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열광하고 아꼈던 그때 그 여자아이와 다시 만나다
성장소설의 새로운 클래식 『새의 선물』 100쇄 기념 개정판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 누적 발행 100쇄 돌파
★ KBS・한국문학평론가협회 ‘우리 시대의 소설’
언제나 새로운 질문과 도약으로 오늘날의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작가 은희경의 첫 장편소설이자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새의 선물』을 100쇄 출간을 기념해 장정을 새롭게 하고 문장과 표현을 다듬은 개정판으로 선보인다. 1995년에 출간된 뒤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으며 성장소설의 새로운 이정표로 자리매김한 『새의 선물』의 100쇄 기록은 세대를 거듭한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뜻깊은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큼 좋아하는 책”(김초엽), “내 문학의 본류이자, 십대 시절 고독감을 극복하게 해준 책”(박상영), 『새의 선물』을 읽은 다른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을 읽고 은희경 작가의 팬이 되었다”(최은영) 등 많은 작가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끼치며 한국문학으로 향하는 가장 흥미진진하고 친밀한 문이 되어준 『새의 선물』은 사랑스러운 인물들과 60년대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한국어의 묘미를 일깨우는 풍부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그 자체 장편소설의 교본으로 손색없을 뿐 아니라 한국소설을 그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은 결정적인 한 걸음이었다.
은희경 작가는 개정판 작업을 위해 초판을 출간한 후 처음으로 이 책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고 말한다. 1995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한동안 청탁이 없자 멀리 지방에 있는 절에 들어가 몇 달간 작업한 끝에 완성한 자신의 첫 책을 말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작가가 작품에 쏟아부은 에너지와 열기는 27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에게 여전히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때의 뜨거움을 간직한 채 지금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단어를 매만지고 당시의 풍경을 정교하게 가다듬은 이번 개정판은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충만하고 열띤 시간 속에 우리를 머무르게 할 것이다.
“삶이 내게 할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열두 살, 이미 삶을 완성한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낸
삶과 사랑의 진실에 대한 빛나는 통찰
1969년 겨울, 마을에서 ‘서흥동 감나무집’으로 통하는 집의 대문을 열면 우물가를 중심으로 두 채의 살림집과 한 채의 가겟집이 보인다. 한쪽 살림집은 이 집의 주인집으로, 해가 밝았는데도 늦장을 부리며 이불에서 나오지 않는 ‘영옥 이모’와 그런 이모에게 퉁을 놓으며 밭에 일하러 갈 채비를 마친 ‘할머니’, 그리고 실랑이하는 두 사람을 예사스럽게 쳐다보는 열두 살의 여자아이 ‘진희’가 있다. 여섯 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후 아버지마저 어디론가 사라지자 할머니 집에 맡겨진 진희는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15쪽)을 깨달은 사람의 예리한 직관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자신 앞에 일어나는 일과 주위의 사람을 꿰뚫어본다.
그런 진희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한 명 한 명이 고유명사이자 어떤 유형을 대표하는 보통명사라 할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의 모습은 다채로우면서 개성적이다. 우선 또다른 살림집에 살고 있는 ‘장군이 엄마’와 ‘장군이’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 험담하기 좋아하고 무슨 일이든 참견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장군이 엄마는 시시때때로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고, “유복자로 태어날 때부터 이미 효자의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320쪽) 장군이는 어리무던하고 순해서 매번 진희의 관찰 대상이자 실험 대상으로 선택된다. 네 칸으로 이루어진 가겟집에 들어앉은 ‘광진테라’와 ‘뉴스타일양장점’의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입만 열면 ‘이 인간 박광진, 왕년에 말야’로 시작하는 자신의 연대기를 늘어놓는 허랑방탕하고 허세 가득한 이 시대의 ‘풍운아’인 ‘광진테라 아저씨’와 그런 아저씨 옆에서 바지런하게 생활을 꾸려가는 속깊은 ‘광진테라 아줌마’, 그리고 양장점에서 시다로 일하며 “신분 상승의 야심을 위해서”(110쪽) 자신의 실력을 연마하는 ‘미스 리 언니’는 소설 곳곳에서 작품에 유머러스한 활력을 불어넣거나 때로는 긴장을 고조시키며 독자를 강하게 몰입시킨다.
그리고 소설의 다른 한 축에는 그 시대에 대한 세밀하고 풍부한 묘사가 자리해 있다. 펜팔을 통해 첫 연애를 시작한 영옥 이모의 연애 과정은 그 시절 청춘들의 사랑과 헤어짐의 풍경을 우리 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이고, 침착하고 이해심이 많은 광진테라 아줌마가 어느 날 “꾹꾹 눌러 저장하고 있”(76쪽)던 가슴속 고통을 ‘엄청난 폭발력’으로 터뜨리며 하는 돌출적 행동은 당시 여성들을 누르고 있던 압력의 세기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나의 통찰을 완성시켰”(155쪽)다고 여길 만큼 다양한 진희의 독서 목록과, 가파르게 변화하며 때로는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당시의 정치 상황 또한 소설에 풍성함을 더한다.
하지만 『새의 선물』의 결정적인 장면은 무엇보다 그 유명한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12쪽) 태도를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순간일 것이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이십 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그러므로 내 삶은 삶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는 긴장으로써만 지탱돼왔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거리 밖에서 지켜보기를 원한다.(같은 쪽)
삶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열두 살의 아이가 터득한 태도. 자기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함으로써 삶을 냉철하게 이끌어가려는 이 태도는, 냉철함이 냉정함이나 차가움과 같은 말이 아니라 성실함의 다른 말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듯하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다시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것은 곧 삶을 성실히 대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태도일 테니 말이다. 은희경의 시그니처인 날카로움과 예리함이 탄생하는 순간은 이렇듯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