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그저 시간이라는 직물 속에
반짝이는 작은 빛일지도 모른다는 것.”
사랑과 죽음, 우주에 관한 우리의 모든 믿음을
뒤엎어버릴 기발하고도 놀라운 열 편의 사고실험
밀란 쿤데라, 베르나르 베르베르,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닮은 초현실적 상상력과 폭발하는 에너지로 고유한 철학적 SF의 세계를 선보이는 소피 워드의 첫 장편소설 『사랑 그리고 다른 사고실험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왕립 아카데미 핀드롭 어워드에서 수상한 단편 「선베드」가 수록된 이번 작품은 부커상, 데스먼드 엘리엇 상, 폴라리상 후보에 올랐다. 죄수의 딜레마, 중국어 방, 테세우스의 배, 메리의 방, 통 속의 뇌, 파스칼의 내기 등 익숙한 철학적 사고실험을 테마로 하는 열 편의 연작소설은 가족 간의 사랑에서부터 평행우주의 존재까지 다채로운 주제를 다룬다.
작품 속에는 다양한 화자가 등장한다. 눈에 개미가 들어갔다고 믿는 여성부터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현기증을 느끼는 중년 여성, 자신의 동성 연인이 레즈비언 부부와 키우는 아이를 잠시 돌보게 된 남성 과학자, 죽은 엄마가 우주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우주 비행사, 심지어는 개미까지. 각양각색의 캐릭터에게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가 소피 워드의 능력은, 어쩌면 영화 〈피라미드의 공포〉, 드라마 〈제인 에어〉 등에서 연기자로 활약했던 그의 이력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것일지도 모른다.
철학적 사고실험 중 하나인 ‘박쥐 되기’ 이론에 따르면 박쥐가 되는 경험은 인간인 우리의 경험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에 쉽게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이론을 제시한 토머스 네이글은 끝내 “나는 박쥐에게 박쥐 되기란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라고 쓴다. 박쥐에게 ‘박쥐 되기’라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완벽히 이해하는 일. 이것은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가지게 되는 근원적인 욕망과도 닮았다. 완전히 다른 출신의, 상황의, 세계의 타자가 되어보는 일. 익숙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활성화되지 않았던 뇌의 한 부분을 톡톡 건드리는, 내게 없던 세상의 틈을 파고드는 일. 어쩌면 ‘박쥐 되기’란, 소설을 읽는 행위란, 이미 그 자체로 ‘사고실험’이 아닐까? 소피 워드는 이 정교한 작품으로서 물음에 대한 가장 명쾌하고 아름다운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삶과 죽음, 그리고 다시 삶
그 우연과 운명의 굴레 속에서
합리성을 중시하는 과학자 일라이자에게 레이철은 때론 철없고 비현실적이지만 사랑스러운 연인이다. 두 사람은 아이를 낳는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다투기도 하지만 대체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개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레이철은 집에 나타난 개미 때문에 심한 공포를 느끼고, 어느 날 밤 급기야 개미가 자신의 눈에 들어갔다고 확신하게 된다. 일라이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지만 레이철이 그런 태도에 상처받자 믿는다고 거짓말을 한다. 개미 사건 이후 더욱 굳건해진 두 사람은 게이 친구인 할의 정자를 받아 아기를 낳고, 아들 아서가 태어난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레이철은 아서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병한 뇌종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남겨진 일라이자와 할, 그리고 할의 연인인 그레그는 레이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아서를 함께 키운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에 엄마와 이별한 아서는 사라진 레이철을 계속해서 그리워한다. 기계진동학 기술자인 그레그가 학교에 아서를 데리러 온 날,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아서는 조건만 맞는다면 인간이 우주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곳을 떠난 엄마 레이철도, 우주 어딘가에는 살고 있지 않을까? 모든 게 딱 맞는 어떤 곳이라면 말이다. 그런 믿음을 품게 된 아서는 레이철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념으로 우주 비행사를 꿈꾸게 된다.
하나 이상의 세계를 향하여
우주를 뛰어넘는 사랑의 힘
슬프지만 아름다운 가족 서사는 시공간을 확장하며 이야기의 줄기를 뻗어나간다. 협력과 배신 중 단기적으로는 배신이 유리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협력이 유리함을 이야기하는 사고실험 ‘죄수의 딜레마’에서 영감을 얻은 「게임 체인저」는 아서의 할아버지가 소년이던 시절을 다룬다. 물에 빠진 친구의 공을 구하러 뛰어들어간 소년에게는 세 개의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 친구와 협력해 살아남는다. 둘, 친구에게 배신당했지만 끝끝내 살아남는다. 그리고 셋, 홀로 죽는다. 이 다른 세 가지 결말은 이어지는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편 「아마이징」과 「제우스」의 화자는 개미다. 이야기의 시작점에서 레이철의 눈 안으로 들어간 바로 그 개미. 눈에 개미가 들어갔다는 레이철의 주장이 사실이었다는 점에 놀랄 새도 없이, 이야기는 곧장 인간의 뇌에 들어간 개미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개미는 레이철의 뇌 속에 자라나는 종양과 지식을 먹이삼아 몸집을 키워나간다. 인간의 정보를 꼼꼼히 흡수한 개미는 점차 고도로 발달한 인공 지능의 모습을 닮아간다.
소설 『사랑 그리고 다른 사고실험들』은 철학과 문학을 결합해 지적 자극을 주는 SF소설이다. 정교히 구성된 이야기를 따라가며 작가가 곳곳에 숨겨둔 퍼즐 조각을 발견하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화려하고 예측이 불가하며 형이상학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특별한 소설이지만, 작품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 독자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키워드는 단 하나다. 그것은 제목이 알려주고 있듯, 바로 ‘사랑’이라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사고실험이다. 믿기 어려운 것을 믿게 하고, 기꺼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하고, 때론 지구 밖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며 심지어는 하나의 우주를 뛰어넘을 수도 있게 만드는 힘. 그런 사랑의 힘을 알고 있다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사랑과 다른 사고실험들의 놀라운 결과를 바로 이 책에서 확인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