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성을 바꿔가며 사는 망둥이, 음경을 가진 암컷 하이에나, 동성 짝짓기를 통해 생존을 보장받는 암컷 보노보…
성선택 이론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동물의 동성애·트랜스젠더 표현
일반적으로 진화는 생산성 높은 개체들이 생존하는 경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생식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는 진화를 방해하는 해로운 돌연변이들인 걸까?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을까?
저자는 자연을 우월한 개체와 뒤쳐지는 개체들의 위계 속 피 튀기는 경쟁과 다툼의 현장으로 묘사한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 특히 모든 개체의 목표를 번식으로 해석하며 동물의 사회적 삶을 ‘신중하고 수줍은 암컷’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강하고 열정적인 수컷’들의 전쟁으로 묘사한 성선택 이론의 오류를 지적하며 논의를 연다. 그에 따르면 자연은 우리의 인식보다 훨씬 평화롭고 사회성이 발달되어 있으며 모든 개체가 번식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유성생식 종은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관점에서 ‘경쟁’과 ‘위계’로 개체를 줄 세우는 자연선택·성선택 이론은 그 자체로 모순을 드러낸다.
1부 ‘동물의 무지개’에서는 어류와 조류, 파충류와 양서류, 포유류를 망라한 동물의 사례를 풍부히 소개하며 인간의 렌즈 밖에서 성과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이 얼마나 흔하고 일상적인지를 밝힌다. 평생 성을 바꿔가며 사는 망둥이, 일곱 가지 젠더를 가진 돼지, 새끼를 낳는 수컷 불곰, 음경을 가진 암컷 하이에나, 동성 짝짓기를 통해서 생존을 보장받는 암컷 보노보, 최상의 유전자를 지닌 수컷보다는 집안일에 협조적인 수컷을 선호하는 흰목참새, 옆줄무늬도마뱀, 모래망둥이, 공작놀래기… 암컷들, 이웃 둥지에 알을 낳는 삼색제비 암컷과 이를 용인하는 이웃 삼색제비 수컷, 동성 파트너와 백년해로하는 회색기러기 등의 넘쳐나는 사례는 성별 이분법적?이성애 중심주의적인 성선택 이론의 틀로는 진화를 설명할 수 없음을, 동성애와 젠더 트랜지션을 배제한 “자연의 질서”는 상상하기 어려움을 깨닫게 한다.
한 쌍의 암수 관계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시선에서는 이웃 둥지에 알을 낳는 행위, 으뜸 수컷과 버금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과 함께 사는 모습, 마초성이 없는 수컷, 산란기에 특정 수컷 개체들이 암컷과 유사한 외모를 띠는 모습 등이 “절도”, “기생”, “사기”, “흉내”와 같은 단어들로 묘사된다. 경쟁과 위계의 언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모습을 협력과 협상의 언어로 해석할 때 더 분명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들이 실제로 얻는 번식상의 이익 또한 관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식민지 전쟁이 미화되고 정숙한 아내에게 소극적인 성 역할이 부여되던 시기에 탄생한 이론(다윈의 성선택 이론)의 틀로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결코 정확히 포착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저자는 과학자들이 동물들의 정직함과 협력, 정교한 상호관계에 주목한 전문적인 연구를 책임감 있게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이 남성이고 무엇이 여성일까?
젠더 트랜지션은 정말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일까?
단일 존재이기보다 조율 과정인 우리 몸의 성?젠더 결정 요소들
2부 ‘인간의 무지개’에서는 왜 어떤 이는 동성애자나 이성애자가, 또 어떤 이는 트랜스젠더나 시스젠더(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가 되는 것인지, 오랜 믿음처럼 동성애 유전자 같은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인간의 유전자와 호르몬, 뇌를 각각 살피며 알아본다. 성과 젠더를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나 호르몬 등의 단일 요소가 아니라 몸 내?외부의 협상의 과정이자 결과라는 것,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의 차이는 임의의 두 사람이 보이는 차이보다 더 유의미하게 다뤄져야 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2부에서 줄곧 이야기되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테스토스테론은 존재만으로 홀로 작동하지 않으며 수용체가 있어야 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트랜스젠더 남성이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주입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과 화학적 균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도 호르몬 수용체에서 비롯된 차이일 수 있음을 보이는 부분에서 우리는 성별이란 특정한 유전자나 성호르몬의 존재 여부로 명확히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라 몸속 여러 요소들의 요구와 능력, 협상에 따라 조율되는 것임을, 이러한 세계에서 ‘정상적인 사람’이란 저자의 표현대로 “눈꽃 송이처럼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어 저자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환자로 간주하고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표현을 병리화하는 관행이 얼마나 비과학적인 것인지를 함께 논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의학이 ‘정상’에 대한 엄밀한 과학적 정의를 마련하는 대신 사회적 가치가 과학을 위장해 의학에 반영되도록 내버려둔다면 한때 “단지 여자인 것이 질병 상황에 해당되었”듯(452p) 존재 자체를 질병으로 다루는 심각한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평화의 상징인 ‘두 개의 영혼’, 성 소수자를 탄압하지 않는 성경…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양성의 손익을 모두 기록해온 인간의 진화사
3부 ‘문화의 무지개’에서 이 책은 생물학을 넘어 인류학, 사회학, 신학 문헌들을 통해 인류사 안에서 젠더?섹슈얼리티 다양성을 탐구한다. 성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을 ‘두 개의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고 부족사회 차원에서 존중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례, 동성 섹슈얼리티를 자연스럽고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인 고대 그리스의 사례 등을 통해 우리는 인간 진화사의 특정한 부분에서 성 소수자들이 진화상의 이익을 경험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이외에도 트랜스젠더에 관한 서구적 개념이 도입되자 문화적 갈등을 겪게 된 폴리네시아의 ‘마후’, 100만 명이 넘는 인도의 대규모 트랜스젠더 계층인 히즈라, 로마제국의 ‘히즈라’였던 키벨레 여사제들, 멕시코시티의 베스티다(트랜스젠더)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구에베도체(간성), 트랜스젠더 남성인 잔 다르크, 이성의 복장을 하기 좋아했던 중세의 성인들, ‘고자’로 분류되던 고대의 트랜스젠더들,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성적 다양성을 박해하는 것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던 성경과 이를 둘러싼 오해에 관해서도 상세히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트랜스젠더,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간성인 사회의 연대 가능성을 살피며 생물학자이자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이들에게 도움이 될 저자의 실질적인 정책 권고를 끝으로 내용이 마무리된다.
3부에서 저자는 인류사 속 여러 문화와 시대에 걸쳐 변이의 정도는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사람들을 사회적 범주로 묶어온 방법들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섹슈얼리티·젠더를 둘러싸고 우리의 몸뿐 아니라(1, 2부), 제도와 규범 역시 늘 생동하며 협상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제도와 범주를 바꾸면 우리 종의 본질은 우리 사회 내부에서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자연선택의 새로운 힘에 반응해 서서히 바뀐다”(p.587)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몸의 생화학적 판단과 상호작용하며 우리의 시선과 마음 또한 진화의 역사에 기록되고 있는 셈이다.
트랜스젠더 진화생물학자가 다시 쓴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진화론
“우리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존재이며 우리의 실체는 과학, 종교 그리고 관습에 의해 부정된다. 이론적으로 우리는 문젯거리다. 하지만 우리는 존재한다.”(582p)
1997년 6월 샌프란시스코, 대규모 퀴어 퍼레이드 행렬을 보며 저자는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더러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과학 이론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아마 그 이론이 틀렸으리라.”(20p) 이 책은 50대에 접어들어 비로소 용기를 내어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정체화한 진화생물학자가 자신의 존재를 지울 리 없는 과학의 언어를 정교하게 탐구한 흔적이다.
“조앤 러프가든은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 의해 지워진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