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땅개구리
바늘
하얀 달리아
재봉틀
검은 얼룩
상자
주머니칼
눈물방울
죽은 짐승들의 정원
석회 속의 돌멩이
사과나무
나무 팔
노래
젖
황금지빠귀
벽시계
제비고깔
커프스단추
큰 꽃병
무덤들 사이에서
수탉
시반
술에 날아가버린 편지들
파리
왕께서 주무십니다
커다란 집
십 레이
총성
물은 쉬지 않는다
눈먼 닭
빨간 자동차
비밀말
예배당
흰나비
장엄미사
불타는 공
키스 자국
거미
양상추 잎
풀수프
갈매기
어린올빼미
여름부엌
의장대
집시들은 행운을 가져다준다
양 우리
은빛 십자가
파마
옮긴이의 말|시학과 현실의 절묘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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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목차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그 시절, 마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촘촘하고 수수께끼 같은 문장으로 새겨나간 문학적 증언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헤르타 뮐러가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하기 일 년 전인 1986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당시 독재정권의 공포에 시달리며 서구세계로의 이주를 기다리던 독일 소수민들의 내면풍경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이 독일 소수민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여가던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독재정권의 횡포에 시달리던 소수민들은 서구세계로 이주하길 원했으며, 독일 정부도 이주민 한 명당 많게는 팔천 마르크까지 루마니아 정부에 지불하며 이들의 이주를 도왔다. 하지만 루마니아 정부는 돈을 받고도 출국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독일 소수민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허가증을 사야만 했다.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상식, 도덕과 정의 대신 탐욕과 뇌물, 술수와 불법이 판을 치고 갖은 뒷거래가 횡행하는 곳, 바로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에서 헤르타 뮐러가 촘촘하고 수수께끼 같은 문장으로 그려 보이는 세계이다.
★★★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까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었던 헤르타 뮐러. 데뷔작 『저지대』, 오스카 파스티오르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탄생한 최신작 『숨그네』를 시작으로, 차례로 번역 소개된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마음짐승』을 통해 뮐러의 삶과 문학세계를 엿보았던 우리는 이제 직접,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달 중순, 헤르타 뮐러는 국제비교문학학회의 초청으로 ‘2010세계비교문학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문학대회의 강연 외에도, 문학동네와 교보문고, 대산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낭독공감’(8월 19일)과 사인회 등의 행사를 통해 한국 독자와 만날 예정이다.
경계 이편에 발이 묶인 사람들의 절망적인 운명
세기의 주제, 이주移住를 다룬 발라드
“독재치하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적나라하다.
봐서는 안 될 것, 혹은 다른 사회라면
또렷이 보이지 않을 것까지 보게 된다.”
―〈악첸테Akzente〉 인터뷰에서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 소수민들의 마을. 가난과 희망 없음, 독재정권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는 마을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국허가증을 손에 넣어 그곳을 떠나간다. 마을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빈디시 역시 벌써 오래전부터 이장에게 밀가루를 뇌물로 바치며 여권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죽은 사람 같은” 밀가루 포대를 싣고 몇 번이고 이장의 집을 찾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또다른 요구와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게다가 그를 더욱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은, 여권을 얻기 위해서는 소중한 딸 아말리에의 몸을 경찰과 신부에게 내어줘야 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다. 끝없는 기다림 속에, 그는 점차 지쳐가고 절망한다.
빈디시의 시선을 따라 묘사되는 마을 풍경은, 그야말로 헐벗음과 피폐함 그 자체이다. 살림살이를 몽땅 내다팔고 그 흔적만 희고 검은 얼룩으로 남은 집 안,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벽과 삭막한 바닥. 자전거를 타고 매일 방앗간으로 가는 빈디시는 “루마니아를 영영 떠나기로 작정한 후부터” “마을 어디서나 끝을”, 종말을 보며, 사방이 막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 주저앉으려는 사람들에게서도, 야간경비원의 뺨에서도 “멈춰선 시간”을 본다.
시간은 죽음, 이별과 함께 소설을 가로지르는 중요한 모티프이다. 이주를 희망하며 하염없이 허가를 기다리는 망명 대기자들에게, 지금 이편의 시간과 삶은 멈춰 있다. 삶을 경계 저 너머에 둔 채 이편에 발이 묶인 사람들, 헐벗고 뻣뻣한 심장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운명을 헤르타 뮐러는 특유의 압축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한편 독재의 공포,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에 따른 불안과 함께 마을을 짓누르는 것은 날선 적대감이다. 다 같은 소수민족이면서도 출국 허가라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친구도 적이 될 수 있으며, 누가 먼저 여권을 손에 넣었는지 서로가 서로를 시기 어린 눈초리로 지켜본다. 데뷔작 『저지대』에서도 볼 수 있었던 헤르타 뮐러의 슈바벤 독일인에 대한 비판 역시 이어진다. 경계 이쪽의 루마니아인을 “막돼먹은 왈라키아인”으로 가차 없이 폄하하는 동시에, 경계 저쪽의 독일인에 대해서도 은근한 우월감을 과시하는(“어쨌든 슈바벤에서 제일 모자라는 여자도 거기 독일의 제일 괜찮은 여자들보다 더 쓸모 있다니까.”) 편협한 슈바벤 독일인들에 대한 뮐러의 비판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밤과 죽음이 내려앉은 그 마을에서,
공포는 테이블 위에도, 갈비뼈 사이에도 있었다
〈악첸테〉와의 인터뷰에서 헤르타 뮐러는 독재의 세계에 대해, 사람들을 상하게 하고 심리적으로 망가뜨리며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에서 뮐러가 묘사하는 사람들의 내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주 허가가 날 날짜만 헤아리는 빈디시는 갈비뼈 사이에 묵직한 돌덩이 같은 공포를 매단 채 살아간다. 목수의 어머니는 무더운 여름날 커다란 칼을 들고 텃밭으로 나가 하얀 달리아를 모조리 베어 땅속에 묻고, 애벌레라 불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던 루디의 증조할머니는 넋이 나간 채 마을 술집들을 전전하며 죽은 남편을 찾아 헤맨다.
두려움과 그로 인한 광기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소설 속에서 올빼미로 상징되는 죽음의 이미지는 마을 곳곳에, 마을 사람들의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물이 쉬지 않듯이, 올빼미들은 쉬지 않고 마을로 찾아든다. 전쟁 때나 다름없이 죽음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알 길 없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통을 수리해주는 떠돌이 통장이도, 겨우내 보리수꽃 차를 마시며 슬픈 노래를 부르던 크로너 할멈도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밤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세계에서, 삶은 처절한 고통이며 살아남기 위한 끈질긴 투쟁이 된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빈디시의 딸 아말리에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도시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그녀는 독일 소수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동지와 엘레나 차우셰스쿠 동지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녀의 가혹한 운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과 가족의 이주를 위해 경찰과 신부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줘야 하는 데까지 이른다.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행태를 수식이나 설명 없이 자명한 일인 듯 간결하게 묘사하는 뮐러 특유의 시적이고 서늘한 문장으로 인해, 아말리에가 경찰과 신부를 만나러 가기 위해 몸단장을 하는 장면, 신부와 경찰이 아말리에를 유린하는 장면을 읽는 독자들의 충격은 한층 커진다.
아말리에는 거울 앞에 서 있다. 슬립이 장밋빛이다. 아말리에의 배꼽 아래서 하얀 레이스가 자란다. (……) 아말리에는 뿌연 뭉게구름 두 뭉치를 겨드랑이에 뿌린다. 구름은 팔 아래서 슬립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스프레이통은 검은색이다. 번쩍거리는 초록색으로 아일랜드의 봄이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다.
경찰은 윗도리 단추를 푼다. “옷 벗어.” 그가 말한다. 파란 윗도리 아래 은빛 십자가가 매달려 있다. 신부는 검은 수도복을 벗는다. 뺨을 덮은 아말리에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긴다. “립스틱을 지워라.” 신부가 말한다. 경찰은 아말리에의 어깨에 입을 맞춘다. 은빛 삽자가가 경찰의 입 앞에서 대롱거린다. (……)
아말리에는 뱃속에서 하얀 샌들의 뒷굽을 느낀다. 이마의 불기둥이 눈에서 타오른다. 은빛 십자가가 창유리에서 반짝인다. 사과나무에 그림자가 걸려 있다. 그림자는 검고 움푹 패어 있다. 그림자는 무덤이다.
‘생존’의 엄숙한 사명 앞에서, 나머지 모든 것은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빈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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