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이 책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 한국), <택시운전사>(2017, 한국), <여름궁전>(2006, 중국),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대만), <복수는 나의 것>(1979, 일본) 등 다섯 개의 작품을 비평하고 해석한다. 다섯 편의 영화를 다룬 다섯 개의 각 장에는 영화감독이자 영화학자인 남승석의 글 한 편과 철학자 문병호의 글이 한 편씩 배치되어 있다. 각 장이 분석한 영화와 내용 소개 「책머리에」는 이 책의 집필 동기와 탄생 배경을 밝히며 각 장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담고 있다. 「서론 :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상을 통해 영화를 해석하는 시도의 의미」(문병호)는 이 책에서 주로 참조한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예술철학을 개괄하며 그들의 사상을 영화 해석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준다. 1장은 2000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다룬다. 「1. 세대 전이적 트라우마와 정치적 알레고리의 공간적 형상화」(남승석)는 이 작품의 서사 구조, 영상 문법, 장르적 성격을 분석하고 이 작품을 ‘대항기억을 촉발하는 정치적 구성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2. 이데올로기 대립과 삶의 파편화, 화해에의 동경」(문병호)은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고통을 중심에 놓고 이 영화의 알레고리를 해석한다. 2장은 2017년 개봉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를 다룬다. 「1. 거대한 역사적 변화의 흐름 속에 던져진 한 개인의 초상화」(남승석)는 이 영화의 ‘변형된 마트료시카’ 구조, 그리고 리본 매듭, 부처님 오신 날, 택시 같은 영화미학적 장치의 의미를 분석하며 결국 이 영화가 다중의 민주화 열망과 부채의식, 추모하는 마음을 그려낸다고 본다. 「2. 예외 상태에서 자행되는 극한적인 폭력에 대한 응시와 평화에의 희망」(문병호)은 이 영화를 “외부 관찰자의 시점으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보면서 택시운전사의 ‘응시’가 갖는 알레고리의 성격, 슈미트·아감벤 등이 이론화하는 ‘예외 상태’가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방식, 그리고 이러한 폭압적인 역사가 어떻게 “삶이 살고 있지 않다”는 아도르노의 진술과 공명하는지에 관해 해설한다. 나아가 영화의 두 주인공(택시운전사와 외국인 기자)의 응시가 극한적인 폭력과 고통 속에서도 공동체의 평화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음을 짚어낸다. 3장은 2000년 개봉한 로우예 감독의 중국 영화 <여름궁전>을 분석한다. 이 영화는 1989년 6월 4일 중국 북경에서 발생한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해 상영금지를 당했다. 영화학자 남승석은 「1. 국가적 트라우마와 감정의 영화적 지도 그리기」에서 이 영화가 젊은 주인공들의 이동과 ‘부유’하는 삶을 그림으로써 어떻게 당대 청년들의 불안을 성공적으로 포착했는지를 분석한다. 철학자 문병호는 「2.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하는 고통과 개별 인간들의 운명, 영혼의 파편화」에서 천안문 사건을 ‘세계의 고통사’의 일부로 파악하며, 이 영화가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하는 고통으로 인해서 개별 인간 영혼의 파편화가 일어나는 방식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본다. 4장은 1991년 개봉한 에드워드 양 감독의 대만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분석한다. 3시간 57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대만의 근대화와 그로 인한 개인의 폭력성을 알레고리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영화는 1961년에 한 14살 소년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대만 사회의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그로 인한 미시적 폭력들을 탐색한다. 남승석의 글 「1. 소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는 국가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적 형상화」는 ‘소년이 저지른 소녀에 대한 살인사건’이 어째서 대만 사회에 만연한 폭력성을 형상화하는 것일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문병호의 글 「2. 거대 폭력의 틀에 갇힌 절망적인 삶의 암호 표지」 역시 “300년 이상 지속된 식민 지배의 상처, 문화 정체성 혼란, 국민당 정권의 폭압 통치가 복합적으로 착종되어 있는” 대만 사회의 고통과 영화를 직접적으로 관련시킨다. 두 필자는 공통적으로 이 영화가 갖는 근본적인 수수께끼적 성격, 손전등 같은 소도구가 갖는 서사적, 역사철학적 의미 등을 살펴본다. 5장은 1979년에 개봉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일본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분석한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초반 일본의 연쇄살인범 니시구치 아키라(작중 이름은 에노키즈 이와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나 범죄물이 아니다. 영화는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동아시아 전체, 더 나아가 태평양권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이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하였던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의 폭력을 주제로 삼고 있다. 남승석은 「1. 연쇄살인범과 운명의 수수께끼적 착종관계」에서 이 작품의 영화사적 위상, 줄거리, 비선형적 서사 구조, 장르적 스타일 등을 섬세하게 해설하면서 결국 영화의 수수께끼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문병호는 「2. ‘죄의 연관관계’로서의 일본 현대사에 대한 보복적 심판」에서 “총체적인 광기·폭력의 극단적인 형식으로서의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분석한다. 그러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모든 예술작품은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비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의 가능성과 현실, 그리고 이 책의 집필 동기 이 책은 영화라는 문화상품이자 예술형태가 처한 현실에 대한 진단으로 시작한다. 저자들은 영화 그리고 영화계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저자들에 따르면 영화는 종합예술작품으로서 세계와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해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설득력이 큰 인식과 비판의 매개 가능성, 계몽능력을 가진 매체이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를 포획하고 있는 현실은 영화의 이러한 순기능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저자들은 본다. 영화는 자본권력이 저지르는 갖은 종류의 폭력에 부역하는 매체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 현실에서, 순수 예술작품으로 성공한 영화들이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특히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사상을 오랜 시간 연구해온 철학자 문병호는 처음 남승석의 공동집필 제안을 받았을 때 20세기에 탄생한 전적으로 새로운 예술 형식인 영화가 할리우드가 상징하는 것처럼 종종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경제적 이윤만을 추구하는 영화산업의 희생물이 됨으로써 문화산업이 창궐하는 데 광범위하고도 구조적으로 연루되어 온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병호 공동저자는 남승석 공동저자가 해석의 대상으로 제안한 여러 편의 영화를 보고 난 후 순수예술로서의 영화가 가진 세계 인식 능력과 세계 변혁의 잠재력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영화가 갖춘 순수예술로서의 계몽 능력과 교육 기능을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상을 빌려 강조할 필요성을 느껴 이 책의 공동집필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수께끼적인 세계와 알레고리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독일 바로크 비애극에는 30년 전쟁이 인간에게 강요한 고통이 퇴적되어 있음을 통찰하였다. 30년 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지속된 참혹한 전쟁이었다. 벤야민은 독일 바로크 비애극과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한 고통’이 서로 등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인식했다. 그리고 독일 바로크 비애극의 본질을 관통하는 표현 형식이 알레고리임을 통찰하였다. 문병호 공동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알레고리는 세계의 고통사, 곧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한 고통의 역사를 예술작품에 그림과 같은 언어로서, 다시 말해 형상 언어로서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