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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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믿어야 할 때가 있고 의심해야 할 때가 있다 거짓 숫자가 불러온 재정 정책의 참패 2010년 하버드 대학의 두 경제학 교수는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90퍼센트를 넘으면 경제성장이 위태로워진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90퍼센트’ 초과 지점을 경기침체로 접어드는 티핑 포인트로 제시한 것이다. 하버드 대학 교수라는 권위와 구체적인 숫자 데이터가 결합하면서 이들 교수의 주장은 긴축재정에 관한 설득력 있는 근거로 받아 들여졌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2013년 공화당의 예산안을 보면 자신들의 재정정책 정당성을 이들 교수의 이론에 두었고, 영국 보수당 지도자인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가 주창한 ‘긴축의 시대(Age of Austerity)’의 이론적 토대 역시 이 이론이었다. 두 경제학 교수의 주장에 근거한 재정긴축 정책의 결과는 어땠을까? 대표적으로 유럽의 평균 실업률을 살펴보면, 2011년 10퍼센트에서 2012년 11퍼센트, 2013년에는 12퍼센트로 상승했다. 재정긴축을 옹호하며 자주 목소리를 높였던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유럽의 재정긴축 정책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해로운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들 경제학자의 주장을 옹호하면서 모든 경제학자가 ‘정부부채 비율 90퍼센트’ 초과에 내포된 위험에 동의한다는 뉘앙스의 기사를 실었지만 많은 경제학자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당시 대다수 경제학자가 동의하는 한 가지는, 정부부채를 줄이기 위해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올리는 일은 2007년 12월에 시작된 대침체로 경제가 불안한 현 상황에서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두 교수의 주장이 담긴 연구논문을 검증해본 결과, 데이터 일부의 선택적 누락 및 의도적 선별, 비정상적인 평균 계산 등 객관적 연구라고는 볼 수 없는 통계적 오류와 데이터 조작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긴축재정 정책 지지자들은 자기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유명 교수의 연구결과를 맹신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번 생각해보라. 정부부채 비율이 90퍼센트라고 하면 심각한 수준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선, 정부는 부채를 당장 상환해야 할 강력한 이유가 없다. 우리 자신만 해도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로 연소득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끌어온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대출금을 즉시 갚을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이 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소득으로 대출금을 매월 갚아나갈 수 있는지 여부이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게다가 정부는 필요하면 화폐를 직접 발행할 수도 있기 때문에 상환 부담이 훨씬 덜하다. 더군다나 문제가 되는 정부부채 비율이 왜 90퍼센트인가? 80퍼센트나 100퍼센트는 왜 안 되는가? 경제성장과 경기침체 사이에 90퍼센트라는 마법의 숫자가 있어야 할 어떤 타당한 이유도 없다. 현실을 보면, 반대로 경기침체로 인해 정부부채 비율이 높아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경기침체하에서는 정부 세수는 감소하고 실업급여 및 저소득층 대상 식료품 구매권, 기타 사회안전망에 대한 정부 지출은 증가한다. 세수는 줄고 지출은 느는 두 가지 상황은 정부차입 규모를 확대시킨다. 이렇게 해서 경기침체는 GDP 하락뿐만 아니라 정부부채 증가를 불러온다. 만약 경제성장과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사이에 통계적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면, 이는 주로(또는 전적으로) 경제가 정부부채 비율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지, 정부부채 비율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은 아니다. 과도한 정부부채 비율이 경제성장 둔화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 둔화가 정부부채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데이터와 숫자의 힘 · 이름과 성의 첫 글자를 조합했을 때 ACE처럼 긍정적인 경우 3~5년 더 오래 산다. · 교도소 복역 경험이 있는 유권자의 경우 투표율이 22퍼센트 감소한다. · 전자파에 노출된 아이는 노출되지 않은 아이보다 소아백혈병에 걸릴 확률이 최대 4배 더 높다. · 이름이 알파벳 D로 시작하는 야구선수는 E~Z로 시작하는 선수보다 평균 1.7년 빨리 죽는다. · 방 정리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다. · 스포츠 전문 주간지〈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나 미식축구 비디오게임 시리즈 ‘매든 NFL’ 표지에 등장하는 선수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거나 부상을 입는 등의 징크스에 시달린다. · 어린이 암 유발 원인 중 하나는 송전선 인근에 거주하는 것이다. · 긍정적인 정신 에너지는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위의 주장 모두 저명한 학자와 언론이 데이터에 근거해 도출한 거짓 주장이다. 데이터에 근거했다는 것만으로는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인간의 인지적 편향, 명성과 자금을 원하는 연구자의 욕망, 컴퓨터의 실수 등이 얽혀 데이터 조작이 자행되고 숫자가 왜곡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헛소리에 근거한 의사결정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 가령, 불경기인데도 증세 정책을 추진하거나 사기꾼에 불과한 투자 상담가에게 혹해 노후자금을 맡기는가 하면,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 건강을 위태롭게 하고,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비즈니스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도출한 주장이나 결과가 결코 틀릴 리 없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데이터가 넘쳐나는 요즘, 연구자가 양질의 데이터와 쓰레기를 구별하거나 타당한 분석과 무가치한 과학을 분별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분야에 아무리 정통한 전문가라도 연구조사를 하면서 매번 데이터가 편향되거나 부적절한 것은 아닌지, 연구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결론에 호도하는 내용은 없는지 살피지는 않는다. 어떤 질서라도 있는 것이 혼란스러운 것보다 위안을 주는 법이니까 백 년도 더 전에 셜록 홈즈는 조수 왓슨에게 이렇게 말했다.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진흙 없이 벽돌을 만들 수는 없단 말이야.” 오늘날 홈즈의 바람은 더없이 이루어졌다. 강력한 컴퓨팅 기술은 어떤 데이터든 놓치지 않고 추려낸다. 이제 문제는,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데이터에 속는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통계적 속임수에 넘어가게 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본 것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본능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을 확실하게 만들고,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통제하기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기를 바란다. 이런 열망은 두 가지 인지적 오류를 불러온다. 첫째, 패턴과 그 패턴을 설명하는 이론에 쉽게 현혹당한다. 둘째,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는 데이터는 끝까지 고수하는 반면 자신의 이론을 반박하는 증거는 무시해버린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단지 지금까지 봐왔던 패턴과 일치한다는 이유로 어떤 말이나 설명을 신뢰한다. 그리고 일단 그런 말이나 설명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대로 고수하려고 한다. 이 두 가지 인지적 오류 때문에 우리는 온갖 통계적 속임수에 취약하다. 그래서 의미 없는 패턴들이 정부 정책의 결실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되고, 어떤 마케팅 계획의 실효성 내지 투자 전략의 성공 또는 건강보조식품의 효과를 입증하는 근거로 언급될 때 우리는 이 패턴들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너무도 빠르게 가정해버린다. 이러한 우리의 취약점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강렬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욕구는 떨쳐내기 힘들다. 영국의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Ronald Coase)는 “데이터를 충분히 오래 고문하면 결국 자백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데이터를 고문해 도출한 수십 개의 왜곡된 주장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장의 근거로 사용된 데이터와 숫자가 어떻게 우리의 편향된 뇌를 통해 객관적인 통계를 주관적인 믿음으로 왜곡시키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의 눈을 가리는 통계적 장난에 더는 속지 않고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