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를 넘어선 생존기 "워킹 푸어로 일하고, 느끼고, 살아 보다"
긍정주의의 맨 얼굴을 속 시원히 파헤친 『긍정의 배신』의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워킹 푸어(working poor, 근로 빈곤층)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최저 임금을 받아서 과연 먹고살 수 있을까? 그들이 가난한 게 정말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일까?
『노동의 배신』은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저자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간 경험을 담았다.
저자의 목표는 단순했다. 일을 구하고 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음식을 사고 잠자리를 구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 그러나 그 단순한 목표를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노동의 배신』에는 그 같은 고군분투를 통해, 살아 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워킹 푸어의 총체적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구직 과정에서부터 감정과 존엄성을 말살하는 노동 환경, 영양은커녕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조차 섭취하지 못하는 식생활, 부자들이 집값을 올려놓은 탓에 싸구려 모텔과 트레일러 주택을 전전하며 점점 더 외곽으로 쫓겨나는 주거 실태, 가난하기에 돈이 더 많이 들고 그래서 더 일해야 하고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쳇바퀴까지, 저임금 노동자들을 옥죄는 생활의 굴레를 저자 특유의 위트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파헤친다.
'노동의 배신'이라는 한국어판 제목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점점 더 가난해지는, 노동에 '배신'당하는 워킹 푸어의 역설적인 현실을 의미한다. 원제인 'Nickel and Dimed' 역시 '야금야금 빼앗기다', '매우 적은 돈을 쓰다'라는 두 가지 뜻으로, 푼돈조차 아껴 쓸 수밖에 없으며 가난하기에 오히려 돈이 더 드는 워킹 푸어의 생활을 보여 주는 말이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이 세상을 움직인다" 생활 임금 운동에 불을 붙인 '현대의 고전'
저자가 저임금 체험을 할 당시, 미국은 성장은 지속되면서 물가는 안정된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에 한껏 취해 있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 임금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하락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집값과 주가 상승 등 자산 거품이 빚어내는 '부의 효과'에 흥청거렸다. 사실 전례 없는 호황이라던 그때, 노동 인구의 30퍼센트가 생활이 가능한 수입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당 8달러 이하의 임금을 받았고(1998년), 최저 임금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시간당 5.15달러에 멈춰 있었다. 다만 거품에 취해 있던 대다수의 미국인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깊어지는 풍요의 그늘'을 외면했을 뿐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에런라이크는 빈곤층의 열악한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그들이 결코 게으르거나 일을 하지 않아서 가난한 게 아님을, 그들의 빈곤이 중산층의 안락함의 토대임을 섬뜩할 만큼 몸으로 보여 주었기에 미국 사회가 받은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5월 초판이 나오자마자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1년 8월 '10주년 기념판'이 나올 때까지 10년 동안 미국에서만 150만 부 이상 팔렸다. 또 전 세계 1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면서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권위 있는 도서 상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북 프라이즈'(2002년), 천주교 단체가 '인간의 정신에 내재한 가장 고귀한 가치를 재확인시키는' 책을 선정해서 수여하는 '크리스토퍼 어워드'(2002년), 루즈벨트 재단의 '자유 메달'(2007년)도 받았다.
그러나 수많은 찬사와 수상 경력보다 의미 있는 것은 이 책이 현실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일대를 비롯한 600여 개 대학의 필독서로 선정됐고, 수많은 지역 모임에서는 책을 대량 구매해 시 의회 및 주 의회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책 내용을 토대로 다큐멘터리와 연극도 만들어졌다. 이 책은 생활 임금 운동의 큰 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29개 주가 최저 임금을 인상했고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생활 임금을 지급하라는 법령이 통과됐다. 마침내 2007년 7월에는 연방 정부가 최저 임금을 인상하기에 이른다. 현재 미국 연방 정부의 최저 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이다.
이렇게 악착같은 저널리스트가! 10년을 추적하는 치밀하고 치열한 현장 정신
사실 블루칼라 노동자 집안에서 자란 저자에게 빈곤은 언제든 가까이 할 수 있는, 그러나 다시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저임금 체험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도 계속 망설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을 중시하는 저널리스트답게, 또 관찰과 실험에 근거하는 과학자답게 결국 직접 '손을 더럽히러' 나선다.
저임금 체험은 3개 지역에서 각각 한 달 정도씩, 1998년 봄부터 2000년 초여름에 이르기까지 3년에 걸쳐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저자는 과학도로서 치밀하고 과학적인 사전 준비를 한다. 우선 기본적인 원칙을 정한다. 기존 직업에 의존해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다, 임금을 제일 많이 주는 일을 한다, 제일 임대료가 싼 방을 구한다, 가급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상시를 대비해 자동차를 사용하고 노숙이나 굶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을 덧붙인다.
실험 장소를 고를 때는 노동 시장 및 주택 시장을 고려했다. 첫 체험지로 고른 플로리다의 키웨스트는 익숙하고 자신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이라 골랐다. 두 번째 체험지 메인 주의 포틀랜드는 백인이 우세한 지역으로서 백인이라는 자신의 인종적인 장점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체험지인 미니애폴리스의 트윈시티는 사람들이 친절하고 복지 혜택이 관대한 편이며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는 집세가 너무 높아서, 아주 시골 지역은 일자리가 적을 것 같아 애초부터 제외했다.
저자의 기자 정신은 체험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진다. 10년이 지난 2011년에는 다시 동료들의 근황을 추적해 2008년 금융 위기가 빈곤층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들려준다.
워킹 푸어로 일하다 "생각하지 말고 계속 움직여라"
저자가 처음 맞닥뜨린 저임금 일은 식당 웨이트리스였다. 일을 더 잘하고 싶고 손님들을 잘 돌보고 싶다는 고차원적인 '아가페', 혹은 서비스 윤리는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에 지쳐 어느새 사라진다. 손님들이 적으로 보이는 웨이트리스 일에 필요한 것은 '생각하지 말고 계속 움직이는 것'이니까. 게다가 컴퓨터 터치스크린으로 하는 주문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고 끊임없이 쓸고, 닦고, 썰고, 붓고, 채우는 '잡일'도 해야 한다.
두 번째로 체험한 청소 용역 회사의 파견 청소부는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 반복되는 일이다. 집 안 곳곳의 먼지를 털고 거대한 진공청소기를 등에 진 채 청소하고 무릎을 꿇어 바닥을 닦고 똥 묻은 변기와 욕조의 체모까지 치워야 한다. 온몸은 땀투성이가 되고 곳곳이 아프기 마련. 부상을 당하는 일도 다반사지만 치료는커녕 마음 편히 쉬기도 어렵다. 가려움증 때문에 나병 환자 같은 몰골이 된 저자에게 사장은 '아무 문제없다'며 일하러 가라고 떠민다. 값싼 진통제나 담배, 술 한 잔에 의존하거나 대부분은 그냥 참는 것으로 버틴다.
마지막으로 체험한 월마트 매장 일은 '단순노동'. 저자는 숙녀복 매장에 배치돼 손님들이 어질러 놓고 간 옷을 정리하고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없이 할 수 있고, 자폐증이 있으면 오히려 더 유리할 것 같은 그런 일이다. 그러나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만큼 양이 많다. 게다가 3일마다 한 번씩 매장 배치가 바뀌는 탓에 그때마다 자리 배치를 다시 외워야 한다. 저자는 근무 시간 초반에 친절한 '지킬 박사'였다가도 끊임없이 옷가지를 헤쳐 놓는 손님들에 지쳐 이내 '하이드'로 폭발하고 만다.
워킹 푸어로 느끼다 "감정, 생각, 존엄성마저 빈곤해진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