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역사의 갈피 속에 숨겨진 감정을 찾아서 이야기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 나의 펜과 내가 지금껏 풀고 있는 숙제이다.” - 고우영(1938-2005) <을지문덕>은 한국만화계에서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이자 국민만화가인 고우영의 10주기를 추모하는 복간작이다. 익살스러운 해학과 삶에 대한 통찰로 가득한 <수호지>와 최배달의 불꽃 같은 인생을 그린 <대야망>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고우영은 역사만화 전집 시리즈에 참여하게 된다. 청년문화의 기수로 ‘고우영 시대’를 열어가던 1970년대 중반의 일이다. 고우영은 글동산의 ‘글과 그림으로 엮는 한국의 역사’ 전집 시리즈에서 편을 맡아 탁월한 스토리라인과 파워풀한 연출로 걸출한 시대극화를 완성했다. 612년(영양왕 23) 중국 수(隋)나라의 군대를 고구려가 살수에서 크게 격파한 싸움인 살수대첩의 과정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펼쳤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 이름조차 명시되지 않은 채 수많은 전집 중의 한 권으로 출간되었다. 이야기 소재가 무엇이 됐든 ‘고우영표 만화’로 재창조하는 고우영은 당시 출판사의 편집방향과는 상당한 거리를 둔 ‘을지문덕’을 그렸다. 탁월한 발상으로 영웅 위인전을 기대한 독자들의 허를 찔렀다. ‘을지문덕’이 거의 나오지 않는 <을지문덕>. 고우영은 살수대첩이 성공하기까지 장렬하고 비장한 삶을 산, 민중들의 뜨거움에 포착했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상상력은 살아 꿈틀거리는 이 땅의 민초들을 주인공으로 탄생시켰고, 영원히 잊지 못할 가슴 뛰는 명장면들을 선사하며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청석바위를 들고 선 우직한 고구려 사내 달무, 그런 달무를 연모하지만 오랑캐 볼모가 되는 봉녀, 꼬마 돌마로, 스승 노스님, 고구려를 위해 이름 없이 스러져가는 민중들의 이야기는 거칠고도 부드러운, 과감하면서도 정교한 고우영만의 매력을 뿜어낸다. ‘고우영’이라는 거장이 이름으로, ‘을지문덕’이라는 원제로 10주기인 2015년 4월25일에 오롯이 되살려 낸 <을지문덕>은 복간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