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쇠한 작가를 놀라게 할 관전포인트가 과연 코카서스에 있을까?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박민우가 찐 여행기로 돌아왔다. <가지 마, 제발! 코카서스>
전설의 여행기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박민우가 전하는 지독한 여행기, <가지 마, 제발! 코카서스>. 읽는 재미에 목말라하는 독서광들은 열광할 준비를 할 것. 박민우 작가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지질하고, 그걸 또 다 표현한다.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지만,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속물근성이 글로 움직이는 독특한 책. 청춘은 이미 옛일, 몸도 예전만 못하다 보니 여기저기가 삐걱삐걱. 불평의 강도는 높아지고, 재미는 배가 됐다. 책 한 권에 배꼽 잡고, 감동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반평생 여행과 글로 산 박민우가 '재미'로 기강 좀 잡겠다며 작심하고 나섰더니, 이런 책이 나왔다. 독자는 재미난 책을 읽을 권리가 있고, 행복해질 권리 역시 있다.
코카서스가 도대체 어디야? 아시아의 끝, 유럽의 시작
코카서스는 동유럽과 서아시아의 경계,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다.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날아간다 치면, 튀르키예 바로 전이 코카서스다. 백인을 한때 코카서스 인종이라고 불렀다. 18세기말 독일 해부학자이자 인류학자 블루멘바흐가 명명한 이름이다. 코카서스엔 세 나라가 있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에서 기똥차게 잘 빠진 두개골을 발견하고, 백인의 조상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블루멘바흐는 코카서스 인종이라 부르며, 백인의 뿌리는 코카서스라고 주장했다. 생물학적으로나, 유전자적으로 지지받지 못하는 분류 방식이지만, 조상이 코카서스에서 시작됐기를 바라는 유럽인들의 바람은 읽을 수 있겠다. 우리에겐 여전히 낯선 코카서스지만, 유럽의 구세대에겐 뿌리이자, 고향이다.
도발적 제목, <가지 마, 제발! 코카서스>. 가라는 거야? 가지 말라는 거야?
<가지 마, 제발! 코카서스>, 이 제목은 도발인가? 낚시인가? 여행도 삶이다. 일상과 다르지 않다. '희로애락'이 뒤섞일 수밖에 없다. 좋은 건, 좋은 거고, 싫은 건, 싫은 거다. 오랫동안 글을 쓰면서, 배짱도 제법 두둑해졌다. 할 말은 하겠다는 것. 불평도 콘텐츠다. 수다쟁이 박민우를 말릴 수 있는 건 적어도 지구상엔 없다. 코카서스를 진짜 가지 말라는 건가? 그건 확인해 줄 수 없다. 책을 읽고 나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제목 장사도 하려면 제대로 하라. 박민우의 생각이다. 평생 개구쟁이 박민우를 일단은 믿어 보자. 마지막장까지 읽고, 속았다 싶은 독자는 출판사에 문의하면 백 프로 환불 가능.
<코카서스>가 숨은 보석? 대놓고 보석.
코카서스 3국은 한때 소련이었고, 전쟁이 끊이지 않던 지역이다. 강대국들이 특히 코카서스 지역을 탐을 냈는데, 이유가 뭘까? 가진 게 많아도 너무나 많아서다. 서쪽으론 유럽, 동쪽으론 아시아, 위로는 러시아, 아래로는 중동, 이보다 대단한 요충지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게다가 카스피해에선 석유가 펑펑 솟구친다.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 제국이 코카서스를 뺏으려고 전쟁을 불사한 이유를 이제는 좀 알겠는가? 위치만 대단한 게 아니다. '저렴한 스위스'라 불릴 만큼, 산세가 뛰어나다. 세계 최초로 와인을 만들어 마셨던 나라이며, 구소련 최고로 맛있는 지역이었다. 이런 나라들이 세계 10대 관광대국이 아닌 이유가 박민우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2019년 5월부터 8월, 88일의 뜨거운 기록
박민우는 매일 일기를 써서 판매하는, 구독서비스라는 걸 한다. 당시 코카서스 여행기는 7년 연재 중 단연 화제였다. 처절한 고생담이 매일매일 펼쳐졌다. 이 책을 구입하면, 고생담의 엑기스, 최고의 하이라이트만 온전히 읽게 됨을 의미한다.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를 관통하는 솔직함, 지질함은 극대화되었고, 매일의 일기로 단련된 문장은 단단하고, 담백해졌다. 웬만한 곳은 이제 다 가 본 여행 고수들에게 코카서스는 반가운 여행지가 될 것이다. 아름답고, 독특하며, 미지의 땅인 코카서스를 박민우의 지독한 입담으로 만나보자. 웃긴데, 찡하고, 윤슬처럼 영롱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몽땅 담았으니까.
출판사 서평
미루기 백 단 박민우! 책으로 나오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당시 일기를 그냥 낼 수도 있었으나, 게으른데, 욕심은 많은 박민우가 한사코 다시 쓰겠다고 우겼다. 출판사 측에선 목 빼고 기다리는 수밖에... 줄이고, 더 줄이자. 저자 박민우 목표는 단 하나, 군더더기 없는 묵직한 책이다(진짜 무게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7년간 매일 쓰면서 단련된 문장은 넘치게 훌륭하지만, 박민우는 그 문장을 줄이고, 또 줄였다. 여행기의 에스프레소, 여행기의 고로쇠 수액이 <가지 마, 제발! 코커서스>다. 코카서스의 아름다운 사진들, 그 사진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디자이너의 역대급 감각으로 길이 남을 명품 여행기가 나왔다. 박민우의 꿈은 평생 '신인 작가'다. 스스로를 퇴물이라 몰아세운 이유는,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출사표였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그의 자조 섞인 투덜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응원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내용은 부실해도 예쁜 책이 최고. 박민우는 그런 시대를 거부한다. 재미난 책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몸소 보여준다. 박민우의 책은, 글로 보여주는 차력쇼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빼앗긴 독자를 데려 오겠다는 박민우의 큰소리를 믿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