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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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에 완간된 가와데쇼보신샤(河出書房新社)의 세계문학전집에 유일하게 포함된 일본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일본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의 유명한 작품 《고해정토(苦海淨土)》는 각각 완결적인 독립된 3부작으로 집필되었는데, 그중에서도 2부에 해당하는 《신들의 마을》은 압권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론가 와타나베 교지는 “제1부가 미나마타병 피해자들에 대한 순수한 비가(悲歌)였다면, 제2부는 미나마타병 문제의 일상과 비일상, 사회적 반향에서 민속적 저변까지 모든 것을 끌어안은 거대한 교향악”이라고 평하면서, 미나마타병이란 무엇이었는가를 이 정도의 진폭과 심층으로 묘파한 작품은 이것 말고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이 작품은 단순한 반공해소설도, 사회고발문학도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들의 마을》은 생명과 자연에 본질적으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근대’의 틀을 넘어서, 과연 근대란 무엇이고 좋은 삶은 무엇인가를 근원적으로 물으며, 진실로 인간다운 세상에 대한 절절한 희구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하늘과 바다와 땅과 연결된 풍성한 삶을 살았던 민중의 정신세계와 생활세계를, 민중의 언어로 깊이 있게 표현한 위대한 작품이다. 미나마타병의 인류사적.문명사적 의미 《고해정토》는 1950년대 중반 규슈(九州) 남쪽 해안지방에서 발생한 전후(戰後) 일본의 최대 산업공해(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까지)로 인한 재앙 ― 미나마타병에 관련된 인간적·사회적 비극을 다룬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작품은 병원의 기록, 의사의 증언, 회사나 행정, 정치인의 발언, 언론보도 내용 등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소홀한 독자들에게 논픽션으로 간주될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공해고발이나 피해자의 한을 묘사한 르포로 읽어서는 안된다. 그보다 훨씬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학작품인 것이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미나마타’의 인류사적·문명사적 의미에 관한 집요한 천착, 근원적 질문이다. 소설은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사건의 경과도 뒤바뀌기 일쑤고, 시간은 소용돌이치며 순환하는 듯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현실과 몽환의 세계도 섞여 있어 서양의 근대소설 기법에 익숙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방식은 민초들이 실제로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감성을 충실히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 이시무레는 일본 문단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미나마타병이라는 세기적 비극, 재앙을 보는 그의 눈은 결코 ‘객관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그가 묘사하는 세계는 교육받은 엘리트들로서는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방언’의 세계, 신비적이고 몽환적인 언어, 혹은 언어 이전의 ‘마음’으로만 접근 가능한 세계이다. 그 세계는 살아있는 모든 것이 교감하고 조응하는 세계이고, 작가에게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이 세계가 추악하고 극적인 형상으로 붕괴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작가는 미나마타 민중의 내면의 심층으로 들어간다. 괴로움과 고뇌의 극한에서 인간은 오히려 풍요로운 생명감각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다. 작가로서 이시무레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한 것은 결국 이 생명감각, 생의 근원적인 행복과 풍요에 대한 생생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 속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삶의 근원적인 생명감각을 포착해내는 일이었다. 미나마타의 비극 가운데서 작가가 포착한 것은 이 살아있는 생명감각이 빚어내는 역설적 상황이다. 고해(苦海)가 정토(淨土)가 되는 역설은 그렇게 성립한다. 작품은 치유 불가능한 병고의 고통과 절망의 한가운데서 환자들이 여태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신들의 삶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과정을 묘사한다. 다만 기억 속에서일망정 바다를 의지해서 지내던 생활에 대한 회상은 더없이 아름답게 그려져 독자에게 가슴 뛰는 간접경험을 선사한다. 미나마타 어민들의 자족감과 평화로운 심성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다’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리고 어촌마을 삶의 공동체적 성격이었다. 미나마타병 환자(가족)들의 고통은 병고나 생활의 붕괴에 한정되지 않는다. 더 기막힌 현실은 ‘근대’체제 아래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비인간성이었다. 미나마타의 비극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산업공해를 등한시한 기업이나 국가의 행태 이전에, 환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 그리고 심지어 미나마타병 환자들을 돕는 시민 활동가들의 감수성의 결여에서 더욱 본질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독자는, 근대산업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민속사회 삶의 성립이나 그 심성을 이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씁쓸히 깨닫게 된다. 작가의 말대로 “인간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황량한 현실’이다. 이시무레는 누차 미나마타의 지리적 위치에 주목하는데, “산업공해가 변방의 촌락을 정점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자본주의 근대산업이 체질적으로 하층계급에 대한 모멸과 공동체 파괴를 심화시켜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근대국가와 산업자본의 결합은 곧 민초들에게 가혹한 폭력이 된다는 사실, 그 폭력은 인간성과 더불어 자족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근저에서부터 바꾸어놓는다는 사실, 즉 근대문명의 핵심적 어둠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풀뿌리 포스트모더니즘과 새로운 문학 저자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미나마타의 풀뿌리 민중의 생명과 삶터, 토착문화가 ‘근대주의적 지성’과 산업문명 앞에서 참혹하게 파괴·해체되는 현장에서 수십 년 이상 희생자 및 그 가족들과 고락을 같이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국가나 기업, 시장 등, 이른바 근대적 제도와 관계없이 하늘과 바다, 흙과 맨몸으로 접촉하며 작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온 민초들 특유의 생활윤리, 정서, 생명감각에 깊게 공명하고, 그 토대 위에서 ‘근대’란 무엇이며, ‘문명’이란 무엇인지, 그 본질을 집요하게 묻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신들의 마을》이 생태학적 반문명론이나 감상적인 토착주의 이상으로 읽혀져야 하는 이유이다. 어디를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 근대적 제도와 가치는 더이상 효력을 잃었음이 온갖 징후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이시무레 미치코의 작품으로부터 암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거꾸로 된 세상이다. 20세기의 종언에 들씌어 있던 세월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사람들은 ‘또하나의 이 세상’의 유민(遺民)이었다. 극단의 수난을 겪는 이분들이 손을 뻗어 구원해주고 계신 것은 이쪽일지도 모른다.”(322쪽)