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엘리트 법률가들은 왜 나치에 동조했고, 어떻게 그들을 정당화했는가? 민주주의 파괴에 앞장선 나치 법률가들을 통해 법과 도덕의 딜레마를 돌아보다 ‘현대 민주주의를 확립한 바이마르공화국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한 나치로 이어졌을까? 어쩌다가 인류 역사에 다시 없을 온갖 참상과 홀로코스트로 치달았을까?’ 나치 독일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나치 독일의 숨은 조연, 히틀러와 나치에 동조하고 정당화했던 법률가들에 초점을 맞춰 답을 구한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경멸”한 바이마르공화국 법률가들이 히틀러의 전제권력과 나치의 법체제 수립을 위한 이론을 제시하고 폭력적 권력 행사를 정당화한 과정을 상세히 살펴본다. 저자는 법 ‧ 역사 ‧ 정치 분야의 최신 연구를 기초로 나치 법률가들이 저지른 법 규범의 전복을 정밀히 추적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창안한 기괴한 법사상과 이론을 낱낱이 밝힌다. 그 결과 “민주주의 규범의 전복과 제도의 파괴에 팔을 걷고 나선 나치 법률가들의 화려한 이력서”(이동기 강원대 대학원 평화학과 교수)가 태어났다. 이 책의 미덕은 나치 법률가와 사법제도에 대한 평면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나치의 법 규범과 제도가 만들어진 사회적 ‧ 정치적 맥락을 기초로 법철학적 평가를 새롭게 했다는 점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나치의 법은 전후 법학자들이 일반적으로 평가해온 것처럼 “도덕과 분리된 ‘악법’ 체계”가 아니라 도덕과 법을 전면적으로 통합한 체계임을 밝히고 법이 정치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다 보면 국가권력이 일반적인 도덕과 법 기준을 전부 위반해도 이를 막는 데 실패할 수 있다”(17~18쪽)는 사실을 입증한다. “드디어 나치 법에 관한 믿을 만한 입문서가 나왔다”(옌스 메르헨리치, 런던정치경제대학 국제연구센터 소장)거나 “복잡한 역사적 현실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함으로써 나치 법에 대한 법학적 논의에 엄청나게 가치 있는 기여를 했다”(라르스 빈크스 케임브리지대학 법학 교수)는 연구자들의 평가는 이 책의 가치를 가늠케 한다. 저자인 헤린더 파우어-스투더는 나치 독일을 사례로 법의 합리성과 규범성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로, 스탠퍼드대학을 거쳐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윤리학 ‧ 정치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콘라트 모르겐: 나치 판사의 양심』(J. 데이비드 벨레만 공저, 2015), 「한스 켈젠의 법실증주의와 나치 법의 도전」(2014) 등 나치 독일의 법을 다룬 다수의 책과 논문을 쓴 나치 법 전문가다. 저자는 나치 법률가들이 쓴 원전을 풍부하게 인용해 그들의 생각과 주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어렵고 까다로운 법개념과 이론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게 썼다. 90여 쪽(745개, 한국어판 기준)에 달하는 미주는 연구의 폭과 깊이를 보여준다.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과거 독일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위기상황에서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도 의미 있는 준거가 될 수 있다. 이 책이 그려낸, 민주주의를 경멸하는 법률가들이 어떻게 정치 권력을 정당화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한국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법’의 이름으로 폭력과 인권 침해를 저지르며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법률가들이 앞장서온 어두운 역사는 말할 것도 없지만, 엘리트 법관들이 정권과 결탁해 사법부의 존재근거를 무너뜨린 ‘사법농단’ 사태와 “법치주의”를 내세우며 집권한 정권이 검찰 권력을 바탕으로 법치를 무너뜨리는 현재의 모습과 나치 법률가들의 행태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의문이다. “20세기 전반 독일처럼 21세기 전반 한국에도 인권의 깊이와 민주주의의 무게를 채 채어보지 못한 채 법전만을 급히 외운 법률가들”(이동기)은 물론 과거의 국가폭력을 성찰하고 법이 정치의 도구로 악용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깊이 있는 성찰의 지점을 제시할 것이다. 바이마르공화국 사법제도와 나치 사법제도의 연속성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나치 사법제도를 도덕과 분리된 ‘악법’ 체계로만 이해하던 기존 인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히틀러에게 절대권력을 부여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수권법」, 「민족과 국가 수호를 위한 제국 대통령령」 등은 ‘독재조항’이라 불리던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제48조에 기반했다. 제48조는 대통령에게 긴급명령을 통해 군사력 지원을 요청할 권한, 거주의 자유 ‧ 표현의 자유 ‧ 집회의 자유 등을 보장하는 헌법 조항을 폐지할 권한을 부여했고 사민당 정부는 실제로 이 권한을 활용해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히틀러 역시 이 조항을 활용해 긴급명령을 공포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박탈했다. 나치 법률가들은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여러 차례 있었던 긴급명령에 의한 통치와의 연속성을 지적하며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것은 적법하다”고 주장했고(73~74쪽) 독일 국민들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물론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이마르공화국은 극우파와 급진좌파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대통령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지만, 나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긴급명령을 악용했다. 그렇다고 해도, 나치가 외형으로나마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나치 사법제도를 그저 일탈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나치 시대의 사법제도는 심각하게 왜곡됐지만 ‘합법성’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나치는 자신들의 권력 강탈을 정당화하려 했고, 실제로 형식적이나마 합법성의 외피를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그 일을 가능케 했던 이들이 바로 ‘히틀러의 법률가들’이었다. “나치 성향의 법률가들은 의회민주주의를 ‘공허한 법적 형식주의’라 공격했고 가치다원주의와 자유주의적 관용을 ‘윤리적 혼란’의 원흉이라고 비판했다.”(39쪽) 이들은 나치의 집권을 ‘합법적 혁명’이란 말로 호도했다. 쇼이너는 혁명은 법을 위반하기 마련이지만, 민족사회주의 혁명은 달랐다고 주장했다. 그 신중한 계획, 치밀한 정치조직, 통제 불가능한 세력을 풀어두지 않은 것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치 혁명은 민족공동체의 사후 인정과 동의로 그 정당성과 합법성을 확보했다고도 역설했다.(76쪽) 형법의 도덕화, ‘의도’ 중심의 나치 형법 탄생 개인의 윤리적 성향, 태도, 동기 등과 같은 도덕의 영역과 법의 영역을 구분하고 도덕의 영역에 대해 중립을 지킨 바이마르공화국과 달리 나치는 “민족사회주의 세계관에 부합하도록 독일법을 재정비”(한스 프랑크 독일법학술원장)한다는 명목으로 법과 도덕을 통합했다. 법과 도덕의 통합은 법을 ‘도덕적으로 옳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속하는 가치판단과 생각, 즉 정신적 영역을 국가가 통제하고 양심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제3제국은 전체주의 특색이 뚜렷한 국가로 빠르게 변모했다. 기본적인 시민권과 자유를 제한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적이던 바이마르 시대에는 국가의 통제 바깥에 있던 사회적 삶의 영역들, 이를테면 여가 활용, 배우자 선택, 자녀계획 등까지도 직접 개입하고 나섰다.(27쪽) 법과 도덕의 통합이라는 나치 사법제도의 특성은 형법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나치 체제에서 형법은 국가가 시민을 지키기 위한 사법적 수단이라기보다, 민족공동체의 순수성과 정권이 가진 불가침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범죄자’들을 겨냥했다. 나치 법사상가들은 “법률뿐 아니라 민족공동체에 대한 충성 의무를 위반한 경우까지도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수정할 방법을 찾았다.”(106쪽) 대표적 수단이 ‘의도’ 중심으로 형법을 바꾼 것이다. 전통적 형법은 범죄의 구성요건과 사실을 중시했지만, 나치 법률가들은 범죄자의 의도에 초점을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