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국 당나라는 어떻게 멸망했는가
‘번영’이 아닌 ‘멸망’으로 읽는 제국의 조건
7세기 초부터 8세기 말까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다방면에서 앞선 문물로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번영한 당나라는 9세기 동안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사安史의 난’ 이후 당나라를 지탱해온 모든 정치적·경제적 지배체제가 흔들리면서 왕조의 기반이 약해진 반면, 지방의 병권을 장악한 번진(절도사) 세력은 날로 그 힘이 커졌다. 나라에 크고 작은 저항이 계속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황제의 측근으로 활약한 관료와 환관의 갈등도 한층 심화되었다. 세상을 호령했던 ‘대제국’ 당나라는 결국 내부의 반란과 분열로 얼룩진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책은 9세기 당나라의 암흑기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 ‘부강’이 아닌 ‘멸망’에서 현 시대의 위기를 찾아본다. 무너진 종묘사직을 복구하려 했던 유안(劉晏)·왕숙문(王叔文)·이강(李綱)·이길보(李吉甫) 등 걸출한 재상들의 정치 개혁은 환관 세력과 충돌하면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황제의 보좌와 생사를 모두 손에 쥔 환관은 전횡을 일삼고 번진 세력과 결탁해 황권에 도전하는 등 당나라 말기의 혼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결국 세계 제국 당나라는 왕조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멸망하고 만다.
290년 영광의 역사 뒤에 숨은 제국의 암흑기를 읽다
위기와 혼란으로 시작한 당나라 멸망의 서막
755년부터 763년까지 약 9년 동안 당나라를 뒤흔든 ‘안사의 난’은 중앙 정부와 반란 세력의 갈등을 여실히 보여준 내란이었다. 현종, 숙종, 대종 등 3대 황제에 이르는 동안 치열했던 권력 투쟁에서 당나라 정부가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후 나라 사정은 매우 피폐해져 있었다. 대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덕종은 번진을 장악하기 위해 금위군을 정비하고 인사권을 단행하며 환관을 경계하는 한편, 유안과 양염(楊炎) 등 재능 있는 관료들을 발탁해 나라의 재정을 안정시키는 등 새로운 개혁을 추진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유안과 양염을 견제한 다른 관료의 모략으로 모든 개혁은 실패하고 말았다. 당나라 조정은 힘을 잃었고, 이에 불만을 가진 번진 세력은 무력을 동원해 반란을 일으켰다.
저자는 이 책의 서장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해 이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다. 덕종 재위 기간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악재들, 즉 중앙정부 관료의 분열과 번진 세력을 제압하는 과정에서의 전쟁과 혼란, 정치적?경제적 제도의 혼란과 수습, 환관 견제 등은 이후 모든 왕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9세기 시작부터 위기와 혼란에 빠져 방어하는 데 급급했던 덕종을 필두로 여러 황제들은 종묘사직을 세우고 황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만, 그들의 노력은 대부분 실패했다. 덕종 대부터 시작된 제국의 위기와 혼란은 당나라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패업을 이룰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
생존 본능에 이끌려 권력 쟁탈에 나선 인물들
힘을 잃은 황권을 상대로 다양한 세력들이 권력 투쟁에 나서면서 당나라 사회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특히 관료와 환관의 갈등은 내부 분열을 더욱 부추겼고, 붕당 정치를 낳는 결과를 만들었다. 황제의 권위를 지키는 데 힘쓴 관료들과 황제의 권위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려했던 환관들의 견제는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당나라 말기의 혼란을 야기했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러한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좀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각 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갈등을 불러일으킨 사건의 전개 과정을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서술했다.
저마다 다른 신분 출신으로, 다른 행보를 걸었던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생존’이라는 본능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천하태평을 꿈꾸며 순종을 황제로 만든 왕숙문(王叔文), 이전 황제가 남긴 혼란을 잠재우려 했던 헌종, 황제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신책군과 추밀사와 결탁한 환관 왕수징(王守澄)과 양수겸(梁守謙), ‘감로의 변’으로 문종을 처리하고 권위를 차지하려던 구사량(仇士良), 조정의 세력을 확보하고자 붕당을 맺고 파벌 싸움을 조장한 이종민(李宗閔)과 우승유(牛僧孺), 그리고 이에 맞선 이덕유(李德裕), 이덕유를 제거하고 황권을 다시 수복하려 했으나 장생술에 빠진 선종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사례는 구심력을 잃고 각자도생에 급급했던 당나라의 말로를 여실히 보여준다.
붕괴된 제국, 역사의 내리막길에 들어서다
분열과 부패로 끝을 맞이한 당나라 최후의 순간
당나라 말기에 황제로 즉위한 의종, 희종, 소종 등은 천자의 위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그 끝을 맞이해야 했다. 관동 지역의 가뭄 때문에 황하 하류의 농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자 황소(黃巢)가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고 수도인 장안을 점령했다. ‘황소의 난’이라 불리는 민중 봉기는 위기에 처한 당나라를 만천하에 알렸다. 이를 시작으로 10여 개의 번진 세력이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결국 ‘왕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자는 정권의 멸망 요소를 ‘내부적 갈등, 외부적 위험, 부패한 정치’ 등 세 가지 요소로 보면서, 당나라 또한 이 조건을 갖추었기에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미 천 년이나 지난 당나라의 역사는 21세기인 지금도 계속 재현되고 있다. 당리당략을 위해 서로 견제하기 바쁜 정치계와 그들이 일으킨 분열과 갈등은 진영, 세대, 남녀 가릴 것 없이 현대 사회를 불안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민생보다는 기득권이, 사회 안정보다는 개인의 안정을 추구하는 내부의 분열은 결국 한 국가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번영의 시기를 거쳐 서서히 멸망의 길에 이르는 당나라의 쇠망사는, 현재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대응하고 헤쳐 나아갈 것인지 고민해보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