의 “마술적 건축”(263쪽) 등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다양한 텍스트들 이 책은 장점은 단연 국내에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원문들을 모아두었다는 점이다. 20세기 건축을 통해 진보를 성취할 수 있다는 혁명가와 몽상가의 글에서, 경제 발전을 위해 표준화의 도입을 주장한 관료와 비평가의 글, 교육과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한 교육자의 글, 자신의 작업 방법론을 밝힌 예술가의 글까지 이 책에 수록된 68 꼭지의 선언과 프로그램은 20세기 건축과 도시계획을 둘러싼 열망, 지금까지 전해지는 영향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