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깊어지고 확장된 천운영의 세번째 소설집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바늘?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치열하고 아름다운 미학적 단편을 꾸준히 발표하며 한국소설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작가 천운영의 세번째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이 출간되었다. 장편 .잘 가라, 서커스.(2005) 이후 3년 만에, 소설집 '명랑'(2004)을 펴낸 지는 4년 만에 내는 작품집으로 총 8편의 단편을 묶었다. 원초적인 육식성과 여성적 생명력, 강렬하고 시적인 이미지, 그리고 면밀한 취재에서 파생되는 생생한 묘사가 압권인 '바늘'(2001)과 현실세계에 설화와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명랑'을 거친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 한결 깊어진 세계인식과 다양한 문체의 변주를 들고 나와 소설영역의 확장을 일구어낸다. 작가는 세계에 혼재된 상처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상처를 대속하는 따스한 ‘눈물’, 그리고 통념을 깨는 사랑과 치유의 ‘눈물’을 통해 독자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성(性)과 시간을 초월한다
첫 작품 (2007 이상문학상 우수작)의 화자는 사진관을 운영하며 젊은 여자나 예비부부의 누드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주는 사진사다. 그와 아내는 서로에게 어떠한 욕망도 느끼지 못할 만큼 부부관계가 위태롭다. 그는 체계적인 몸관리로 젊음을 유지하는 아내의 몸을 비현실적으로 느끼고, 젊은이에 대해서는 증오와 부러움이라는 양가감정을 지닌다. 아내 역시 늙어가는 그에게 권태로움과 싫증을 느낀 지 오래다. 게다가 그는 “카메라를 통해 육체를 바라볼 때만 흥분”하고, “조명을 받으며 카메라에 들어온 몸만이 피가 흐르고 온기가 도는 살아 있는 몸”(12면)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그의 일상에 열여덟살 소년이 끼여든다. 사소한 시비 끝에 소년과 싸움을 벌이다 다친 그는 합의금 대신에 일년간 소년을 조수로 고용해 일을 시키기로 한다. 그에게 소년은 새로운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아내와 소년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그는 소년의 밝고 건강한 젊음에서 동경과 질투와 증오를 동시에 느낀다. 어느날 아내에게서 이혼을 통보받은 뒤 사진관으로 향한 그는 소년이 아내의 누드를 찍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피사체로 앉은 알몸의 노파, 소년의 할머니를 보게 된다.
조명 아래 쑥스럽게 웃고 있는 여자는 아내가 아니다. 상의를 벗고 앉은 여자는 바로 늙고 야윈 노파다. (…) 그는 조명 아래에서 노파의 몸이 살아나는 것을 본다. 그것은 그가 여태 상상하고 단정 지은 추악하고 안쓰러운 늙음이 아니었다. (…) 조명 아래에서 노파의 몸은 부끄러워하고 시샘하고 달아오르는 소녀의 몸이었다.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는 원숙한 자연이자 소녀인 노파의 몸.(39~40면)
화자의 젊음과 늙음에 대한 편협한 사고와 뷰파인더로만 가능했던 욕망이 뒤집히는 장면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뷰파인더 안과 바깥을 넘나드는 동시에 일반적인 상상과 편견을 넘어서는, 즉 현상과 본질을 관통하는 ‘아름다움에 실체’를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녀, 늙음/젊음, 미/추’라는 도식적인 관념을 부수고 난 자리에는 성과 시간을 초월하는 미의 본질만이 남는다. 노파의 몸에서 소녀를 읽는 것이나 소년에게서 동성애적인 연민을 느끼는 것도 이러한 본질과 관련된다. ‘소년 J의 허벅지’로 표상되는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순수한 욕망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이러한 미의 세계에서는 성별도 시간의 흐름도 사라지고 눈부신 풍경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상처와 삶의 고통을 대속하는 눈물 사용법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선 ‘그녀’가 일곱살일 때 태어난 미숙아 남동생은 인큐베이터 사용료가 없어서 장롱에 갇힌 채 단 하루를 살고 죽는다. 3년 뒤 그녀가 홍역을 앓던 어느날, ‘그애’는 우량아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7년 동안 성장하여 일곱살이 된 뒤에는 성장을 멈춘 채로 20년을 그녀의 곁에 머문다. 그애는 “서른일곱살 여자의 몸속에 살고 있는, 단 한번도 울지 않은 영원한 일곱살 소년”(52면)이다. 가족들은 그녀의 오라비가 조울증을 앓는 것도 그애의 원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비는 그애의 시신을 한강에 띄워 보냈노라고 뒤늦게 고백한다. 가족들은 30년 만에 때늦은 천도제를 지내고, 거짓말처럼 오라비는 평온을 되찾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를 지켜주며 살게 했고 울지 않게 한 그애를 떠나보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우는 것은 남자들이고 여자들은 울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고, 바람나서 떠났다 돌아온 남편을 먼저 보낸 할머니도, 우방절제수술을 받은 어머니도 울지 않는다.
눈물은 감정의 늪이다. 유약한 인간들만이 제가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눈물은 굴복의 다른 이름이다. 아픔과 고통에 대한, 조롱과 비난에 대한, 슬픔과 고독에 대한 굴복의 징표다. 나는 눈물 대신 오줌을 싼다. 울고 싶을 때 오줌을 싸다가 문득문득 돌출된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몸을 탓하는 대신 다른 방도를 찾기로 했다. 침을 뱉거나 땀을 흘리는 것으로도 몸의 물기는 배출될 테니까.(57~58면)
이처럼 작가는 통념으로 작용하는 눈물을 거부하고 제의로서의 새로운 눈물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유약함과 보호받기 위한 무기로서의 눈물이 아니라 치유하는 적극적인 ‘눈물의 사용법’을 들려주는 것이다. ‘이중자아’라 할 수 있는 ‘그애’와의 재회나 이별을 묘사하고, 눈물에 대한 기존의 남녀상을 무너뜨리면서 친구 ‘게이년’과 같은 모호한 ‘성 정체성’을 등장시키는 것도 눈물의 영역을 넓혀 새로운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읽힌다. 때문에 ‘눈물 사용법’이 상처의 변주이자, 상처와 삶의 고통을 대속하는 방법, 상처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 눈물의 의미는 삶에 대한 따스함이자 연민, 또는 사랑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눈물의 맛은 그래서 ‘짜고 시고 달’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다. 이것은 자살한 아이의 천도제를 지낸 또다른 ‘여자’에 대한 ‘그녀’의 연민과 애정이 담긴 다음 장면에서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구현된다.
나는 여자에게 내 속에 살았던 소년 얘기를 해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그애가 남기고 간 양말 한짝을 선물로 주었다. 내 위에 누운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여자의 눈물이 내 눈꺼풀을 적셨다. 눈꼬리로 떨어진 눈물이 내 것인지 여자 의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여자의 눈가에 혀끝을 갖다댔다. 눈물은 짜고 시고 달았다. 나는 아직도 눈물이 나올 때면 오줌을 싼다. 오줌을 싸면서 나는 자그마한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싸는 일곱살 소년을 생각한다. 내 안에 여전히 살고 있는 울지 않는 소년.(71면)
발랄한 어법으로 치부를 파헤치다
이번 소설집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 <알리의 줄넘기>의 주인공은 혼혈소녀 ‘김알리’다. 할머니가 ‘제니’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던 시절 흑인군인과 결혼해서 혼혈아를 낳았고, 무하마드 알리에 열광한 그 아이가 자라 낳은 딸의 이름을 알리라 짓고 권투(줄넘기)를 가르쳤다. 알리는 혼혈을 왕따시키는 동급생들에게도 당당하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도 잘 보살핀다. 그녀는 아버지와 씨다른 남매이자 땀냄새에 집착해서 주로 막노동현장의 남자들과 사랑에 빠졌다가 상처받기를 되풀이하는 고모에게도 어른스럽고, 삼년째 소식이 없는 아빠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유머 있는 알리가 될 순 없어도 슬퍼하는 알리가 되어서는 안돼”(14면)라고 다짐하기도 하는 소년 같은 이 소녀는 조숙하고 철이 빨리 든 아이다.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분한 작품이지만 작가는 이 문제를 힘주어 제기하거나 무리하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다만 소녀의 일상을 통해 경쾌하게 소설을 진행시킬 뿐이다. 고모의 입을 통해 말하듯, “대부분의 농촌 총각들이 베트남 여자와 결혼하는 마당에”(93면) 민족주의를 이야기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