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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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정치를 뛰어넘는 따뜻한 진보가 필요하다 “진보에 필요한 것은 현실을 반영한 실천이다”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명제는 오래전부터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는 말로 여겨졌다. 진보는 도덕성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포용성을 갖고 있었다. 보수에 비해 훨씬 깨끗하고, 약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며,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다. 노무현은 “미래의 역사는 진보주의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보는 기존의 기득권 구조를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시 말해 엘리트 중심의 진보운동과 진보 정치 세력의 집권은 ‘진보 역시 사회의 기득권층’이라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진보가 오랫동안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공익과 공동체주의도 약화되었다. 진보는 힘 있는 사람이 누리는 권력을 약자도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해 힘없는 사람의 연대와 참여를 중시한다. 그리고 분배와 정의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고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명예교수는 “진보는 존재 증명을 위해 진보적 주장을 펴는 게 아니라 실천까지 내장한 프로젝트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에게는 타협과 포용의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진보는 뼈아픈 성찰과 반성과 변화의 노력을 통해 ‘진짜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낡은 진보’를 뛰어넘어 따뜻하고 공감할 줄 아는 진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100일 정도 앞둔 현 시기에, 정권교체를 향한 보수의 열망이 달아오르는 반면 진보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2016년 탄핵 촛불시위 때의 보수의 위기는 곧 진보의 위기였다. 다만 그 현실을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이 불거질 때까지는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 이후 진보는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진보는 국민의 삶을 진보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도 못했다. 그 점에서 2022년 대통령 선거는 진보 정치 세력이 새롭게 전진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다. 박찬수의 『진보를 찾습니다』는 한국 정치에서 진보라는 개념이 어떻게 받아들여져 확장되어온 것인지, 진보의 위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2016년 가을과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경험했지만 진보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커졌다.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는 전례 없는 승리를 거둔 한 켠에서는 젊은 세대의 분노와 비판이 분출하는 정반대 흐름이 가시화했다. 더구나 젊은 세대의 눈에는 ‘진보나 보수나 권력을 잡으니 똑같다’는 시각이 강해졌다. 진보는 성장 정체 사회의 젊은 세대가 겪는 아픔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젊은 세대는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내 삶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젊은 세대가 선거에서 보수정당을 찍는다면, 그것은 진보정당이 그들의 불만과 문제의식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만원버스와 노회찬의 6411번 버스 노무현과 노회찬이 버스를 통해 진보의 지향을 말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버스가 가장 서민적이고 대중과 함께하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버스 승객이 꽉 찼을 때 진보는 ‘저 사람들도 태워주자. 어렵더라도 같이 타고 가야지’라며 사람들을 헤쳐서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대, 함께 살자는 게 진보의 가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그래도 진보적인 승객들이 있는 버스라면 누구나 올라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저성장이 일상이 된 시대에는 입석이라도 버스에 올라탈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좁아졌다. 버스 바깥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남아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동안 진보는 버스에 올라탄 이들을 포용하고 함께 가는 데는 익숙했지만, 버스 바깥 사람들의 존재와 그들의 분노에 대해서는 깊게 인식하지 못했다. 노무현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더 균등한 분배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보의 가치’를 강조했다. “연대와 사회정의를 이상으로 하는 진보주의는 민주주의 안에 내재된 가치다. 진보라야 민주주의다”고 말할 정도였다. 2007년 6월 참여정부평가포럼 월례 강연의 연설에서 노무현은 “참여정부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참여정부는 진보를 지향하는 정부”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면서 “참여정부의 진보는 민주노동당의 진보와 어떻게 다른가.……‘시장친화적인 진보’고 ‘개방 지향의 진보’다. ‘배타하지 않는 자주를 주장하는 실용적 진보’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진보라는 개념을 사회주의와 노동과 평등에 자주라는 가치를 더해 확장시켰다. 그래서 왼쪽에 비해서 ‘나는 실용적 진보, 실현 가능한 진보주의다’라고 이야기했다. 노무현은 진보의 이념 경직성에 도전을 한 것이다. 노회찬의 진보는 2012년 진보정의당 당 대표 수락 당시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라는 연설에 녹아 있다. 노회찬은 “새벽 4시에 구로에서 출발해 개포동까지 가는 6411번 버스에는 50~60대 아주머니들로 가득 찹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고 반성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대중 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고 말했다. 노회찬는 “정치는 엄연한 현실이고 진보주의자의 기본 덕목은 실사구시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바로 노회찬이 말한 ‘진보의 세속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과 리버럴리즘 노무현의 진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리버럴리즘’에 맞닿아 있다. 노무현이 말했던 진보가 사실은 미국의 리버럴(liberal) 개념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사회주의를 거부하면서 ‘분배와 정의’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옹호하는 것이 루스벨트가 세운 미국 민주당의 진보주의(liberalism)다. 루스벨트는 뉴딜을 통해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내 미국 사회를 바꾸고 보수 우위의 정치 구도를 뒤바꾸었다. 루스벨트의 뉴딜은 수많은 한계를 지녔지만,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설득한 점만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루스벨트는 왜 뉴딜이 필요한지 국민에게 끊임없이 설명해서 지지를 넓혔다. 루스벨트의 라디오 연설이 대표적이다. 이 라디오 연설은 화롯가에 앉아 조곤조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형식이라 노변정담(爐邊情談)으로 불렸다. 노변정담의 평균 청취자 수는 약 5,400만 명에 달했다. 노변정담은 쌍방향 소통이었다. 일주일 동안 백악관에는 45만여 통의 편지가 쏟아졌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요약해서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다시 재분류되어 해당 부처로 전달되었다. 루스벨트는 “소득을 더 공정하게 배분하지 않으면 현 체제를 지속할 수가 없다”고도 말했다. 뉴딜의 목표는 흔히 ‘3R’로 표현된다. 구제(Relief), 재건(Recovery), 개혁(Reform)이다. 우리가 ‘뉴딜’ 하면 떠올리는 대규모 토목·건설사업과 일자리 창출이 바로 ‘구제’나 ‘재건’에 해당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미국 사회를 바꾼 것은 세 번째 목표인 ‘개혁’이었다. 뉴딜 개혁 입법은 하나하나가 엄청난 논란과 반발을 불러왔다. 루스벨트에게는 ‘사회주의자’, ‘볼세비키’, ‘독재자’라는 공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이것이 뉴딜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못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뉴딜은 미국 사회를 바꾸었다. 1935년 7월 제정된 와그너법은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했다. 이로써 노동조합이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실업보험과 노인연금을 담은 사회보장법도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