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닉 말입니다. 숲, 시골길, 풀밭을 떠올려 봐요. 차가 시골길에서 풀밭으로 들어가고, 차에서 젊은이들이 내리고 술병들, 음식이 담긴 바구니들, 아가씨들, 트랜지스터라디오, 카메라들이 나옵니다…… 장작불이 타오르고 텐트가 세워지고 음악이 흐르지요. 그러다 아침이 되면 이들은 떠납니다. 밤새 공포에 떨며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던 동물과 새, 벌레들이 자기 피난처에서 기어 나옵니다. 그때 이들이 보게 되는 건 뭐겠습니까? 풀밭에는 자동차 엔진오일이 흐르고 벤진으로 흥건하며 쓸모없는 양초와 오일 필터가 사방에 버려져 있겠지요. 헌 옷이 널브러져 있고, 수명을 다한 전구가 뒹굴고 누군가는 렌치를 버리고 갔고.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는 늪지에는 타이어 자국이 새겨졌고…… 그러니까, 불 피운 흔적이며 사과 찌꺼기, 사탕 껍질, 통조림 캔, 빈 병, 누군가의 손수건, 누군가의 주머니칼, 오래되어 찢어진 신문, 동전들, 다른 들판에서 온 시든 꽃 같은 것들을……”
“압니다, 노변의 피크닉이죠.”
“바로 그겁니다. 우주의 노변에서 열린 피크닉. 그런데 당신은 그들이 돌아올지 아닐지를 나에게 묻는군요.”
“러시아 SF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스트루가츠키 형제에게 거하리라.
새로운 세대 SF 독자를 위한 근사한 필독서.”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1977 체코슬로바키아 오타카르 코세크 감독 텔레비전 필름 ―방영 금지 처분
1979 소련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 영화 원작
1990 일본 오에 겐자부로 연작소설 『조용한 생활』 수록 단편 「안내인案内人(ストーカー)」의 모티프
1990 우크라이나 라디오드라마
2003 핀란드 키르쿠스 막시무스 극단 연극 <스토커Stalker> 원작
2007 우크라이나 GSC Game World사 비디오게임 시리즈 원작
2008 핀란드 Burger Games사 롤플레잉 게임 <스토커Stalker> 원작
2010 스페인 싱어송라이터 이반 페레이로 음반 <외계의 피크닉Picnic extraterrestre> 헌정
2012 핀란드 에사 루티넨 감독 인디 영화 원작
2013 영국 록밴드 Guapo 음반 <방문의 역사History of the Visitation> 모티프
2016 미국 방송 채널 WGN America 드라마 <노변의 피크닉Roadside Picnic>(앨런 타일러 감독, 매슈 구드 주연)―제작 중단
1978 존W.캠벨기념상 최종 후보작(최종 2위)
1978 마크트웨인협회 명예 회원 위촉작
1979 쥘베른 스웨덴어번역상 수상작
1981 메스 공상과학소설 페스티벌 ‘최고의 외국도서상’ 수상작
지적이고 상징적이며 강렬하고 신선한, 소비에트 시대 SF의 랜드마크
20세기 러시아 SF의 개척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형제 작가의 기념비적인 대표작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비에트 SF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전설적인 고전 『노변의 피크닉Пикник на обочине』(1972)이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한국에 형제의 작품이 첫선을 보인 후 거의 30년 만의 사건이다. 이번 한국어판 『노변의 피크닉』은 스탈케르출판사의 2003년판 「스트루가츠키 형제 작품집」 11권 제2쇄(2차 수정본) 원고를 저본으로 삼았으며, 1977년 맥밀런출판사 영역판에 실린 「시어도어 스터전 서문」과 2012년 시카고리뷰프레스 영역판에 실린 「어슐러 K. 르 귄 추천사」, 그리고 2003년 동생 보리스 스트루가츠키가 펴낸 회상록 『지난 일들에 관하여』의 『노변의 피크닉』 부분 「후기」를 함께 수록했다.
『노변의 피크닉』은 외계 생명체나 외계 문명과의 첫 접촉을 다루는 ‘퍼스트 콘택트’ 유의 소설에 속하지만, 통상 이들 작품이 평화적인 혹은 공격적인 외계의 접근 형태를 그리는 것과는 달리 그들로부터의 아무런 의사 표시가 없었다고 상정한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이 작품은 외계인의 지구 ‘방문’ 이후의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19××년 지구에는 ‘구역’이라고 알려진 여섯 개의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곳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현상(‘모기지옥’ ‘마녀의 젤리’ ‘불타는 솜털’ ‘악마의 배추’ ‘즐거운 유령들’ 등)들로 가득하고 순간순간 불가사의한 사건(‘살아 돌아온 죽은 자’ ‘이민자’ ‘묶인 자’ 등)이 발생하며, 외계인의 ‘방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그러나 ‘방문자’라 불리는 외계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지구에 왔는지, 무엇을 하고 떠났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인류는 방문자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추측할 수밖에 없으며, 그 추측 가운데 하나가 그들이 우주의 한 길목에 위치한 지구에 들러서 피크닉을 즐기고 갔을 뿐이라는 가설이다. ‘구역’에는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다양한 물체가 남았고, 불법적으로 ‘구역’에 숨어들어 그것들을 찾아내서 팔아넘기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자 ‘스토커’의 이야기가 『노변의 피크닉』의 골자이다. 방문자들은 떠났지만, 인간과 외계의 접촉은 어떤 의미에서는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소설 내내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진다. 방문자들의 흔적이자 ‘방문’의 증거인 ‘구역’은 바깥 세계라는 ‘외계’의 의미로 대치되지만, 지구 바깥이 아닌 내부 즉 지구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깡통’ ‘검은 물방울’ ‘바로 그’ ‘근질이’ ‘팔찌’ ‘옷핀’ 등 ‘구역’에 남겨진 물체들은 대체적으로 지구적인 논리에 위배되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나 인류는 이 가능성을 너무도 인간적인 목표, 즉 지식을 위한 순수한 앎에의 추구, 인간의 삶을 위한 새로운 장비, 새로운 기술 연구, 경쟁심을 동반한 이익에의 추구와 새롭고 더 끔찍한 무기를 향한 탐욕스러운 갈증에 이용하려 한다. ‘방문’이 있은 지 수년 후 인류는 ‘구역’의 일부 물체를 사용하는 법을 알아냈다고 여기지만 이는 한 등장인물이 이야기하듯 ‘왕의 인장으로 호두를 부수’거나 ‘현미경으로 못을 박고 있’을지도 모르는, 기껏해야 자기 범위 안에서의 용도 찾기에 불과할 수 있다. ‘구역’은 인류가 지금껏 쌓아 온 과학을 무너뜨렸으며 인간 지식의 허상을 드러냈다. 그런데 『노변의 피크닉』은 이 같은 타자에 대한 불가지론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아는 것이란 가능한가’의 대상을 스스로에게 돌려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가’를 묻는다. 특성을 알 수 있는가가 아니라 앎의 ‘주체’를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형제는 실존철학적 SF를 『노변의 피크닉』을 통해 끌어냈으며, 존재라는 광대한 미스터리, 지각의 주관성, 불확실성을 대하는 실존주의, 그리고 삶의 알 수 없는 목적이 이 소설을 지탱하는 개념들이다.
『노변의 피크닉』은 가장 노련하고 성공률이 높은 특출한 스토커 ‘레드릭 슈하트’를 주인공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에피소드이다. 그는 ‘구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구역’에 의해 거의 모든 생애가 결정지어진 인물이다. 그가 살고 있는 하몬트는 가상의 영어권 도시로, 보리스와 세계 독자의 2003년 10월 오프라인 인터뷰에 따르면 이 나라는 캐나다일 가능성이 높다. 소설은 레드릭의 삶의 궤적을 따르면서 그가 화자로 등장하는 1장(‘방문’ 13년 후 23세) 2장(28세) 4장(31세)과 다른 등장인물의 인터뷰 및 또 다른 등장인물이 화자로 등장하는 3장으로 이루어진다. 시간의 추이와 시점의 변화를 통해 내러티브가 풍성해지고, 이 다양성은 간결한 줄거리를 가진 소설 속 세계를 더욱 확장시킨다. 생생하고 긴박하고 예측 불허인 전개는 하드보일드한 어조를 띠며 등장인물 개개인은 선명하고 친근한 보통 사람들로 그려진
김성진
4.5
상대를 정의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을 잃는 이야기 필먼 박사의 인터뷰로 시작하는 이 놀라운 이야기는, 첫장부터 우리가 읽으려는 이야기가 쉽지 않음을 짐작케하며 시작된다. MBTI가 T인듯한 필먼 박사는 인터뷰 내내 단언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방문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인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 짧은 프롤로그는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노변의 피크닉'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친절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얼마전에 리뷰했던 대실 해밋의 작품처럼 발생하는 일만 묘사될 뿐이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그 어떤것도 시원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만약 그들이 아무런 목적이 없이 방문했고, '방문'으로 인해 지구에 이런 현상들이 생겼다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그것이 인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어떻게 깨닫고 그 사실을 공유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의 두뇌는 우리가 원인과 결과에 대한 무의미한 상관관계를 찾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쓰임'과 '목적', '이유'라는 단어들로 변주되어 마치 유령처럼 떠돌아 다니며 등장인물의 목을 조인다. 레드릭 슈하트는 그러한 인간적인 인식의 굴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계 문명의 부산물들이 큰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던(그저 돈만 되는 것들) 그는 시간이 지날 수록 구역과 현상에 종속된다. 결국 바라지조차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욕심이 생기게 되고 딸의 회복과 부를 위해 '금빛 구체' 를 찾으러 간다. 결국 마지막에 이르면 그는 하나의 짐승이 되고 타他에 의해 정의되지 않으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조차 없는 하나의 객체가 되고 만다. 내 생각에는 레드릭 슈하트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잃고 타자에 의해 정의되고 구속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내가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는 2장의 젊은 레드릭 슈하트가 정신을 다잡으며 탐사조를 이끄는 것과 대비된다. 결국 이 이야기는 타인(좁게 보면), 혹은 나의 바깥에 있는 것을 정의하지 못함으로 인해 나(또는 우리)를 잃게 되는 이야기로 읽힌다. 즉, 지구에서 의미없이 쉬다 떠난 외계의 존재가 무엇이고, 그들이 남기고 간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도리가 없기에, 인간 스스로가 거짓 인과를 만들고 거기에 종속되어버린 이야기 인 것이다. 조금 더 넓게 본다면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 바깥의 존재를 정의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 무너지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놀라운 접근이다. 무언가 말은 쉽지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틀안에 남을 가두고 또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간다. 인간의 인지와 인식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용한지 말해주는 소설. 이런 어마무시한 이야기를 부연설명을 붙이거나 구구절절한 서사를 통해 풀지 않고 주요 화자의 인식 범위 내에서만 진행한다. 이 또한 대단하다. + 하나의 관점이 더 있는데 만약 이야기의 주체를 외계문명, 구역에 잠시 머물렀다 떠난 이들의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이런 이야기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이는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즉, 남에게 피해 끼치지 말라는 소리다. 이건 아무래도 역사적인 배경과 관련이 있을 법한데 러시아 역사는 잘 모르니 천천히 공부해보도록 해야겠다. 9.5/10
heyyun
3.5
너무 슬프다. .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없는 짓거리에 누군가는 삶을 송두리째. 이 비대칭이 불균형이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이다. 왜? 그래서 나는 아무 의미없기를 택하려고 하는듯. 그 슬픔을 피하기 위해서.
원혜린
4.5
여기엔 그 책(<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의 자조섞인 유머감각을 지닌 소비에트 과학자들도, 그 영화(당연히 <잠입자>)의 지독하리만치 성스러운 구원도 일단 없다. 책에서 인간은 무심한 꼬마가 아무렇게나 던진 돌에 맞아버린 개구리의 처지인셈인데, 이 비인간적이고 초월적인 외부의 힘 앞에서 개구리...혹은 어린양들은 결국 또다른 초월, 2천년간의 아버지를 찾게 되어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마초주인공은 이미 어딘가 여기저기서 많이 봤던듯한 그모습 그대로라 불안증에 시달리는 소비에트 과학자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는 못되지만, 그가 마지막 순간 그자신 영혼의 확신과 인류 보편의 행복을 울부짖을 때- "모두에게 행복을 드려요! 공짜로 드려요!"- 신이던, 외계이던, 구원은 자조의 유머까지 구비해서 다시 온다.
박혜원
3.0
외계인들은 그저 노변의 피크닉을 즐기고 갔을 뿐인지도. 아직도 가끔 떠오르는 잠언 같은 메시지.
조이
5.0
꿈도 희망도 없는 소련 식 퍼스트 컨택트. 그래 인간끼리도 매일 이해와 오해 사이의 가시밭길인데 인간과 외계라고 다를 쏘냐. 반대편에는 테드 창의 <컨택트>가 있고 자매품으로 렘의 <솔라리스>.
Jadejin
3.5
인생 첫 러시아 SF. 외계인이 '방문'해 피크닉을 즐기다 버리고 간 물건들을 연구하고 노획하고 훔치고 사고 파는 인간들의 이야기. 소설에서 '그들'(외계인)은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이점에서 외계 생명체와 소통을 다룬 '어라이벌'과 정반대. 배경만 상상 속 가상현실일 뿐, 가족을 먹여살릴 책임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극한 환경인 구역을 넘나드는 스토커 빨간머리, 레드 슈하트를 중심으로한 인간 군상의 모습은 어느 현대소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왜 지구을 방문했는지 알 수없고 인간들은 그들이 구역에 남기고간 물건의 정체도 정확히 밝혀내지 못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박사도 마찬가지. 그저 살아갈 뿐 왜 태어났는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불분명.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톰괴
4.0
클라이맥스가 대단하다
2K
4.5
결국 SF는 인간의 이야기다. 낯선 존재가 머무르고 간 이후의 이야기. 가장 화려한 순간의 흥미가 꺼진 후 일어나는 그늘의 이야기. 삶은 방문 이후에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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