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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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예외와 조우하면서 또 다른 미래로 나아간다.” 우리가 사랑해온 여성 시인들, 이 시대 여성 북디자이너와 텍스트로 만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디자인 페스티벌 1978년에 시작된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2017년에 통권 500호를 돌파한 이래 550권에 이르는 독보적인 한국 현대 시사를 써오고 있다(2020년 12월 12일 현재). 그동안 문지 시인선은 초기 디자인의 판형, 용지, 제본 방식을 포함한 주 골격을 유지하되(오규원 디자인, 이제하 김영태 컷), 100호를 단위로 표지 테두리의 기본 색깔을 달리하고, 내지와 표지에 쓰인 글꼴의 크기와 배치에 미세한 변화를 부여하는 선에서 본래 디자인의 전통성을 지켜왔다. 표지 전면의 액자 프레임과 시인의 독특한 캐리커처로 대표되는 시집의 얼굴은 그 과감한 색면 디자인과 압도적인 은유로 문지 시인선의 정체성을 상징해왔다. 45년 가까이 유지돼온 이 디자인은 시대를 앞서는 사유의 진폭과 언어 미학의 정수를 담아온 문지 시인선의 역사이자, 올해로 창사 45주년을 맞은 문학과지성사 출판사(史)와 동궤의 시간의 무게를 안고 있다. 이제 문학과지성사는 문지 시인선의 열린 미래를 향해 새로운 모색과 도전을 시작한다. 그 첫 기획으로, 시대와 세대를 가로지르며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아온 여성 시인 최승자, 허수경, 한강, 이제니의 시집과 지금 가장 개성적이고 주목받는 작업을 펼치고 있는 여성 북디자이너 김동신(동신사), 신해옥, 나윤영, 신인아(오늘의풍경)가 만나 문지 시인선의 특별한 얼굴을 선보인다. 이번 시집 디자인 페스티벌에 함께한 북디자이너들은 각각 독창적이고도 흥미로운 디자인적 해석으로 운문 본래의 리듬과 정서를 존중하되, 2020년 새로운 시 텍스트 해석에 신선하고도 도전적인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디자인의 기초인 타이포그래피와 만져지고 느껴지는 종이의 뚜렷한 물성을 총체적으로 결합해낸 이번 특별 한정판은, 이미 필사와 암송의 텍스트로 애정을 쏟아온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선물이, 미처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강렬하게 작동하는 현대 시사의 정수를 경험하는 값진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전통은 ‘예외’와 조우하면서 다른 미래를 예감하고 또 다른 시작의 첫발을 뗀다. 이번 문지 시인선의 낯선 얼굴들은 ‘디자인 문지’를 위한 모색이자, 문지 시인선의 그다음 ‘500호’를 향한 기꺼운 출발인 셈이다. 시의 언어가 북디자인의 물성(物性)과 부딪치고 서로에게 스며들며 매혹적인 만듦새의 결정체로 거듭나는 이 축제의 자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심해의 밤, 침묵에서 길어 올린 핏빛 언어들 상처 입은 영혼에 닿는 투명한 빛의 궤적들 생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깊은 어둠 속에서 발견해낸 빛을 단단하고 투명한 목소리로 담아냈던 첫번째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 통쇄 34쇄). 이 책은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에 단편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한강이 등단 20년 차를 맞던 2013년 틈틈이 쓰고 발표한 시들 중 60편을 추려 묶어낸 시집이다. 부서지는 육체의 통각을 올올이 감각하면서도 쓰고 사는 존재로서 열정에 불을 지피는 시적 화자의 거대한 생명력은 읽는 이에게 무한한 영감과 용기를 북돋웠고, 출간된 지 7년이 조금 넘은 시간 동안 9만 부에 가까운 책이 세상의 독자들에게 가닿았다. 2020년 새로운 옷을 입어 따뜻하고 밝은 커버와 희고 충만한 여백이 확보된 본문을 통해 한강의 시편마다 반짝이는 영혼을 더욱 실감 나게 감각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디자인 노트_나윤영 디자인이 작가의 글을 왜곡하지 않기를 바라며 ‘될 수 있으면 보이는 그대로 간략하게’ 표현했다. 겉표지에 규칙 없이 늘어놓은 선들은 각 시의 마지막 단어들의 길이이고, 빛이 부서지는 조각들이기도 하다. 초기 작품으로 구성된 5부만 좀더 투박하고 두꺼운 종이를 사용했다. 별다른 장치가 없는 속표지부터는 ‘여기서부터 작가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숨을 한번 가다듬고 작가의 눈에 비친 풍경을 감상하세요’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