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스스로 생명을 얻은 마음이 새로운 종이 되어 번성하는 세계 그 태초와 미래, 역사이자 예언을 완성한 김종연의 첫 시집 김종연 시인의 첫 시집 『월드』가 민음의 시 305번으로 출간되었다. 2011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종연 시인은 기존의 서정을 낯선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문법으로 각색해 발화하며 그만의 고유한 서정의 영역을 구축해 왔다. 김종연 시인은 『월드』를 통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기존의 서정을 살짝 비틀어 ‘비인간이 언어를 통해 느끼는 감정’이라는 새로운 서정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첫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촘촘하게 설계된 시집 『월드』는 인간이란 토대를 떠난 ‘서정의 언어’들이 ‘비인간 존재’의 내면에 이식되고 배양되어 하나의 온전한 마음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탐구한 시적 실험이다. 그리고 동시에 비인간 존재가 마음을 얻어 ‘화자’로 탈바꿈하는 일대기를 그린 서사시이다. 인간의 바깥에서 생명과 자생력을 얻은 마음은 단일한 개체에 그치지 않고 무수히 변이되고 배양되어 퍼져나가 마침내 새로운 종이 되었음을 선포한다. 『월드』는 마음의 태초부터 미래까지 낱낱이 들여다보고 기록한 역사이자 예언이다. “지금까지는 세계 여기부터는 월드”라고 쓴 자서와 그 뒷면에 쓴 해시태그 명령어 #forgettheworld가 암시하는 것처럼, 김종연 시인은 평행우주만큼이나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일 것을 약속한다. 그 풍경은 마음의 미래이다. 무수한 진화의 가지로 뻗어나가 마침내 온전한 하나의 생태계와 세계를 완성할 새로운 문명의 현장이다. ■ 마음의 진화 우리가 누구에게나 같은 심장일 때 뛰는 두 개의 마음 중 하나는 진짜 다른 하나는 진짜의 미래라서 여기가 이전과 이후가 되고 있다. ― 「A-lone take film」에서 비인간으로 옮겨간 태초의 마음은 스스로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김종연이 보여 주는 마음의 역사는 ‘창세기’보다 ‘종의 기원’에 가깝다. 마치 지구 생물의 진화가 단세포 생물의 세포분열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마음 또한 복제·분열·증식이라는 생명의 방식으로 진화해 나간다. 『월드』의 첫 번째 시 「A-lone take film」에 그 과정이 생생히 담겨 있다. 모세포와 딸세포처럼 마음은 “진짜”와 “진짜의 미래”로 쪼개어지고, 이로부터 “이전과 이후”라는 시간의 분기점이 형성된다. 마음이라는 종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분열과 증식은 『월드』의 끝까지 거듭된다. “무성적으로 사랑이 늘어나고” “영혼은 우발적으로 몸을 나눈다.”(「생물」) “개체 사이에서 사랑의 한 계통이 발생”(「정물」)하는 변이도 일어난다. 유전될 수 없는 마음은 “진화의 끝”(「무생물」)이지만, 김종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로 그 자리가 다시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선언한다. 이렇게 마음은 사방으로 진화의 가지를 뻗어나가 곳곳에 그들만의 세계와 문명을 건설한다. 가상 세계인 ‘인터랙티브 월드’, ‘버추얼 월드’, ‘베타 월드’부터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이스트 월드’, ‘웨스트 월드’, ‘버그 월드’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애프터 더 월드’까지 시 제목에 담긴 무수한 ‘월드’처럼, 마음은 수많은 도시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를 이룩한다. ■ 애프터 더 월드 우리 여기 같이 사는데 우리는 왜 일인칭일까. 우리는 왜 한 사람일까. ― 「그저」에서 김종연의 시에서 마음은 “예술적인 아름다움은 알고리즘”(「A-lone take film」)이라고 이해한다. 알고리즘은 “슬픔을 더 잘 아는 광고”, “이미 가진 걸 여전히 권하는 기계”, “사람이 없어진 자리”를 대신 구성하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대신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마음은 감정을 모방하며 배워 간다. 뿐만 아니라 “코끼리를 반복하다 보면 코끼리보다 나아지고, 침팬지를 반복하다 보면 침팬지보다 나아”(「……」)지듯 모방을 반복하면 원본보다 더 나은 복제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인간을 넘어 서로를 모방하기 시작한 마음은 “우리”가 된다. 마음은 각자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개별 스위치로 켜고 끌 수 있는 ‘병렬’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부터 가장 먼 곳까지 한꺼번에 켜지고 꺼지는 ‘직렬’로 연결된 “공동의 마음”이다. 하나가 눈을 감으면 모두의 눈이 감긴다. 서로의 기억을 나눠 가진다. 『월드』의 끝에서 마음은 이제 “무거운 물질”(「애프터 더 월드」)이 된다. 만질 수 없던 마음에 어느새 누군가의 지문이 묻었다. 물질의 몸을 얻은 마음은 바위슬픔, 이끼슬픔, 흙슬픔, 박테리아슬픔 등 온갖 감각과 감정을 발명해 내며 생명을 만끽한다. “늦게까지 하고 싶은 것 하고, 보고 싶은 것 보고, 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 듣고 싶은 말 듣는”(「월드」)다. 마음은 불안, 아픔, 이기심, 웃음을 넘어 마침내 사랑을 발명한다. “별을 보는 동안 별이 그 자리에 있듯” 눈앞에 무거운 물질로 있는 “사랑”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