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을 엿보듯,
기억 바깥으로부터 비롯되어
마침내 범람하는 비인칭의 이야기
2010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심지아 시인이 등단 후 8년 만에 내는 첫 번째 시집 『로라와 로라』가 ‘민음의 시’ 249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로라와 로라』는 시적 질료를 기억의 바깥에서 찾아 최대한의 가능성을 획득한다. 시적화자는 “비인칭”이 되어 꿈속의 꿈으로 이야기를 뻗어 간다. 그리고 그로 인해 독자인 우리는 “충분한 어둠”과 충분한 밝기”를 응시한다. 심지아의 시는 그렇게 충분한 조도의 아름다움을 획득한 범람의 시가 된다.
■ 꿈속 가능성의 세계
테이블 아래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발명한다
생물이 잠을 발명하듯이
-「등을 맞대고 소녀소녀」에서
시작은 테이블 아래에서였다. 시집의 시작을 알리는 시 「등을 맞대고 소녀소녀」에서 시적 화자는 식탁 아래에서 손가락을 입술 가까이에 대고 쉿, 소리를 낸다. 그리고 “우리가 빠트린 것을 말”하려 한다. 빠뜨린 것을 호명하기 위해 시 속의 ‘나’는 이상한 활주로를 유영하는 우주인처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토성의 고리에서 순간을 사랑하는 마법사까지 그 변신은 무한해 보인다.
『로라와 로라』에서 한 사람의 로라인 시적 화자와 또 한 사람의 로라인 독자는 심지아의 흐트러진 듯 단호한 탐험을 통해 가능성을 획득한다. 마치 꿈처럼, 나아가 몽중임을 인지한 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 안에서 겹쳐 꾸는 꿈처럼. 우리의 가능성은 『로라와 로라』에서 기억의 바깥까지 나아간다. 이렇게 심지아의 시집은 “가르쳐 주지도 않은 말을” 하려는 막내처럼, 가능성의 끝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그것을 두고 한국시가 발견한 ‘꿈같은 장면’이라 하지 않을 도리는 없을 것이다.
■ 불면 속 비인칭 세계
핏속에는 도덕이 없고
나는 조금 슬픈 것 같아
나는 조금 의심하는 것 같아
-「범람」에서
끝없는 가능성을 지닌 꿈같은 유영. 끝이 없을 듯했던 여행의 중간 시적화자는 불현듯 “지구에서 태어나 얻게 된 건 현기증”이라고 토로한다. 시적 화자는 꿈에서 깨어나 꿈을 복기하며 모종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듯하다. “핀셋으로 나를 잡는 나”는 어제의 꿈에서 얻은 수치와 의심, 환멸과 고통을 피할 생각이 없다. 되레 그것을 생경한 고통으로, 하나의 풍경으로 삼아 시를 짓고 이야기를 짜내어 흩뿌린다.
퍼져 나가는 시의 이야기 속에서 가능성을 탐색하던 ‘나’ 또한 흩어져 “비인칭”이 되고 마는데, 그것을 드라큘라나 좀비라 해도 심지아의 독자는 믿고 따를 뿐이다. 그가 보여 준 가능성의 영역은 그만큼의 불가능성을 데칼코마니처럼 그려 내고, 고른 음량의 잡음처럼 기억을 상기시키고, 잠을 내쫓는다. 가능성의 아름다움은 비인칭의 슬픔이 되어 범람한다. 주인이 없는 까끌까끌한 슬픔이 양을 센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불면 속에서 양은 유실되고, 심지아의 시를 읽는 우리는 완연히 다른 조도에 놓이게 된다. “충분한 어둠”과 “충분한 밝기” 사이에서 우리는 시집을 덮을 것이고, 이제 당신의 빈칸은 조금, 넓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