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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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낯설게 응시하기, 실패하기, 숨겨진 조건들이 드러나기 이 책에서 플루서는 ‘비사물’에 관한 두 편의 에세이(〈비사물 Ⅰ〉, 〈비사물Ⅱ〉)를 제외하고는 열네 편의 에세이를 모두 평범하고 단순하고 고전적인 사물들로부터 출발하여 쓴다. 서두의 첫 에세이 〈내 주위의 사물들〉에서 플루서는 자신이 그 사물들을 ‘홀대할 만하다’고 생각함을 고백한다. 그러나 플루서는 바로 그 ‘홀대할 만한 사물들’, 바로 거기서 그 사물이 지닌 철학적 의미를 길어낸다. 이를테면 ‘벽’(〈벽〉)은 ‘나’와 세계를 분리함으로써 나 대 세계라는 양가적 선택지를 만드는 사물이다. 그리고 거기 달린 문이나 창문은 “이 실존적 딜레마의 해법은 아니”다. 문이나 창문을 여닫기를 결심하는 것은 인간 주체이므로, 인간은 결국 어떻게든 벽 안 혹은 밖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조건, 윤리적 양가성의 조건 아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들 인간의 존재 조건이, 플루서의 관조가 사물들에게 비추는 빛 언저리에서 함께 드러난다. 또 이를테면 〈체스〉라는 에세이에서, 플루서는 사물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것에 대한 배경지식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망각한 채 사물을 응시할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하고 또 스스로 시도한다. 그 응시를 시도할수록 발견하게 되는 것은 시도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알고 있었지만 잊었던 것을 재발견’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플루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결론짓는다. 결국 사물을 응시하기란 “나보다 먼저 저 사물을” 발견한 수천의 타자들의 목소리로 사물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을 듣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의 존재 조건은 이토록 타자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사실은 침대라는 사물에서의 활동에 빗대어 일종의 인생론을 논하는 〈침대〉의 제6절 ‘사랑’에서도 다시 한번 드러난다. 그런가 하면 사물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세대의 사람이든, 비사물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세대의 사람이든, 인간이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도 또한 알 수 있다. 인식 혹은 존재에 있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에 대한 사유는 플라톤 이래 칸트를 거쳐 모든 철학의 화두였고, 플루서의 사유 또한 그 선상에 있다. 플루서는 일종의 문학적인 플라톤 혹은 유쾌한 칸트인 양, 현상학적 시선에서 사물들을 관조함과 동시에 반(反)-형이상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인간의 존재조건을 밝혀낸다. 사물이 밀려나고 비사물이 밀려온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스마트폰, SNS, “로봇” 가전이나 AI 채팅 프로그램 등,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물들은 사실 본질적으로는 사물 아닌 것들이다. 그것들의 존재론을 규정하는 것은 그것들의 사물성이라기보다는 그 안에 내장된 형체 없고 부드러운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평상시뿐 아니다. 비일상적 여가를 즐길 때도 우리는 좀처럼 비사물의 세계 밖으로 나가지지 않는다. 현대미술의 전시는 많은 부분 실물 조형이 아니라 홀로그램 이미지나 영상, 사운드 등으로 이루어진 미디어아트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처럼 2020년대의 우리는 이제 완연한 ‘비사물’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존재론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지금으로부터 30년가량 전에 이 사실이 인간의 존재론에 던지는 의미에 대해 통찰력 있게 고찰한 철학자가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다시금 번역 및 주목의 움직임이 재개되기 시작한 매체철학자 빌렘 플루서다. 그가 관심을 쏟는 영역은 물론 디지털 미디어가 지배적이 된다는, 미디어의 변화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변화가 인간의 조건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전자기기들 탓에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비사물적인 미래의 사회는, 프로그래밍하면서 프로그래밍되는 사람들의 사회”, “프로그래밍된 전체주의”라고 한다. 사실 스스로를 ‘사물들’과 함께 소멸할 세대의 일원으로 여기는 듯한 플루서의 어조에서 이에 대한 그의 전망이 자못 우울함을 유추할 수 있지만, 그것이 책 전반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그의 여러 에세이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는 결국 모든 시야는 “주체가 선 입지의 문제”임을 거듭 강조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물 혹은 비사물들을 어느 관점에서 보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이 책을 대하는 우리, 비사물들의 세계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어느 입지에 서서 어느 관점을 취할 것인가? 플루서는 어떤 것을 더 선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사물을, 혹은 비사물들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가만히 열어줄 뿐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존재 조건이 이전의 것에서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그러나 인간 실존의 “근본 정조”는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물과 비사물: 현상학적 소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조건들을 성찰하고 자신에게 익숙했던 관점을 떠나 여러 입지에 서보면서 자신의 일상을 이루는 세계를 “낯설게 보기” 할 수 있는 체험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