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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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카메라를 놓지 않는 거장 아카데미 감독상(<애니 홀>).각본상(<한나와 그 자매들>) 수상과 주연상 후보(<애니 홀>)로 아카데미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며,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유럽 예술영화의 실험적인 스타일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뉴요커의 페이소스를 그려낸 거장, 우디 앨런의 인터뷰집이 번역되었다. 유명세를 꺼려 변장을 하고 다니며, 지독히도 낯을 가리는 우디 앨런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무엇보다 솔직담백하면서도 자기주장이 정확히 담겨져 있는 우디 앨런의 쿨한 답변이 근사하다. 이 인터뷰집은 1969년 <돈을 갖고 튀어라>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감독이자 작가, 배우로서 놀라운 활동력을 보여주는 우디 앨런의 지난 40여 년간의 삶을 조명한다. 물론 <그림자와 안개> <부부들> 등 가장 대담하고 독창적이었던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1987년과 1992년 사이 우디는 인터뷰를 회피했고, 특히 순이 프레빈과의 스캔들 이후에는 언론과 더욱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1993년 재개된 스티그 비에르크만과의 인터뷰를 비롯한 갖가지 인터뷰들은 다양한 국적과 각기 다른 관심사를 가진 유력 매체의 인터뷰어들을 통해 ‘시간’과 ‘국경’을 넘나들며, 1년에 한 편씩 새로운 영화를 선보여온 우디 앨런의 세계를 속속들이 보여준다. 십대 시절, 이미 코미디 배우와 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우디 앨런이, 우연히 감독이 되고 영화라는 매체를 배워가는 과정이 담긴 한 편의 메이킹 필름인 것이다. 우디 앨런의 팬이 아니더라도 곳곳에 드러난 뉴요커의 일상 또한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재즈 선율과 맨해튼의 풍경이 근사하게 펼쳐지지만, 어디를 가나 외롭고 인간관계는 고뇌로 가득할 뿐인 뉴요커. 우디 앨런은 이 거대한 도시에서 비애를 그림자처럼 데리고 다니는 뉴요커들을 첫사랑과도 같은 강렬함으로 필름에 그려 넣었고, 인터뷰로 각주를 단다. 이 진지한 낙오자는 농담을 한다―희극으로 비극을 다루는 작가 지난 수십 년간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를 통틀어 가장 광범위한 작품들을 선보인 우디 앨런. 그의 영화 인생에 대해 이 책의 엮은이 로버트 E. 카프시스와 캐시 코블렌츠는 이렇게 정리한다. “그는 처음에는 단지 웃기는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 <돈을 갖고 튀어라> <바나나>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하지만 물어보기는 두려워했던)> <슬리퍼> ― 그의 작품은 보다 진지한 쪽으로 빠르게 방향을 바꿔 <사랑과 죽음> <애니 홀> <인티리어스>와 같은 영화들을 선보였다. <애니 홀> <맨해튼> 그리고 <한나와 그 자매들>과 같은 보다 무거운 톤을 지닌 코미디들 가운데 몇몇은 초기의 익살스러운 작품들보다 상업적으로 더욱 큰 성공을 거두었고, 비평적으로도 나은 평가를 받았다.” (10쪽) 하지만 우리가 우디 앨런을 작가감독의 반열에 올려두는 것은, 비평가들의 호평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영화가 그리는 주제들―그러니까 끊임없는 불안과 혼돈 속에서도 놓지 않는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이 허무에 맞설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우리의 불안과 공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는 죽는 걸 두려워해요. ……그는 삶에 대한 보다 진지한 질문들의 대답을 구하기 위한 탐구에 나서죠. 유쾌하게 허둥대면서 백방으로 노력을 하지만 끝내 그 대답을 얻는 데 성공하진 못해요. 한번은 권총 자살 시도까지 하죠, 그러다가 결국 이런 생각에 이르러요. ‘자살을 하는 건 의미가 없어. 이런 것들은 평생을 가도 알아낼 수 없을 거야. 그저 어쩌면이라는 그 가느다란 갈대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거야, 어쩌면 삶엔 뭔가 숨은 뜻이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182쪽) 역설적이게도 이런 심각한 순간에조차 우디는 “고뇌가 에어로빅이라 1그램도 안 찌는군”(<스쿠프>에서 마술사 시드니의 대사) 같은 농담을 날린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 농담들은 아마도 밀물처럼 닥쳐든 삶의 무의미함에 맞서는 우디 앨런식 해결책일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더없이 우울하고 심각한 감독 잉마르 베리만과, 미국에서 채플린보다 더 존경받는 코미디언 그라우초 막스를 언급한 것 역시 그가 희극으로 비극을 다루는 작가임을 반증한다. 끊임없이 변화한다―영화 작업의 전권을 틀어쥔 완벽주의자 솔직히 말해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흥행 실적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박’을 터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디 앨런은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동시에 거의 신비에 가까운 전권을 행사한다. “저는 모든 걸 통제해요, 정말 모든 것들을요. ……저는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뭐든 다 만들 수 있어요. 어떤 주제라도 상관 없죠. 코미디건, 진지한 영화건. 그리고 제가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어요. 예산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재촬영도 원하는 만큼 할 수 있고요. 저는 광고도 예고편도 음악도 통제하죠.” (271쪽) 그는 어떻게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었을까. 제작사들은 이 자유가 ‘혼자 쓰고, 감독하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또 그와 작업하고 싶어하는 굉장한 배우들을 ‘적당한 비용으로 캐스팅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대한 대가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왔다. 특히 시나리오의 내용과 맞춤한 다양한 연출 기법은 시네필들의 무한한 관심을 받았다. <부부들>에서 거친 날것의 느낌을 그대로 전하는 ‘핸드헬드’나 ‘점프 컷’의 대담한 사용은 캐릭터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보조를 맞추고, 코미디의 경우 신을 잘라가면서 스피드를 만들며, 좀더 진지한 영화는 ‘달리 숏dolly shot’으로 느린 진행을 돕는다. “작품을 해나가면서 계속 성장을 하고 싶어요. 코믹하면서도 보다 진지한 영화들, 다양한 타입의 영화들을 만들고 싶어요. 정통 드라마를 쓰고, 연출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죠. 모험을 피하지 않으면서요. 관객이 좀 줄어드는 건 감수하면서 말이죠. ……제가 하고 싶은 건 제게 안전하지 않은, 저의 주 종목이 아닌 영역으로 가보는 거예요.”(16쪽) 영화는 오늘도 계속된다―가장 지적이고도 유머러스한 뉴요커 우디 앨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는 으레 과도한 걱정에 시달리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뉴요커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가 가장 영화에 담고 싶어했던 것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었으며, 이런 고민은 영화에 대한 장악력이 커질수록 깊어갔다. 단순히 대중적인 취향에 맞추기 위한 타협을 거절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코믹한 세계와 진지한 세계 사이를 오갔던 우디 앨런. 채플린 이후 최고의 코미디 작가로 추앙받는 그의 뒤에는 영화 속 캐릭터와 달리 냉철하고 창조에 대한 열정이 끊이지 않는 한 영화 작가가 숨어 있다. 덧없는 사랑이나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행복을 읊조리다가도 광대 같은 표정을 짓는 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우리는 영화가 삶이 되어버린 거장의 내면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