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바쁜 일상에서 빛나는 시편들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을 감각적으로 구사하며 생의 의미를 탐구해온 정복여 시인이 첫시집 『먼지는 무슨 힘으로 뭉쳐지나』(2000) 이후 10년 만에 두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첫시집에서 우리 일상의 근원적인 쓸쓸함과 처연함을 노래했던 시인은 그 특유의 담담한 문법을 더욱 깊어진 시선으로 붙잡아 이번 시집에 담았다.
『체크무늬 남자』에서 단연 두드러진 특징은 시의 배경이 되는 ‘방’의 존재이다. 첫번째 시집에서 연못, 산, 바위와 같은 자연이 종종 시적 대상으로 등장한 것과 달리, 시인의 시선은 인간이 기거하는 공간인 ‘방’으로 집중된다. 여기서 ‘방’은 옷장과 의자, 탁자가 놓여 있는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행위와 이동을 철저히 제한하는 ‘닫힌 공간’의 의미를 띤다. “방의 비밀번호는 더 작은 방” (「단벌」)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방’은 겹겹이 화자를 둘러싸고 있으며 화자는 그 한구석에서 발화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방’에 갇혀 있는 화자의 태도다. ‘방’을 장애물로 인식하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거나, 반대로 ‘방’에 완전히 제압되어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담담하게 ‘방 안’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시집에서 ‘방’은 외부와 소통이 단절되어버린 고립된 공간이지만, 그것은 절망과 허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경쾌한 듯 무심한, 발랄한 듯 쓸쓸한, 가벼운 듯 진지한 화법을 구사하며 ‘방’의 공간성을 시인 특유의 맥락으로 끌어당긴다. 시인은 분명 쓸쓸하거나 외롭거나 또는 허무한 감정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가벼움’의 외양을 띤다. 이것이 시인이 첫시집에서부터 꾸준히 구사해온 화법이다.
조그만 조약돌 딛고서 조그만 강을 건너니 / 여기서부터는 이상한 진흙 바다 / 그래도 가끔 조개가 있어 진주가 큰다고 속삭이지 / 가다가 만나는 악어뱀, 그것도 귀여운 농담이라나 / 이 때야 의심이 타조처럼 성큼 오지만 / 까마득 발이 빠진 곳은 / 천년 전 누군가 덫으로 놓은 안방 정글(「체크무늬 남자」 부분)
시인은 이따금 “야금야금 바깥을 간 보”(「단벌」)기도 하지만, 결국 시인의 시선이 다다르는 곳은 방 안이다. “어쩌면 이리도 방이 좋은”(「외출」) 시인이기에 그곳의 사물들이 생생하게 활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방 바깥과의 소통은 철저하게 단절되었지만, 이로써 시인은 방 안 사물들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기회를 온전히 얻었다. 따라서 시인이 묘사하는 사물들에는 고유한 속도감과 리듬이 있으며,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흥미로운 건축물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파에 앉았던 먼지가 뛰어내리고”, “덩굴무늬 커튼이 힘껏 팔을 뻗으며” “벽지 위 꽃잎이 사방연속으로 달”리면, 일순간 방이 깨지며 “잔뜩 고였던 고요가 휘돌아 현관으로 폭풍”(「누구세요?」)치는 광경이 연출된다.
방 안의 사물뿐 아니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행위들도 시인이 주목하는 풍경이다. 티브이를 켜고, 쌀을 씻고, 창문을 닦고, 서랍을 정리하는 일 등 평범하고 소소한 행위들을 시인 특유의 담담한 화법으로 묘사한다. 「이웃집 남자」「이웃집 여자」「또 이웃집 여자」「조용한 복도」「새로운 이웃」등은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위들을 일상적 언어로 엮으면서 비일상적 감정을 드러내는 시인의 재능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저 칼은 틈만 나면 / 제 생을 갈아 보이네 / 비릿한 등푸름이나 호박 햇살이 / 군데군데 칼날에 말라붙어 / 시절 퍼렇던 밥상을 차리네 / 부엌살이 거뭇한 저 얼룩은 / 하 많은 메뉴들의 핏방울 / 젖은 몸 다져낸 난도질 /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도 / 저 칼은 잘 알고 있지만 / 이젠 소용없이 / 태산 같은 침묵만 다지고 있네 / 식구들은 헐거워진 칼집처럼 / 곁을 떠난 지 오래,(「또 이웃집 여자」부분)
이렇듯 가장 조용한 공간인 ‘방’에서 시작된 시인의 이야기는 움직이지 않는 사물, 또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적 행위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바탕에는 미세하나 뚜렷하게 보이는 중요한 움직임들이 있다. 이러한 일상성을 바탕으로 인간 개인이 성장해왔다는 통찰과 진정한 자아성찰이란 자기가 자라온 ‘방 안’을 고요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시인의 인식이 이 시집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숟가락이나 나무인형” 처럼 “애써 우리가 만든 그러한 것들이” “안간힘을 쓰다 그만 밀려나”(「크나큰 손」부분)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는 그러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진정성있게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는 「독신」에 이르러 심화된다. 제 몸에 스스로 금을 긋는 행위, 스스로 부풀어올라 몸을 열고 고요와 어둠을 흔드는 행위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설을 쓴 평론가 장은정은 이를 두고 “이 시는 방과 벽에 갇혀 있는 자가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간명하게 대답해주”고 있다고 평했다.
버려진 장독은 아무도 열지 않아 / 스스로 제 몸에 금을 긋는다 / 칼날은 아주 오래된 햇살 / 천둥소리, 그리고 어떤 기척들 / 더이상 빛도 소리도 아닌 / 캄캄함이 터지고 / 그 움직임에 한때 독을 드나들며 잘 놀았던 모두가 몰려와 주위를 맴돈다 / (…) / 독은 그렇게 스스로 몸을 열어 / 오래된 어둠을 소리로 바꿔본다(「독신」부분)
시인은 ‘일상’을 낱낱이 분해하고 또다시 그것을 자기의 맥락으로 쌓아올리며, 그것을 다시 무너뜨린 후 또다른 조형물을 만들어간다. 시인의 문법 그 자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한 반복이 ‘머무름’이 아닌 ‘나아감’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안다는 듯이, 시인은 일상의 모습들을 바쁘게 길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