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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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속에는 내가 숨어 있어요. 다른 어느 작품에서보다 더욱더 말입니다.” 절대적 사랑을 찾아 헤매는 언어의 모험 우리에게 『연인』으로 잘 알려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모데라토 칸타빌레』(정희경 옮김)가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독자들 앞에 다시 선보이게 되었다. 그의 대표작 『연인』이 삶과 글쓰기가 융합된 일종의 자서전이라면, 『모데라토 칸타빌레』 역시 교묘하게 감추어진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겪은,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강렬한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작품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절대적 사랑을 찾아 헤매는 한 여인의 내적 갈등의 역정을 간접적 문체 기법, 보류와 암시의 언어를 통해 애잔하고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소설은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뜻을 아이에게 다그치는 피아노 선생과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고집스레 대답하지 않는 아이의 실랑이로 시작된다. 그들이 실랑이하는 동안, 갑자기 거리에서 큰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카페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죽인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소도시 공장주의 아내로 아들 하나를 두고 있으며 10년 전 결혼한 이래 남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라고는 없는 완벽한 처신을 해온 주인공 ‘안 데바레드’는 그날 그곳에서 피범벅이 된 채로 여자를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애무하는 남자를 목도하게 되고, 그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내면 깊숙이 억눌려 있던 본능이 눈뜨기 시작한다. “죽은 다음에도 기쁜 듯 미소 짓고” 있었던 여자와 그녀의 뜻에 따라 여자를 살해하고 자신도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여자를 애무하는 광경은 삶과 죽음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입맞춤으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그 욕망이 일상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고 열정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사랑의 광기로 관통된 죽음은 주인공 ‘안’에게 살아 있는 매혹적인 것이 된다. 이렇듯 소설은 완전한 사랑을 재현하려는 ‘안’의 내적 모험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상류층의 주거지와는 정반대편 공장 지대에 위치한 카페를 드나들며 노동자 ‘쇼뱅’을 만나 싸구려 포도주를 마시면서 살인 사건의 두 주인공을 재현함으로써 그들이 도달한 경지를 맛보려는 시도로 구체화된다. ‘안’과 ‘쇼뱅’은 상상과 허구 속에서 자신들이 두 죽음의 연인에게서 느꼈다고 믿는 것, 상상이 현실에 중첩시킨 것을 재창조해나간다. 여기서 ‘쇼뱅’은 마치 심리 치료사처럼 ‘안’의 내적 모험을 돕는 역할로서 기능한다. 방금 표면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한 ‘안’의 일탈의 욕망을 포착하고 그것을 끌어내는 집요한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다. ‘안’은 이러한 내적 모험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기를 원할 정도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고자 한다. 마침내 그들은 “이루어졌다”라고 생각하지만, 그 모험은 환각 속에서 서로 스친 두 손과 입술, 그리고 말로써 이루어진 것일 뿐 더 이상의 구체적 행동에는 이르지 못한다. 이처럼 우연히 목도한 절대적 사랑의 실체를 찾아 가망 없는 언어의 유희를 계속하는 ‘안 데바레드’는 전형적인 뒤라스의 여인이다. 특히 이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 기법 대신, 침묵으로 일관된 긴장 속에 놓여 있는 주인공의 위기가 냉정하면서도 극적으로 그려지는 글쓰기 기법을 선택하고 있다. 묘사나 분석, 설명은 사라지고, 암시가 담긴 간결함이 작품을 지배하며, 성격의 묘사나 사건의 기술도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수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간접적인 문체적 수단을 이용해 전달된다. 서술자의 짧은 개입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의 대화가 간접적으로 드러내주는 것, 불완전하고 불규칙하나마 그들의 행동에서 언뜻언뜻 엿보이는 것을 통해 독자들은 해독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모두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주인공 ‘안’의 아들이 피아노 레슨을 받는 장면(1, 5장), ‘안’이 ‘쇼뱅’과 만나는 카페 정경과 대화(2~4, 6, 8장), 그리고 ‘안’의 저택에서 열리는 만찬 장면(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에서는 소나티네가 배경 음악을 이루고 있으며 제목의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그 연주 방법의 지시이다. 침묵과 공허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 이야기의 애잔한 어조, 조심스러운 주문呪文의 목소리가 바로 ‘모데라토 칸타빌레,’ 즉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이다. 이렇듯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뒤라스의 글쓰기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새로운 언어 기법의 지평을 열어 보인 소설이라고 평가된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지적처럼,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되고 충만하며 그 자체로 닫혀 있는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남겨놓은 여백의 의미와 침묵의 소리를 따라가며 나름대로의 작품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축해나가도록 초대받은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미지와 은유, 단어의 형태, 내포 의미, 문장 형식, 시제 그리고 구두점에 이르기까지 작은 구성 요소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절대적 사랑을 헤매는 이 언어의 모험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밝히는 것인데,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 나는 비밀스레 겪어낸 개인적 체험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외설적이라는 평을 받을까 두려워 이 경험 주변에 벽을 쌓고 거울로 둘러놓았지요. 경험이 격렬했던 만큼 더욱 엄격한 형식을 택한 것이랍니다. 이 작품 속에는 내가 숨어 있어요. 다른 어느 작품에서보다 더욱더 말입니다.” ■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소개 ▲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문지 스펙트럼은 빛의 파장처럼 세계 문학과 사상의 고전들을 펼쳐드립니다. 문학의 섬세함으로 혹은 사유의 힘으로. “작지만 확실한 고전”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1차분 다섯 권 출간! 1996년 황순원의 『별』을 시작으로 한국 문고판 시장의 르네상스를 주도해온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2011년까지 모두 101권의 책을 펴내며 독자들에게 시대와 영역을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펼쳐 보였다. 그동안 보여준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문학과지성사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문지 스펙트럼>은 오래도록 독자들 곁을 지키며 사랑받아온 책, 현재에도 유의미하며 앞으로도 계속 읽힐 책들을 엄선하여 1차분 다섯 권을 먼저 독자들 앞에 선보인다. 이제 우리는 시간의 타래처럼 오랜 세월의 무게로 더 깊고 두터워진 고전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기실, 고전은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아우르는 우리 인간의 이야기이므로. 이렇듯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우리 삶 속에, 삶 가까이에 자리한 고전의 가치를 현재적 의미로 새롭게 되새기는 목록들로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더 작고 더 강하고 더 가까이 독자들 곁에 다가갈 준비를 마쳤다. 다양한 주제와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다양한 언어권의 작품들이 보다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끔 하는 접점이 될 것이다. 가장 먼저 독자들을 찾아갈 이 다섯 권의 작품들은 세심한 개정 작업을 거쳐 모던하고 세련된 장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앞으로도 계속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빛의 파장처럼 다채로운 세계 문학과 사상의 고전들을 독자들에게 펼쳐줄 것이다. 문학의 섬세함으로 혹은 사유의 힘으로. 다양한 빛깔과 무늬로 우리 삶과 사회의 면면을 비출 ‘문지 스펙트럼’의 앞날을 기대해본다. 1.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 (정희경 옮김) 2. 볼프강 보르헤르트, 『이별 없는 세대』 (김주연 옮김) 3. 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 (김진경 옮김) 4. 오에 겐자부로,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유숙자 옮김) 5.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이정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