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일본,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투쟁한 전공투 운동 한가운데에서
어머니(아이를 낳는 대상)와 변소(성욕을 처리하는 대상)로 찢겨진 여성을 직시하며
여성해방 ‘우먼리브’ 운동의 출발을 알린 역사적 저작!
《생명의 여자들에게 - 엉망인 여성해방론いのちの女たちへ ― とり乱しウーマン・リブ論》은 일본 여성해방 ‘우먼리브’ 운동의 선구자 다나카 미쓰(1943~)의 대표작이다. 1972년 일본에서 출간된 이후 4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은 일본에서 여성해방운동의 고전으로 독자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다. 《생명의 여자들에게》는 다나카 미쓰가 ‘그룹 싸우는 여자들’ 멤버로 한창 여성공동체를 꾸리고 여성해방운동을 이끌던 시기에 출간되었으며, 이후 개정판과 신판이 거듭 출판되면서 일본의 대표적 여성해방론서로 꼽히고 있다. 이번에 출간하는 한국어판은 여러 자료와 기념비적 선언 <변소로부터의 해방> 및 해설과 해제를 수록한 2016년 개정증보판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여자를 성욕 처리 대상인 ‘변소’로 취급하거나 아이를 낳는 ‘어머니’로 대상화하는 남자들의 시선을 고발하며 그러한 시선이 역사를 거슬러 아시아 태평양 전쟁 시기 위안부를 두고 여성을 성노예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임을 뼈저리게 밝힌다. 또한 일본 전공투 운동 당시 여성의 해방을 외치며 자생적으로 태동한 여성해방 ‘우먼리브’ 운동의 한 단면을 보여 주면서 여성을 여성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사회를 준엄히 고발하고, 단지 이론으로 정리할 수 없는, 삶을 통한 여성해방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독자들은 어릴 적 체험에서부터 엉망인 채 자기혐오에 빠져 있던 한 사람이 자신의 엉망인 상태를 긍정하고 여성을 억압하고 대상화하는 사회에 맞서 자유롭고 당당하게, 얽매임 없이 맞선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이 있더라도 바로 공감할 수 있는 여자들의 생명력 넘치는 사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자에 대해, 또 남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이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여성운동의 패러다임을 바꾼 여성해방 선언!
“계급사회 아래에서 여성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다. 처녀성이란 사유재산을. 이것을 솜씨 좋게 이용하여 비싸게 파는 것으로 여자의 인생은 결정된다.”(<변소로부터의 해방> 시작 부분)
1970년 10월 21일 있었던 국제 반전의 날 시위에서 ‘그룹 싸우는 여자들’의 멤버 다나카 미쓰는 앞으로 여성해방 ‘우먼리브’ 운동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유명한 선언문 <변소로부터의 해방>을 배포한다. 이 역사적 문건을 통해 일본에서 여성해방운동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일본 여성해방운동의 기념비!”(우에노 지즈코)로 평가받으며 오랜 기간 여성해방론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생명의 여자들에게 - 엉망인 여성해방론》이 처음 한국에 소개되었다.
《생명의 여자들에게 - 엉망인 여성해방론》은 일본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 다나카 미쓰가 쓴 첫 책이다. 단순하게는 인생 회고록 정도로 읽을 수도 있는 이 책은 그 속에 분열적이면서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엉망인 여자’의 목소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정신적이면서도 성적인 존재인 여성이 어떻게 ‘어머니’ 아니면 ‘변소’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사유재산제 아래 사회질서 속에서 어떻게 억압받고 있는지 그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다. 그러면서 이를 바꿀 생각 없이 이용하는 지배계급과 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는 전공투 운동가들 모두의 모순을 강력하게 성토한다. 이를 통해 아직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남성 중심 사회의 모순을 통렬히 고발한다.
이 책은 일본에서 소위 1세대 여성운동이 중심으로 삼았던 기본권 획득 투쟁을 넘어 성별 역할 분담 철폐와 여성의 성 해방과 임신 중절의 자유 등을 논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저자가 자신이 어렸을 적에 입은 성적 학대 피해의 개인사, 부모와 형제를 다룬 가족사, 호스티스 체험 등 자신의 여성해방사상을 형성하는 데 바탕이 된 체험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스스로 깨어나는 과정을 가감 없이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부제 ‘엉망인 여성해방론’은 성별로 차별하는 사회에서 엉망인 채로 열등감을 품은 채 살아온 저자가 자신의 엉망인 상태 그대로 여성해방을 만나면서 자기 긍정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통해 독자들은 이론에 집중한 서구권의 여성해방서와는 다른 매우 솔직하고 숨김없는 목소리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에게 여성해방은 남성/세계에 살아가며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내가 쓰레기일 리 없다”고 나서며 내가 나이길 바라는 자기 긍정에 이르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공투 투쟁이 격렬했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 신좌파와 함께했던 여성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성별 구분에 따라 투쟁에서도 남자들의 뒷바라지와 허드렛일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순종적인 여성다움만으로 살든가, 남자들보다 더 과격하고 잔인한 행동을 하는 식으로 변한, 이중적인 여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연합적군파 나가타 히로코 이야기는 그렇게 변모된 여자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운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저자는 그러한 남성들의 의식을 통렬히 고발하고 여성들에게 ‘엉망인 자신’을 긍정하며 나아가는 새로운 운동을 촉구한다.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걸인의 마음’이라 외치며 전공투 투쟁 속에 존재한 차별과 성적 대상화를 거부하고 여성들이 새롭게 나아갈 것을 주장한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여성해방 ‘우먼리브’ 운동은 남성 기준에 맞춰진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함을 목표로 하는 것 또한 사유재산제에 가담하고, 베트남전과 침략주의의 공범자가 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여성들만의 공동체를 통해 자유와 해방을 꿈꿨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독특한 여성해방론을 만나면서 동시에 1960~197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 및 정치적 상황들과 운동의 모습들, 사회의 차별적 모습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크게 변하지 않은 성별 역할 분담에 대한 거부와 고발을 통해서 현 시기에도 울림을 주는 여성해방론의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