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20세기 대량 학살의 현장 아우슈비츠… 최초의 원폭 도시 히로시마… 원전 사고로 죽음의 땅이 된 체르노빌…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9?11테러…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는 2011년의 후쿠시마까지… 『설국열차』를 잇는 그래픽노블의 현대 문명 보고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2주년에 부쳐 20세기 폭력의 시대를 돌이켜본다 우리를 경악케 하는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장면들이 그래픽노블로 펼쳐진다. 세계 예술만화를 이끄는 프랑스가 주목한 작가 파스칼 크로시! 그가 그려낸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답해야 한다. “우리에게 과연 ‘휴머니티’가 존재하는가!”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하여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기법으로 구성한 작품 『아우슈비츠』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파스칼 크로시가 우리 시대의 야만을 그래픽노블을 통해 진단한다. 최악의 전쟁 범죄 현장으로 꼽히는 오라두르 쉬르 글란 학살부터 인류사의 오점 아우슈비츠, 평화로웠던 도시를 일순간 지옥으로 바꿔놓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핵의 공포를 증명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그리고 21세기의 비극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세슘137』은 대량 학살과 대참사를 거듭해온 폭력과 광기의 현대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각 사건에 관련된 자료들을 열람하는 여기자의 시선과 반응을 통해 상식을 뛰어넘는 20세기 후반의 끔찍한 사건들을 되짚어가며 크로시는 현대 문명과 비판적 지성이라는 신화를 향해 예리하게 날이 선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미묘한 회색톤의 정교하고 섬세한 펜선을 이용하여 고통의 시간들을 스케치해나가는 『세슘137』의 작업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폭력성과 광기에 대해서 숙고하게 한다. 아주 느슨하게 연결된 서사의 고리는 비록 많은 것을 설명하려 들지 않지만 우리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우리에게 과연 ‘휴머니티’가 존재하는가!” 색깔도, 냄새도, 소리도 없는 원전 방사능의 공포…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대 과학이 초래한 학살의 현장 속에서 우리 자신과 마주한다. 『세슘137』에서 크로시는 인류의 진보라는 미명 아래 발전을 추구해온 현대 과학 기술이 진정 인류를 위해 공헌한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광산 채굴용으로 고안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가 전장에서의 승리를 위해 봉사하며 기하급수적인 사상자를 낳는 살인 기구로 전락했듯이, 현대 과학이 탄생시킨 수많은 장치는 언제나 대량 학살에 빠짐없이 동원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나치 독일의 무장 친위대가 프랑스 마을 오라두르 쉬르 글란을 상대로 벌인 대규모 학살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독가스 한 통이 수백 명을 질식사시켰고, 고작 수류탄 몇 개로 주민의 3분의 1가량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철두철미하게, 체계적으로, 심지어 과학적으로 자행된 오라두르 쉬르 글란의 학살 과정은 현대 과학 기술의 방향성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 1945년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 또한 17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낳았다. 최단기간에 수많은 이의 목숨을 빼앗은 원자폭탄은 누가 발명해낸 것일까? 바로 20세기 현대 문명이 숭상한 과학자들이다. 게다가 미국은 과학적 발견과 실험을 목적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우라늄과 플루토늄으로 만든 각기 다른 폭탄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15만 명의 사람들의 목숨이 과학적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크로시는 최초의 원폭 도시가 된 히로시마를 클로즈업하면서 과학자들의 열정적인 탐구가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위험한 단초가 될 수도 있음을 설파한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제4호 원자로에서 일어난 사고는 20세기 최악의 참사로 간주되고 있다. 크로시는 사건의 경위나 원인을 설명하기보다는 지역 주민과 원전 사고 조사관을 비롯해 체르노빌 사건에 관련된 여러 인물의 ‘증언’과 ‘기록’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하여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서 전달한다. 2011년 3월 11일에 있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경험하고 사실상의 피폭자들인 한국의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색깔도, 냄새도, 맛도 없는” 방사능의 치명적인 공포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기에 다시 찾아온 우리 안의 야만,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나치 정권을 위해 일했던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도대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냐고 도리어 반문했다. 그 시대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그녀는 마지막까지 호소했다. 가스, 총살, 고문, 질병, 기아, 인체 실험 등으로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된 아우슈비츠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학살의 현장이다. 그러나 전범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무죄를 주장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레니 리펜슈탈과 같은 당대의 지식인들조차도,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으며 단지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뿐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이 학살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거의 모든 대중이 히틀러를 연호하며 나치즘에 열광한 그 시대 자체를 비난해야 하는 것일까? 마이클 잭슨의 공연과 나치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병치시켜나가는 크로시의 작업은 지금 우리에게도 나치즘에 경도된 광신적 열정이 잠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보게 한다. 학살의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오라두르 쉬르 글란, 아우슈비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 우리가 과연 이 비극들에서 교훈을 얻기는 했을까? 오락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식을 초월한 방식으로 2001년에 일어난 9?11테러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20세기 후반에 벌어졌던 무수한 참상을 목도할 때마다 우리는 쉽게 분노하지만, 또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크로시는 금세기에 일어났던 끔찍한 학살과 대참사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9?11테러가 바로 그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목적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이 너무도 쉽게 파괴되는 세계, 여전히 우리는 폭력과 광기가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속한 세계가 어떤 곳인지 깨달아야 한다고, 그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작가는 우리에게 넌지시 숙제를 던진다. 역사적 증언과 재현의 리얼리티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다! 『세슘137』은 현대사의 어두운 풍경을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재현하고 있다. 다소 생경한 이 장르는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한 작품군을 지칭한다. 보통 미국과 유럽 문학 특유의 문장이 많고 강렬한 예술적 성향을 표현한 작가주의 만화를 통칭하는데, 슈퍼 히어로물이 범람하던 미국 만화계에 등장한 문학성과 예술성이 강한 만화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픽노블의 전형적인 양식이 컬러와 흑백인 데 반해, 『세슘137』에서 크로시는 뛰어난 연필화 기법으로 다양하고 미묘한 회색을 표현하고 있다. ‘휴머니티’라는 개념 자체에 질문을 던지면서 인간의 ‘영혼’과 현대사의 비극을 심도 깊게 탐색하는 『세슘137』의 세계는 흑과 백으로 그려낸 이분법적인 구도나 다양한 컬러로 채색된 생생한 풍경으로 표현할 수 없음을, 즉 잘라 말하기 힘든 복잡 미묘한 지점임을 색채를 통해서 은유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회색톤의 단순한 펜선만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까다로운 세계관을 구현해냈다는 측면에서 이 작품은 만화가에게 근원으로의 회귀이기도 하다. 『세슘137』을 통해서 크로시가 완숙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색채만이 아니라 구성 면에서도 『세슘137』에서 크로시가 보여주는 시도는 상당히 실험적이다. 전작 『아우슈비츠』가 5년여에 걸친 철저한 자료 수집과 정리에 힘입어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해서 리얼리티를 구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