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위대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4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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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사건이 벌어진 뒤, 종교의 배타성과 폭력성, 호전성, 반인간성과 반문명성에 대한 회의가 전세계 시민사회로 번지고 있으며 팍스아메리카나의 기독교 복음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앞에서 사람들은 신과 종교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종교를 비판하는 책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종교에 대한 반감을 단순하고 거칠게 표현하는 차원이 아니라 경전의 원전, 그 문헌학과 해석학, 종교의 역사에 근거해 신중하고 지적인 태도로 논의를 이끌고 있으며, 무엇보다 ‘종교의 야만성’ ‘종교가 저지르는 범죄’에 머물지 않고 ‘신’ 자체를 문제의 핵심으로 포착해 ‘신의 자기모순’에 파고들기 때문에 일반 독자는 물론 종교계에까지 ‘불편하지만 읽어야 할 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종교인도 무시할 수 없는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감정적인 선동이 아닌 세련되고 논리적인 문장, 인문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위엄 있는 표현, 계몽주의 전통을 살린 설득력과 재치 들을 두루 갖춘 히친스의 노작은 한국 독자에게도 생산적인 논쟁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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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좋게 말해서 | 2 종교는 생명을 죽인다 | 3 돼지에 관한 짧은 잡담, 또는 천국이 햄을 싫어하는 이유 | 4 건강에 관해 한마디: 종교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음 | 5 종교의 형이상학적 주장은 거짓 | 6 지적설계론 | 7 계시: 악몽 같은 구약 | 8 신약의 사악함은 구약을 뛰어넘는다 | 9 코란의 내용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화를 빌려온 것 | 10 값싼 기적과 지옥의 쇠퇴 | 11 ‘비천한 시초의 흔적’: 종교의 타락한 시초 | 12 코다: 종교의 끝 | 13 종교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가? | 14 ‘동방의’ 해법은 없다 | 15 원죄로서의 종교 | 16 종교는 아동 학대인가? | 17 예상했던 반대: 세속주의에 맞서는 최후의 ‘주장’ | 18 더 훌륭한 전통: 합리적인 사람들의 저항 | 19 결론: 새로운 계몽이 필요하다 | 감사의 말 | 주 |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나오자마자(2007년 5월) 독자와 평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뉴욕타임스〉 〈더타임스〉 〈위싱턴포스트〉 〈퍼블리셔스위클리〉등 중요 언론은 앞을 다투어 보도와 서평을 실었고, 〈뉴욕타임스〉 집계 25주, 아마존 종합 36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나온 뒤 9개월이 된 지금도 논쟁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사건이 벌어진 뒤, 종교의 배타성과 폭력성, 호전성, 반인간성과 반문명성에 대한 회의가 전세계 시민사회로 번지고 있으며 팍스아메리카나의 기독교 복음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앞에서 사람들은 신과 종교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종교를 비판하는 책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종교에 대한 반감을 단순하고 거칠게 표현하는 차원이 아니라 경전의 원전, 그 문헌학과 해석학, 종교의 역사에 근거해 신중하고 지적인 태도로 논의를 이끌고 있으며, 무엇보다 ‘종교의 야만성’ ‘종교가 저지르는 범죄’에 머물지 않고 ‘신’ 자체를 문제의 핵심으로 포착해 ‘신의 자기모순’에 파고들기 때문에 일반 독자는 물론 종교계에까지 ‘불편하지만 읽어야 할 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종교인도 무시할 수 없는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감정적인 선동이 아닌 세련되고 논리적인 문장, 인문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위엄 있는 표현, 계몽주의 전통을 살린 설득력과 재치 들을 두루 갖춘 히친스의 노작은 한국 독자에게도 생산적인 논쟁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논의의 시작 역사와 과학을 넘어: 신의 자기모순을 향한다 샘 해리스의 《종교의 종말》(2004),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2006), 대니얼 데넷의 《마법 깨기: 자연현상으로서의 종교》(2007) 들은 시민들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런 가운데 히친스는 신(종교)에 깃든 모순을 파헤쳐 그것이 보통 사람의 생활과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 미래 인류의 평화와 어떻게 불화할 수밖에 없는지를 논증한 독특한 접근으로 또 다른 각성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제까지 많은 논자들은 종교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해, 신경과학·분자생물학·동물행동학·집단유전학·발생학 등 자연과학에 바탕해 종교를 ‘외부로부터’ 비판해 들어가는 방법 보여주었다. 히친스는 이와 달리 종교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신의 속성에서 찾아 신과 함께라면 인간은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없음을 논증하며 ‘신(종교)의 자기모순에 파고들어 내부의 붕괴’를 기획함으로써 회의적인 시민들에게 보다 신선한 자극을 주는 한편 종교계의 호교론자에게는 더욱 당혹스러운 논의를 보여주고 있다. 호교론자의 공허한 반론을 봉쇄한다 이 책 논의의 출발점은 신과 종교의 ‘자기모순’이다. 그러므로 ‘참신앙은 다르다’ ‘진정한 종교인도 많다’는 식의 예상할 수 있는 종교계의 반론은 사전에 봉쇄되며 진짜 문제에 효과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예컨대 호교론자는 본회퍼나 테레사 수녀쯤을 예로 들며 ‘이렇게 대단한 종교적 실천도 있었다’는 반론을 준비하겠지만 ‘초월적’이거나 ‘신비’한 반론이 불가능하므로 무신론자나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결국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반론밖에는 제시할 것이 없는 종교의 모순을 꼬집는 히친스의 논박에는 과연 어떤 반론을 다시 제기할 수 있을지? ― 바로 이 지점에서 히친스의 발상과 글쓰기의 새로움이 돋보인다. 종교의 범죄상을 인식하고 신경학과 생물학에 기대 반종교론을 벼린 시민들이 다시 한 번 히친스의 책을 집어 드는 까닭은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중요 내용 인간다운 겸손함과 양립할 수 없는 종교 신앙은 … 적어도 우리가 죽음, 어둠, 미지의 것, 그리고 우리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설사 종교를 금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 하지만 종교도 내게 똑같은 관용을 베풀어줄까?(pp. 28). 인류 역사의 진화와 종교 종교가 종말을 맞은 것은, 종교가 선택적인 존재가 된 순간, 또는 여러 다양한 신념체계 중 하나가 된 순간부터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점진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적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은 기간이 더 길었음을 분명히 알아두어야 한다(pp. 104~05). 종교의 ‘원죄’ 종교가 그냥 무도덕한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부도덕한 존재가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런데 종교가 저지르는 이러한 실수와 범죄를 찾아내려면 신자들의 행동(때로는 정말 모범적인 경우가 있다)을 살필 것이 아니라 그 종교의 원래 가르침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순진해서 무엇이든 잘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습을 거짓으로 꾸며서 보여주기 | 피의 희생제물을 요구하는 교리 | 속죄의 교리 | 영원한 보상 또는 처벌의 교리 | 불가능한 임무와 규칙 강요 (pp. 299~300) 종교와 전체주의 종교는 아무리 유순하게 굴더라도 결국은 ‘전체적인’ 해법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해법에 따르면, 믿음은 어느 정도 맹목적이어야 하고, 사람들은 사생활과 공적인 생활의 모든 측면을 더 높은 존재의 영원한 감시에 맡겨야 한다. 이 끊임없는 감시와 복종은 대개 무한한 앙갚음의 형태를 띤 두려움에 의해 더욱 강화되며, 사람들에게서 항상 최고의 품성만 끌어내지는 않는다. … 인본주의도 사과해야 할 범죄를 많이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본주의는 잘못을 사과하고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불변의 신념체계를 뒤흔들거나 거기에 도전할 필요까지는 없다. 반면 전체주의 체제는 겉으로 어떤 형태를 띠든 근본주의적이다. 그리고 이제는 여기에 ‘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여도 될 것이다(pp. 362~63). 인간적인 회의 대 종교 우리의 이성적인 추론능력과 조직화된 종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틀림없이 충돌을 벌였을 것이다. … 철학에는 경전이 필요하지 않다. 철학이 다루는 것은 ‘계시를 통해 전달된’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p. 372).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사실 우리는 절대적 진리, 즉 신앙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신의 계시로 진리를 알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까지 속이거나 위협하려 하고 있다고 말할 권리뿐이다. 물론 어떤 경우든 정신이 회의주의와 탐구의 길을 ‘선택’하는 편이 더 좋고 건전하다. 회의하고 탐구하는 능력을 끊임없이 사용해야만 조금이나마 성취를 이룰 수 있으니까 말이다. …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이다. 인류의 견본은 바로 인간 그 자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 운동 말이다. 예전의 계몽주의자들처럼 대단히 용감하고 재능 있는 소수의 영웅적이고 획기적인 성과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은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 범위 안에 있다(pp. 403~412). 평화와 행복을 위한 기획 히친스는 ‘중요 내용’에 이루 다 소개할 수 없을 만큼 경전 자체, 교부(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군 일반)의 가르침, 종교의 역사 하나하나에 일일이 파고든다. 그리고 그 위에서 이렇게 논증한다 ― 인간은 인류 역사의 시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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