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사랑

세계적인 사회학자 부부가 밝히는 글로벌 시대의 성, 사랑, 가족의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우리는 종종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고 가장 먼 사람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세계에 살고 있다.” 단거리 사랑도 견디기 힘든데 장거리 사랑이라니! 이제 정상가족은 난파하고‘세계가족’이 닻을 올리고 있다. “매월 15일 이상 함께 지내는 커플이 장거리(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커플보다 헤어질 확률이 대략 4배 높다. ‘근거리 사랑에는 알맹이가 없다.’ 근거리 사랑에서는 하루 평균 27.5개의 단어가 오가며 내용도 꼭 필요한 것에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여성 쪽에서 하는 말이 불균형적으로 많다. 대화가 메마른 이런 상황에서는 성애와 친밀성, 성생활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_장거리 사랑 위원회 “사랑이 견딜 수 있는 거리는 얼마 만큼일까? 사랑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필요로 하는 걸까? 장거리 사랑은 희박한 사랑, 나머지 사랑인가? 일상적으로 5백 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고 또(는) 출신국가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근거리 커플에 비해 ‘바람피우기 상관지수’가 170.7배는 높다.” _단거리 사랑 위원회 ‘사랑과 전쟁’이 아니라 문제는‘정상적인 혼란’이다. 가족이‘자유, 평등, 사랑’을 조화시켜줄 수 있으리라는 신념과 희망이 최종적으로 파산한 우리 시대,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정박할 것인가? 매일 400쌍이 헤어지는 세계 3위의 이혼율, 평균 1.19%의 세계 최저 출산율, 급증하는 다문화 가정, 황혼 이혼, 기러기 가족의 ‘정상화’ 등 ‘지구화’라는 거창한 이름이 가져온 것은 개인들의 삶의 철저한 개체화와 파편화이다! ‘지구화’는 우리 삶에 무엇을 가져왔는가? 그것은 ‘금융 위기’, ‘언어의 위기’를 넘어 ‘가족의 위기’와 ‘개인의 위기’로 확산, 심화되고 있다! 그리하여 가족은 힐링과 위안의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라 ‘사랑’을 둘러싼 온갖 카오스의 진앙이 되고 있다. ‘악처’에 시달린 ‘공처가’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는 ‘결혼은 해도 손해요, 안 해도 손해’라는 말로 결혼을 필요악으로 긍정한 듯이 보이는데, 우리 시대 이 말은 ‘결혼은 해도 그만이요, 안 해도 그만이요’라는 냉소로 바뀐 듯하다. 즉 사랑이 열정에서 냉정으로 그리고 이제는 냉소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가족은 세상의 모든 파고로부터 개인을 지켜주는 성(城)에서 ‘사랑과 전쟁’이라는 말대로 온갖 전투와 협상, 타협과 결별이 매일 마다 이루어지는 전쟁터가 된 느낌이다. 또는 요즘 널리 회자되는 아감벤의 정치철학적 용어를 빌리지만 가족이라는 제도는 ‘정상 상태’를 벗어나 일종의 예외상태가 되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운 정 고운 정’, ‘원수니 뭐니 해도’라는 말대로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는 일종의 인간이라는 ‘호모 사케르’를 품어주는 최후의 피난처, 피신처였으나 이제 인간은 이러한 제도적 보호막으로부터도 ‘배제’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아무튼 결혼과 가족을 둘러싸고 낭만주의나 열정, 더 나아가 절대적 신뢰가 무너진 것은 아마 지난 10여 년 간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일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이와 관련해 결혼은 ‘필요악’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소극적 긍정을 동성애가 우세했던 그리스 문화를 배경으로 이해해야 하듯이 성, 사랑, 가족을 둘러싼 변화 또한 우리 시대의 변화를 배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화’ 하면 우리는 마치 트라우마처럼 곧장 IMF라는 금융 위기를 떠올려서 그렇지 실상 ‘지구화’가 ‘장기지속적으로’ 한국 사회에 가한 가장 큰 충격은 가족과 개인의 변동일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한국은 매일 400쌍이 헤어지는 세계 3위의 이혼율, 평균 1.19%의 세계 최저 출산율, 급증하는 다문화 가정, 황혼 이혼, 기러기 가족 등 과거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 ‘정상화(일반화)’되는 급격한 변화 속에 있다. 이에 덧붙여 이제 가족은 더 이상 ‘한 지붕’, ‘한 언어’, ‘검은 머리 파뿌리’를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여러 지붕, 다언어, ‘동거’가 일반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과연 무엇이 ‘정상’일까?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힐링’과 ‘위안’마저 최후의 안식처인 가정이 아니라 종교나 ‘멘토’들에게서 구해야 하는 감정의 사막화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사랑은 안녕하신가? 나의 가족은 든든한가?”라고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에 대해 세계적 사회학자인 벡 부부는 ‘지독한 혼란이 정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일종의 변증법적 태도를 답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아마 그러한 역설의 긍정이 이 지독한 혼란을 바로 볼 수 있는 혜안을 마련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장거리 사랑’, ‘세계가족’, ‘세계사회’ 등 이 두 부부 사회학자가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흥미진진한 개념들 자체가 그러한 역설 그리고 변증법적 긴장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랑’은 ‘두 부부(연인) 사이의 일’, 또는 더 좁게는 부부의 ‘침실’안을 의미하기 때문에 장거리 사랑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형용모순은 예를 들어 ‘기러기 가족’이라는 우리 현실을 조금만 돌아봐도 금방 전혀 모순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옛날에는 ‘유붕이 자원방래’라는 공자의 말처럼 멀리서 사람이 찾아오면 무조건 반가워하고, 님과의 이별은 하늘이 무너질 일로 ‘살을 맞대지 않으면’ 부부의 연이 끊어지는 것이었으나 이제 부부는 다른 대륙에 ‘기러기’처럼 떨어져 살고 있고, 아이들은 화상 속에 엄연히 하루하루를 함께하고 있다. 또 예를 들어 옛날에는 ‘엄마 찾아 3만리’였지만 지금은 몇 초 만에 선진국에 일하러 간 엄마와 스카이프로 연결될 수 있다. 즉 이제까지의 가족은 ‘다름보다는 같음’에 기반하고 있었지만 지금부터의 가족은 영원히 ‘다름’에 기반을 둘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저자에 따르면 그러한 추세는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것이 아니다. 이제 점점 더 정상가족은 세계가족과, 단거리 사랑은 장거리 사랑과 공존하거나 후자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금융 위기에 따른 세계적 혼란에 못지않게 우리의 감정 경제, 정서의 체계에도 그에 못지않은 전 세계적 위기와 혼란이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제3세계의 가장 가난한 사람의 가장 건강한 신체가 제1세계의 가장 부유한 사람의 가장 건장하지 못한 신체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 엄마 고향은 베트남이에요’, ‘내 간은 중국에서 구했지요’, ‘제 생모는 스페인산 난자입니다.’ 지구화를 배경으로 이처럼 거대한 혼란이 점점 더 ‘정상적인 것이 되어 가는’ 과정을 글로벌하게 추적하는 두 저자의 시선은 단지 우리의 감정 체계의 전 지구적 혼란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 결혼 여성의 경우 그처럼 ‘작은’ 변화가 남성 우위의, 그리고 남아선호 사상이 여전히 뿌리 깊은 베트남의 고향의 전통 사회를 어떻게 급격하게 변화시키는지를 성찰적으로 보여준다. 즉 그때부터 딸과의 대화 통로를 독점하는 어머니가 ‘가부장’인 아버지를 제치고 가정의 경제를 주도하거나 여동생도 동일한 출가 방식을 택하는 식으로 전통 사회는 ‘산업화’가 아니라 ‘국제결혼’을 통해 철저한 변화를 겪는다. 물론 두 사람은 이러한 전 지구적 격변의 최대 패배자는 바로 같은 마을에 사는 ‘농촌 총각’들로 이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평생 결혼할 기회를 갖지 못할지도 모르는 뼈아픈 현실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필리핀의 경우 교사 등의 지식 노동자들이 선진국에서의 도우미 등 육체노동으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