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일은 쉽지 않다.
비거니즘은 삶을 의심하라고 권한다.
고통을 함께 직면해보면 어떻겠냐고 질문한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는 불편함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서로의 세상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은하선 (비건술집 ‘드렁큰비건’ 공동대표)
모두를 위한, 비건에 의한, 비건에 대한 책!
50만 비건은 이제 메가 트렌드다
이제는 내 가족, 친구, 연인, 동료의 선택일 수도 있는 이야기, ‘비거니즘(Veganism)’에 대한 책이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지난해 150만 명으로 이 중 비건 채식 인구는 약 50만 명이다. 일반적인 채식이 고기나 생선을 먹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면, 비건은 우유, 달걀 등 ‘동물성 식품을 완전히 배제한 엄격한 채식’을 말한다.”(“라면·마요네즈·화장품… 50만 비건족 시장 열린다” <아시아경제>, 2020.1.28.)는 비거니즘 관련 기사도 쏟아진다. 어느 마트는 비건 상품 기획展을 열어 식품뿐 아니라 생필품까지 한데 모아 소개했다.(위의 기사) 오뚜기 같은 대기업에서 ‘비건 인증’을 받은 채식 라면을 내놓는가 하면, 와인이나 마요네즈도 비건 제품이 나온다. 패션업계도 비건 바람이 휩쓸었다. 동물 털을 쓰지 않은 비건 패딩이나 비건 레더를 쓴 의류 등을 내놓는 브랜드나 디자이너도 많아졌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비건 만찬이 제공됐다. 바야흐로 비건 ‘메가 트렌드’의 시대다.
비거니즘을 다룬 책으로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 마르탱 파주의《왜 고기를 안 먹기로 한 거야?》 등이 출간된 바 있지만, 비건이 비거니즘에 대해 쓰고 그린 만화는 《나의 비거니즘 만화》가 최초다. 귀엽고 따스하며 정감 있는 그림체에 걸맞게 비거니즘을 논-비건(non-vegan)들에게 소개하는 비교적 ‘온건한’ 내용부터 공장식 축산이나 생태계를 파괴하는 어업(漁業), 모피 산업에 대한 비판, 육식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등 ‘본격적’인 이야기까지 50개 에피소드에 고루 담았다. 비건의 일상이나 먹을거리에 대한 내용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네이버 ‘베스트도전 만화’에 연재하지 않고 단행본에만 실린 에필로그 3편도 있다.
프롤로그 ‘Go Vegan!’ 편에서 주인공인 아멜리는 “비거니즘이 사람들의 일상과 좀 더 가까워지길 바라며 어느 비건의 비거니즘 만화를 시작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이 책의 저자이자 비건인 보선이 만화를 그리며 취하고 있는 스탠스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비건이 되기를 열망하기보다는 ‘비거니즘이 사람들의 일상과 좀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에 따르면 저자 보선은 건강을 위해서, 또는 동물을 사랑해서, 혹은 반려동물에 유대감을 느껴서 비건이 되었다기보다는 ‘비인간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진실’에 이끌려 비건이 되었다.
그렇다면 보선이 말하는 비거니즘은 어떤 모습일까. 비거니즘이란 “종 차별을 넘어 모든 동물의 삶을 존중하고, 모든 동물의 착취에 반대하는 삶의 방식이자 철학”으로, 이것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비건’이라 한다.
비건은, 1. 동물이 사용되거나 동물이 생산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육류, 어류, 가금류, 달걀, 꿀, 우유 등의 유제품…), 2. 동물 털과 가죽이 사용된 의류, 동물실험이 이루어진 화장품 등의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3. 동물을 대상화하거나 착취하는 서비스에 반대한다(동물원, 서커스, 동물카페…), 그리고 4. 동물과의 공존에 악영향을 미치는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행동한다.
이 책은 비거니즘이 단순히 동물권이나 완전한 채식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비거니즘의 핵심은 ‘나를 포함한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고 고통을 줄이는 데’에 있다.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는 법, 작가는 불완전한 실천도 의미가 있음을 힘주어 말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비건이 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다. 때때로 비건은 완벽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비거니즘이란 “삶을 가두는 틀이 아니라 나의 세계를 보다 평화적으로 넓히는 ‘삶의 방향’이다. 그래서 작가는 ‘불완전한’ 비건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서로의 비거니즘을 응원할 수 있도록!
비거니즘은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기 위한 가치관이 아닙니다. 저는 채식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 도덕적인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진실 앞에서는 방관자로 있기 마련이니까요. 기아 문제, 소수자 문제, 환경 문제 등 여러 사회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 삶을 오롯이 바치는 사람은 거의 없겠죠.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 노력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채식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사회 문제 중 일부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입니다. 육식 뒤에 어떤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해서 그 진실이 여러분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진실을 마주하는 데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머리말’ 중에서)
“비인간 동물을 위하려는 한없이 투명한 동기,
멀리 반짝이는 별 같은 이야기들…”(김한민, 《아무튼 비건》 저자 ‧ 시셰퍼드 활동가)
이 책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나, 아멜리는 저자 보선을 99% 투영한 캐릭터다. 아멜리는 ‘비건’이 뭔지도 모르던 몇 년 전의 어느 날 TV를 켰다가 어느 미식 프로그램을 보았다.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르 풍미가 화아아악” “겉은 바삭한데 속은 핏물이 촉촉하니. 캬. 예술인 거죠.”
TV를 보던 아멜리의 입에서는 “예술은 무슨.” 하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하지만 아멜리는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패널들은 핏자국 하나 없는 번쩍거리는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소’라는 생명의 살점과 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소는 조각 조각난 살점이 되어서야 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소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기괴한 일인가’ 아멜리는 생각했다. 이때가 ‘동물과 처음 연결된 순간이었다’고 아멜리는 회고한다.(‘episode 22. 처음 연결되던 순간’의 내용) 그리고 몇 년 후, 아멜리는 비건이 되었다.
이 에피소드의 결은 섬세하다. 육식이 자연스러운 ‘논-비건’의 입장에서는 아멜리가 이 프로그램을 기괴하다고 느낀 데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웹툰이 연재되던 ‘네이버 베스트 도전 만화’ 란에 달린 어느 댓글을 보면 아멜리가 느낀 기괴함에 공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작가가 육식하는 사람들의 미소를 ‘기름지다’고 표현한 데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비건에 대해 그렇게 공격적인 입장을 취한다. ‘당신들이 보기에 육식하는 사람은 다 무지몽매하고 잔인한 야만인으로 보이겠네요?’ 하면서. 하지만 우리는 어느 사이엔가 우리 주변을 둘러싼 폭력성과 잔인함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 자신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어떤 에피소드는 우리가 무신경하게 지나치는 폭력과 고통을 ‘타성의 안개’에 빗댄다.(episode 25. 타성의 안개) 아멜리에 따르면 타성의 안개란 이런 것이다. “세상엔 타성의 안개가 깔려있어 오랜 세월 사람들을 잠식한 폭력과 고통이 보이지 않지요. 그래서 자신이 가해자 혹은 피해자란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을 어린 시절부터 육식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동물의 고통이란 타성의 안개 같은 것이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의 잔인함과 폭력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인지하면, 우리 자신도 그 폭력에 일조하고 있음을, 우리가 그 폭력의 가해자이자 수혜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멜리는 미식 프로그램을 보던 과거의 어느 날, 그 폭력을 갑자기 ‘인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멜리는 이 에피소드를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폭력을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